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한번 사띠가 확립되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5. 20:21

한번 사띠가 확립되면

 

 

지금 시각 오후 74, 하루일과가 끝났다. 오늘 한 일은 없다. 일감이 없어서 한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일을 했다. 글을 아침에 하나 썼고, 오후에는 좌선을 했다.

 

일터에 가만 앉아 있으면 할 일이 없다. 유튜브 보는 것 외 할 일이 없다. 유튜브에 빠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세월을 유튜브 보는 것으로 보낼 수 없다. 나는 수행자 아닌가?

 

 

오전에 좌선을 한번 했다. 오래 하지 못했다. 고작 27분 했다.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집중은 사띠가 확립되는지에 달려 있다. 사띠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온갖 번뇌망상이 일어난다.

 

좌선을 할 때 비장한 각오로 임한다.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임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앉아 있을 수 없다.

 

좌선을 할 때 배의 움직임을 본다. 집중하면 보인다. 그러나 마음이 들떠 있으면 백약이 무효가 된다. 차라리 포기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이 최후의 순간인 것처럼 생각하면 좀 달라진다.

 

오후가 되었다. 약간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 목이 칼칼하고 뒷목이 약간 당긴다. 좋은 컨디션은 아니다. 아무래도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다. 요즘 열대야기이기 때문에 잠 자기 힘들다.

 

날씨가 더우면 의욕이 상실된다. 여기에 컨디션까지 좋지 않으면 만사가 귀찮아 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 쉽다. 그래서일까 경전 본지 오래 되었다. 논서 본지도 며칠 되었다.

 

하루라도 경전을 보지 않으면 죄 지은 것 같다. 방일한 것 같고, 게으른 것 같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경전을 본다는 것은 대단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힘이 없으면 경전 보기 힘들다. 경전의 문구를 읽고 주석까지 읽어낸다는 것은 주의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번, 두 번 놓치면 오래 간다는 것이다. 현재 상태가 그렇다.

 

걸을 때는 발에 집중하고자 한다. “왼발, 오른발하며 걷는다. 그러다 보니 천천히 걷는다. 걸으면서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경행은 되지만 행선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후 2시 넘어 사무실에 들어 왔다. 집에서 밥을 먹고 땡볕을 걸어 왔다. 검은 우산을 쓰고 왔다. 요즘 장마철이기 때문에 항상 우산을 들고 다니는데 땡볕에 우산을 쓰면 양산이 된다.

 

땡볕에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님을 알았다. 우산을 쓰고 다니면 햇볕도 차단될 뿐만 아니라 땀도 덜 난다.

 

미얀마 위빠사나 선원에서는 수행자들에게 우산을 준다. 땡볕에 쓰고 다니라는 것이다. 1.2키로 거리를 매일 걸어 다니다 보니 땡볕에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을 수 없다.

 

오후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일감이 있으면 만사 제쳐 두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일이 없을 때는 일을 만들어 해야 한다. 좌선하는 것이다.

 

시간은 철철 남았다. 이 시간을 유튜브 보는 것으로 보낼 수 없다. 명상공간에 앉고자 했다. 이러려고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좌선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기 나름이고 해 보아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냥 앉아 있고자 했다. 가벼운 행선을 한 다음 앉았다.

 

평좌 자세를 취했다. 앉아 있다 보면 항상 오른쪽 다리가 저리기 때문에 바깥으로 했다. 엉덩이는 높였다. 두께가 10센티 정도 되는 푹신한 방석에 차량용 매트를 깔았다. 두 다리와 엉덩이 사이에 단차가 높게 생겼다.

 

평좌를 하면 자세가 안정된다. 엉덩이를 최대한 높이면 더 안정되는 것 같다. 이 상태로 가면 된다. 먼저 눈을 감는다. 시각 대상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위빠사나 할 때 시각대상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볼 때 마다 대상은 생멸한다. 그런데 눈을 뜨고 앞을 바라 보고 있으면 생멸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눈을 감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귀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좌선할 때 눈을 감는다. 눈 하나만 감아도 집중이 잘 된다. 귀까지 막는다면 최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소음을 막을 수 없다. 창 밖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전철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각과 달리 청각은 소리가 계속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는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그래서 법을 보기 좋다. 생멸을 보기 좋은 것이다. 시각은 항상 거기에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지만, 청각은 생겨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속이지 않는다. 두 손바닥을 맞부딪쳐서 하고 소리 냈을 때 소리가 생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스마트폰 타이머를 한시간으로 설정해 놓았다. 시작키를 누르면 초단위로 감소된다. 그런 한시간은 매우 긴 시간이다. 하루일과가 여덟 시간이라면 무려 8분의 1을 명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누가 한시간을 명상으로 보낼 수 있을까?

 

좌선은 배운 대로 한다. 마하시방식대로 하는 것이다. 배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그런데 움직임을 관찰하다 보면 결국 호흡을 관찰하게 된다. 다만 호흡을 코끝에서 보는 일은 없다.

 

호흡을 코끝에 집중하면 사마타가 되어 버린다. 또한 상기병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라고 말한다.

 

좌선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잘 하려고 하는 마음도 내려 놓아야 한다. 그저 흐름에 맡겨 놓는다. 처음에는 가장 강한 대상인 부품과 꺼짐에 집중한다. 부품과 꺼짐을 따라 가는 것이다.

 

좌선을 할 때는 사띠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띠가 확립되지 않으면 번뇌망상 때문에 앉아 있을 수 없다. 최대한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해야 한다.

 

도이법사가 위빠사나 지도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좌선 중에 몇 번 놓쳤는지 세어 보세요.”라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다 보면 몇 번이 아니라 수십번 놓친다. 내버려 두면 사념의 집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좌선에 임할 때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한다. 반드시 사띠를 확립해서 법을 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대개 좌선을 시작한지 이십정도 되면 판가름 난다.

 

좌선을 시작한지 삼십분 정도 지났을 때 어느 정도 집중이 되었다. 사띠가 어느 정도 확립된 것이다. 사띠가 확립되면 번뇌망상이 치고 들어 올 수 없다. 왜 그런가? 아는 마음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다만 신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

 

좌선을 많이 하지 않았다. 어쩌다 하다 보니 다리가 저린다. 특히 평좌한 오른쪽 다리가 저린다. 왼쪽 다리의 저림 현상은 없다.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했음에도 통증이 시작 되었을 때 결정을 해야 한다. 아파도 계속할 것인지 자세를 바꿀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좌선 도중에 자세를 바꾸었다. 오른쪽 다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위빠사나 수행지침서에서도 초보자는 중간에 자세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좌선 도중에 전화가 왔다. 그러나 사띠가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화통화로 깨지지 않았다. 통화가 끝난 다음에 다시 좌선에 들어 갔다. 그러나 오후 첫 번째 좌선은 43분으로 끝냈다.

 

좌선은 사띠 확립에 달렸다. 사띠만 확립되면 한시간이건 두시간이건 앉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끝내기가 아쉬웠다. 한시간 더 하기로 했다.

 

550분부터 2차 좌선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를 안쪽으로 했다. 반가부좌를 하려 했으나 자세가 안정되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안정된 자세는 평좌이다.

 

이미 사띠는 확립되었다. 2차 좌선은 거저먹기나 다름 없다. 타이머를 한시간 세팅하고 자리 잡았다. 날아 갈듯이 가벼웠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팔이나 허리, 다리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띠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한시간 앉아 있기 힘들다. 마치 일각이 여삼추처럼 지루하다. 그러나 사띠가 확립되어 있으면 몸은 가벼워서 앉아 있을만 하다. 아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번뇌망상은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다만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 등 현상은 어찌 할 수 없다.

 

사띠가 확립되어 있으면 깨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눈은 감고 있지만 아는 마음이 있어서 사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오로지 아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몸은 그저 타인의 것처럼 지켜 보기만 하면 된다.

 

삼십분 정도 지났을 때 오른쪽 허벅지에서 통증이 왔다. 날카로운 것이 찌르듯이 온 것이다. 그러나 사띠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허벅지는 남의 것이나 다름 없다. 통증이 와도 그냥 지켜 보는 것이다.

 

허벅지 통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찌르듯이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개입하지 않았다. 남의 허벅지 보듯이 지켜 본 것이다.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코 끝이 간지러웠다. 일상에서는 손이 갔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서 만져 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라진다. 그러나 좌선 중에 간지럼 현상은 일어났다가 사라짐을 안다. 다만 지켜만 보면 된다. 어느 순간에 슬그머니 들어 간다.

 

감기 기운이 약간 있는 것 같다. 뒷목이 약간 당겼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다. 한번 편두통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못한다. 편히 쉬는 것이 약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뒷목이 당겼을 때 겁이 났다. 혹시라도 터지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지켜 보기로 했다. 장딴지 통증처럼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코의 간질거림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통증에 집중하면 더욱더 사띠는 선명해진다. 오로지 통증과 아는 마음만 있게 된다. 몸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몸 여기 저기에서 통증이 일어날 때 단지 지켜만 보면 된다. 일어났다가 사라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시간 좌선이 끝났다. 이미 앞서 40분 좌선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한시간 보냈다. 이는 사띠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치 몸이 쭈뼜 선 것 같았다.

 

사띠는 어떤 상태일까? 종종 자석을 생각한다. 모래에서 지남철을 댈 때 철이 달려 온다. 사띠가 확립된 상태는 지남철과 쇳가루와의 관계처럼 보인다. 지남철을 댈 때 쇳가루가 일제히 서기 때문이다.

 

무서운 것을 보면 머리가 쭈뼜해진다. 사띠도 그런 것 같다. 사띠가 확립되면 몸이 마치 일제히 한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된다. 자석과 쇳가루 관계처럼 보인다.

 

한번 사띠가 확립되면 한시간은 금방 지나가는 것 같다. 통증 등을 관찰하면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번뇌망상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스며들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좌선만 2시간 10분 했다. 이제까지 명상공간 만들어 놓고 가장 오래 한 것 같다. 일감이 없을 때, 아무런 할 일이 없을 때 앉아 있으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같다. 오늘 밥값 한 것 같다.

 

 

2023-07-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