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36, 즐기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구도(求道)여행이 되고자, 스리랑카 남쪽 해안도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25. 11:09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36, 즐기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구도(求道)여행이 되고자, 스리랑카 남쪽 해안도로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다. 자영업자는 일요임에도 출근한다. 사업체가 내것이기 때문에 주말은 없다.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아침 6시에 길에 나섰다. 평소와 다름 없이 걸어서 일터로 갔다. 일터 겸 아지트로 가면서 오늘은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했다. 이십여분 걷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스리랑카 순례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앞으로 4-5차례 남았다. 지금까지 40회 가까이 순례기를 썼다. 스리랑카 도착하기 전부터 하루하루 일정에 대하여 세세하게 묘사했다. 하루에 여러 일정이 있는데 나누어 쓰기도 했다.

 

스리랑카를 출발하기 전에 다짐한 것이 있다. 절대로 즐기는 여행이 되지 않고자 했다. 늘 그렇듯이 해외성지순례 여행을 가면 구도의 여행이 되고자 했다. 국내여행을 가면 반드시 사찰 한 곳은 들러서 참배하고자 한다.

 

대개 사람들은 여행은 즐기는 것으로 안다. 특히 해외여행이 그렇다. 사성급호텔에서 머물고, 황제식이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한다. 어디를 가나 브이아이피(VIP)대우를 받는다. 즐기는 여행은 공덕을 까먹는 여행이 된다.

 

승용차 여행이기 때문에

 

스리랑카 현지에서 날자는 20221216일 금요일이다. 순례팀은 키리베헤라를 참배한 후에 남동쪽으로 길을 떠났다. 스리랑카 지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역사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것이 없어서 운전기사겸 가이드 가미니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갔다. 다행이 스리랑카 사람 혜월스님이 있어서 말이 통했다.

 

지금으로부터 8개월전에 사진 찍었던 것을 열어 본다. 후기를 쓰기 위하여 가는 곳마다 풍부하게 사진을 찍어 놓았다. 이곳은 어디일까? 사진만 보아서는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스리랑카 동남부 해안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동 중에 식사도 하고 차도 마셨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승용차를 멈추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식사한 것이다. 수십명이 가는 패키지 여행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네 명이 여행하기 때문에 가능한지 모른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 되어 있는 습지

 

승용차는 남쪽으로 길을 달렸다. 대강 일정은 알고 있다. 갈레가 목적지인 것이다. 갈레에 가면 식민지시대 유적이 있다. 그리고 올코트대령이 수계한 사원이 있다. 후자를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인지 모른다.

 

키리베헤라에서 갈레까지는 먼 거리이다. 도중에 스리랑카 최남단 해안에 있는 마타라까지 가야 한다. 이번 순례기는 마타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맞는 것까지에 대한 것이다.

 

키리베헤라는 얄라국립공원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환경이 잘 보존 되어 있다. 키리베헤라가 있는 카타라가마에서 남쪽 해안에 이르는 길도 자연 그대로 환경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습지와 호수의 연속이다. 그 어디를 보아도 공장은 보이지 않는다.

 

스리랑카 동남부는 드넓은 평지로 되어 있다. 습지와 저수지, 호수가 많아 농업 위주이다. 그래서일까 길을 가는 곳곳에 논이 있다.

 

 

스리랑카에서 논을 보니 우리나라 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울창한 열대우림에 있는 것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코코넛 야자수가 곳곳에 있어 우리나라와는 확실히 차별화 된다.

 

 

달리는 차창에서 스리랑카 농촌풍경을 유심히 보았다. 벼가 자라는 논 저너 마을에는 불사리탑이 보였다. 반구모양의 스리랑카 특유의 불탑을 말한다. 백색의 다고바는 어디서든지 보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는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이다.

 

 

호수와 나무와 하늘의 파노라마 티사호수

 

길을 남쪽 해안도로쪽으로 계속 달렸다. 도중에 매우 인상적인 풍광을 보았다. 호수에 아름드리 나무가 열지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스리랑카를 소개하는 사이트에서도 본 것 같다. 마침내 찾았다. 검색해서 찾은 것이다. 그곳은 티사호(Tissa Wewa)이다.

 

 

티사 웨하를 구글지도로 검색해 보았다. 키리웨헤라에서 21키로 거리에 있다. 주변을 보니 호수가 많다. 아마 지대가 낮아서일 것이다. 습지도 많고 소택지도 많다. 이런 곳에 오래된 나무가 열지어 서 있었다.

 

 

승용차로 이동하는 순례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아무 곳에서나 풍광이 좋으면 멈춘다는 것이다. 티사 호수에 있는 그림과 같은 풍광을 보자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티사 웨하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구글검색해 보니 인공 저수지인 티사 웨와(Tissa Wewa)는 데바남피야 티사(기원전 3세기)가 그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에 물 공급을 늘리기 위해 건설했습니다.”(영문 위키백과)라고 소개 되어 있다.

 

 

티사호는 역사가 매우 오래된 인공저수지이다. 그 역사만큼이나 오랜 나무도 있는 것 같다. 나무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수백년, 아니 천년 이상 되는 나무들이 후수에 반은 잠겨 있다. 호수와 나무와 하늘이 파노라마를 이룬 것을 한참 쳐다 보았다.

 

 

 

스리랑카 남쪽 해안가로 가는 길은 습지와 저수지의 연속이다. 큰 도시는 보이지 않는다. 공장과 같은 제조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관광 오는 사람들도 드문 것 같다. 스리랑카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것 같다.

 

시골식당에서 하늘을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을 먹어야 한다. 길을 가다가 시골 식당을 발견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시골 도로에 있는 식당이다. 오로지 스리랑카에서만 볼 수 있는 시골식당이다. 패키지 여행한다면 결코 볼 수 없는 식당이다.

 

 

스리랑카 시골식당 이름은 알 수 없다. 식당 간판을 사진 찍어 놓았다면 구글지도 검색해서 알 수 없다. 식사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우리 팀 밖에 없었다.

 

 

시골식당에서 하늘을 보았다. 시골식당은 소택지 가운데 있었다. 소택지 하늘은 푸르렀다. 더구나 흰 뭉게구름까지 있었다. 흰 구름은 아득히 멀리까지 이어졌다. 공기가 청정해서 하늘은 더욱 높게 보이고 흰 구름은 더욱 하얗게 보였다.

 

 

오랫동안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쳐다 보았다. 이런 하늘과 구름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똑 같은 모습이다.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달라도 하늘은 똑같다. 바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라이즈드림 게스트하우스에서

 

남쪽 해안에 이르렀다. 동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마침내 스리랑카 최남단 마타라에 이르렀다. 마타라에 도착했을 때는 컴컴한 밤이 되었다. 하루밤 머물 숙소를 찾아야 했다. 운전기사겸 가이드인 가미니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어느 호텔에 이르렀다. 호텔이라기 보다 게스트하우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주택가에 이층짜리 집이 숙박지인 것이다. 방이 여러 개 있다. 이층에 자리 잡았다. 방은 개별적으로 쓴다. 네 명이서 달리 자는 것이다.

 

 

이곳은 어디일까? 추측해 본다. 하나의 단서를 잡았다. 와이파이 패스워드를 사진 찍어 놓은 것이다. 벽면에 부착된 종이에는 ‘sunrisedream’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선라이즈드림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구글지도검색하여 찾았다. 정확한 위치는 마타라 서쪽으로 15키로 가량 떨어져 있는 미릿사(Mirissa)시에 있다. 주소는 ‘432,yatipila,mirissa, Mirissa, Sri Lanka’이다.

 

 

스리랑카 남쪽 해안 지방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 볼 수 있다. 미국사람들이나 일본사람들이 하와이로 휴양하러 가듯이, 유럽사람들은 19세기 이래 현재까지 스리랑카를 휴양지로 삼고 있는데 마타라, 갈레가 있는 남쪽 해안 도시가 대상이 된 듯 하다.

 

게스트하우스는 하루밤 머물다 떠날 곳이다. 굳이 호텔급 숙소에서 잘 필요는 없다. 뜨거운 물만 나오면 된다. 온수에 샤워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면 그만이다. 샤워한 후에 다리를 쭉 펴고 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가족의 환대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이 밝았다.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정원으로 내려 갔다. 정원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주로 흰꽃이다. 열대과일 두리안도 보였다. 저녁 캄캄 했을 때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다.

 

 

미릿사 시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크고 작은 수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작은 동산에는 코코넛 야자수가 있어서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게스트하우스마다 작은 정원에는 갖가지 열대식물과 이름 모를 꽃들로 인하여 비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는 아침이다. 아침식사는 하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떠나기 전에 게스트하우스 주인 식구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김형근 선생이 게스트하우스 가족들을 보자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 주인가족은 다섯 식구이다. 중년의 부부와 일남이녀의 가족이다. 전형적인 스리랑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다. 앞으로 십년후가 되면 이들 자녀들은 성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찾아 가면 이들 가족들을 또다시 볼 수 있을까?

 

미릿사에서 갈레 가는 해안도로에서

 

스리랑카 현지에서 20221217일이 되었다. 오늘은 스리랑카 성지순례 마지막날이다. 아침 일찍 미릿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선라이즈드림을 떠나 갈레로 방향을 잡았다.

 

미릿사에서 갈레까지는 40여키로 걸린다. 해안도로를 따라 갔다. 해안도로 어디를 가나 관광지인 것 같다. 유럽사람들이 한달살이 또는 두달살이 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피부가 희고 금발인 유럽사람들이 자주 발견된다. 어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계속 해안선을 따라 갔다. 스리랑카 관광 홍보책자에서 보던 기둥에 의지해서 낚시는 하는 곳도 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낚시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이곳이 관광 명소임을 알 수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어느 바다가이든지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다. 전세계적으로 바닷가는 모두 똑같다. 하늘이 차별 없듯이 바다 역시 차별이 없다. 바다만 바라 본다면 한국이나 스리랑카나 똑같다. 그럼에도 바다를 달리는 도로에서는 차이를 발견한다. 스리랑카 시골 마을이 그렇다.

 

스리랑카 시골식당에서 아침을

 

아침식사 할 시간이 되었다. 차가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멈추어 선 곳은 어느 작은 식당이다. 패키지 단체여행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불과 두 평도 안되는 작은 시골식당이다.

 

 

혜월스님은 작은 시골식당으로 인도했다. 오로지 스리랑카 음식만 파는 곳이다. 식당은 매우 허름하다. 식당 명칭은 오로지 스리랑카 문자로만 되어 있다. 이곳에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마셨다. 음료는 과일 즙을 낸 것으로 처음 먹어 보는 것이다.

 

 

갈레 가는 길에 코코베이 만에서

 

갈레를 향해 계속 길을 달렸다. 주로 해안길이지만 시골길도 달렸다. 스리랑카 일반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겉으로나마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아침시장이 선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침에 수산물을 거래하는 임시수산시장이 열린 것이다.

 

갈레까지는 먼 길이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렀다. 마치 우리나라 국도 변에 있는 휴게소 같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영어로 휴게소 명칭이 써 있다. 사하나(SAHANA)라는 이름을 가진 휴게소이다.

 

 

사하나는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을까? 구글지도검색을 해 보았다. 사하나 레스토랑은 갈레에 가기 3-4키로 전에 있다. 지도를 보니 만()에 있다. 사하나 레스토랑에서 바다를 보니 전형적인 관광명소이다.

 

 

사하나 레스토랑이 있는 곳을 지도로 보니 만으로 되어 있다. 지도에는 코랄 리프 오브 보나비스타(Coral Reef of Bonavista)라고 되어 있다. 코코베이(Coco Bay)이라고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곳이 리조트라는 것이다. 만의 돌출 부위에는 고급호텔이 있고 만 안에서는 윈드서핑을 즐기는 서양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았을 때

 

즐기는 여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지순례는 구도의 여행이 되어야 한다. 이동 중에 보는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어서는 안된다. 영원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동하면 사라지듯이 보아야 한다. 최근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 본 것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대상을 향해 갈 수 있기 때문에(namati), 대상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nama)이라고 한다. 눈 감성물질 보이는 형색은 대상으로 향하지 못하고 반대되는 법들과 닿으면 무너지고(ruppati) 변하기 때문에 물질(rupa)이라고 한다.”(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 502-503)

 

 

마하시사야도는 정신과 물질에 대하여 간략히 정의해 놓았다. 정신은 대상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이라고 했고, 물질은 무너지고 변하기 때문에 물질이라고 했다. 전자는 이해가 어느 정도 되지만 후자는 잘 이해 되지 않는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사람 몸을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산천초목삼라만상으로 확대하면 곤란하다. 부처님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오온에 한정된 것이다. 물질은 이 몸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부서지는 것이 물질이라고 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부서지지 않는다. 그래서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하시사야도의 이어지는 설명을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칠각지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마하시사야도가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 설명하는 칠각지는 경전에서 보는 정형구와는 약간 다르다. 염각지에 대해서는 사띠가 밀착된 상태라고 했다. 택법각지에 대해서는 무상, , 무아의 성품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정진각지에 대해서는 사띠가 계속 유지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정각지에 대한 것이다. 정각지에 대하여 찰나삼매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마하시사야도가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 설명한 칠각지는 철저하게 새김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사띠를 확립되었을 때를 말한다. 이는 다름 아닌 위빠사나 관점에서 칠각지를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정각지에서 찰나삼매로 집중의 깨달음의 고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은 왜 부서지고 변하기 때문에 물질이라고 했을까?

 

정신에 대한 마음부수가 있다. 오온에서 수상행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나마는 대상에 따라 일어난다. 그런데 일어난 것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탐욕이라는 마음부수가 일어났지만 마음이 다른 대상을 취하면 사라진다. 분노의 대상을 보았을 때 분노라는 마음부수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한순간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탐욕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집착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난다고 한다.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대상은 안이비설신의의 대상이다. 즉 색성향미촉법이 대상인 것이다. 여기서 안비이설신과 색성행미촉은 물질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물질은 무너지고 변하기 때문에 물질이라고 했다. 대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왜 영원주의적 견해가 생겼을까?

 

여행 중에 아름다운 풍광을 본다. 유적지도 보고 산천도 본다. 때로 하늘도 보고 바다도 본다. 그런데 물질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시각이 우리 눈을 속이기 때문이다. 보고 있는 것이 연속적인 것임에도 정지화를 보는 듯이 사물을 보는 것이다.

 

시각은 우리 눈을 속인다. 그러나 청각은 우리 귀를 속이지 못한다. 왜 그런가? 소리가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것을 뚜렷이 알기 때문이다. 두 손바닥을 부딪쳐서 하고 소리를 냈을 때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눈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기관, 즉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각은 계속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시각이 우리 눈을 속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무상, , 무아를 설명할 때 시각을 예로 들지 않았다. 시각이 우리 눈을 속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상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각에 속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영원주의적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절대적으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영원주의자들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대부분 종교는 영원주의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는 영혼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변치 않는 영원한 자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영원주의적 종교관을 갖게 되었을까?

 

지금 보는 대상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 바위산은 지금이나 십년전이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죽고 나서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는 시각이 우리 눈을 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아와 세계는 새로운 것을 낳지 못하고산봉우리처럼 확립되어 있고기둥처럼 고정되어 있어뭇삶들은 유전하고 운회하며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만 영원히 존재한다.”(D1.31)라는 영원주의적 견해가 생겨나는 것이다.

 

물질은 무너지고 변화되기 때문에 물질이라고 했다. 이를 청각에 적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즉각적으로 확인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A9.20)라고 했다. 시각이 아닌 청각을 예로 든 것이다. 이는 시각이 사람의 눈을 대상이 영원한 것으로 속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바뀌면 곧바로 부서지고 말 것이기에

 

부처님은 물질은 무너지고 부서기지 때문에 물질이라고 했다. 이 말은 시각을 포함하여 모든 감각에 적용되는 말이다. 그래서 물질에 대하여 물질은 포말과 같다.”(S22.95)라고 했다.

 

물질이 왜 포말과 같은 것일까? 이는 경에서 부처님이 물질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이 갠지스 강이 커다란 포말을 일으키는데, 눈 있는 자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실로 포말의 실체일 수 있겠는가?”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물질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몸이 있다고 해서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물질은 대상이 바뀔 때마다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대상을 접했을 때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 대상은 색, , , , 촉 법이 된다. 반드시 형상만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각에 속지 말아야 한다. 지금 보이는 대상이 영원하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시선을 다른데 두면 시각대상은 사라져 버린다. 그럼에도 시각대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 바위산은 어제도 그 자리에 있었고, 오늘도 그 자리에 있고,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 몸도 항상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당연히 정신도 항상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자아와 세상은 저 산봉우리처럼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영원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물질을 포말과 같은 것이라고 보라고 했다. 대상이 바뀌면 곧바로 부서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즐기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구도(求道)의 여정이

 

성지순레기를 쓰기가 쉽지 않다. 남들처럼 사진이나 몇 장 올리고 마는 순례기는 의미가 없다. 어떤 이는 마치 메뚜기처럼 해외에서 살기도 한다. 이 나라에서 한달 살고, 저 나라에서 한달 사는 것이다. 마치 가진 돈을 모두 쓰고나 죽자는 심정으로 해외에서 사는 것 같다. 이는 즐기는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즐기는 여행은 공덕이 되지 않는다. 즐기는 여행은 공덕을 까먹는 여행이 된다. 비싼 돈을 들여서 귀중한 시간을 내서 여행했는데 여행기 한편 제대로 내지 않았다면 즐기는 여행이 된다. 더구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 나열 했을 때 여행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의 과시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스리랑카 성지순례는 구도의 여행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다녀 온지 8개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행 중에 있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을 바탕으로 검색해서 기록을 남긴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도 공덕이 될 것이다.

 

여행 중에 푸른 하늘에 흰구름을 보고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남쪽 해안도로를 달릴 때 바라본 바다 역시 우리나라 바다와 다르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는 어느 나라이든지 공통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늘과 바다가 영원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하늘과 구름과 바다는 물질이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도 물질이다. 그러나 대상을 바꾸면 하늘과 구름과 바다는 사라지고 만다. 시각에 속지 말아야 한다.

 

하늘의 구름이 아름답다고 하여 무심코 쳐다 본다면 즐기는 것이 된다. 한 순간에도 사띠를 놓치 말아야 한다. 그래서 물질은 무너지고 변화되고 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장엄한 유적지를 보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기억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 집착하면 즐기는 여행이 된다. 구도의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은 포말과 같다.”(S22.95)라고 알아야 한다. 즐기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구도(求道)의 여정이 되어야 한다.

 

일요일 아침 일터에 나와 밀린 여행기를 작성했다. 누구에겐가는 쓸 데 없는 짓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여행은 먹고 마시고 보고 즐기면 그뿐인데 애써서 여행기를 남기는 것에 대하여 시간낭비로 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여행기를 남기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 될 것이다.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구도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023-06-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