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명상공간에서 한시간 앉아 있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28. 09:35

명상공간에서 한시간 앉아 있었는데


약속은 지켜야 한다. 온라인에서 약속한 것도 약속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오늘만큼은 한시간 좌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어제 약속을 지켰다.

하루 일과 중에 새벽시간이 소중하다. 그 다음은 아침이다. 마음이 오염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새벽같은 마음, 아침같은 마음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뉴스를 접하는 순간 깨진다.

뉴스를 보지 않는다. 작년 그날 이후로 일체 보지 않는다. 가게나 식당에 들어 갔을 때도 의도적으로 피한다. 뉴스를 접하면 격정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혼탁해지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 흙탕물이 이는 것 같다. 뉴스를 보고 흥분했을 때 이념의 노예가 되기 쉽다.

주변에는 온갖 자극으로 가득하다. 특히 도시의 삶이 그렇다.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한다. 용케 뉴스는 피해 갔지만 거리에 붙어 있는 정치현수막은 피해 갈수 없다. 정치적 구호가 적혀 있는 현수막을 보면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어제 한시간 좌선을 했다. 오전 7시 반부터 8시 반까지 했다. 아침 일찍 일터에 가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화분에 물을 주고 난 다음 자리를 잡았다. 앉기 전에 먼저 행선을 했다.

 


명상공간을 넓혔다. 이전보다 1평 이상 넓어진 것 같다. 명상공간 양 옆으로 키가 큰 화분을 배치했다. 양 옆에 사람 키 보다 큰 화분이 있으니 숲속에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할 때는 불을 꺼야 한다. 금요니까야모임에서도 10분 명상을 할 때 전등을 끈다. 약간 어두침침하면 명상이 더 잘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명상공간에서도 형광등을 켜지 않는다.

 

명상공간은 사방이 칸막이로 되어 있다. 형광등을 끄면 밖의 빛이 은은하게 들어 온다. 자연채광 상태에서 명상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행선을 한다.

명상한다고 하여 곧바로 앉지 않는다. 준비가 필요하다. 예비수행을 해야 한다. 먼저 가볍게 경행을 한다. 카페트를 도는 것이다. 이때 발의 움직을 보고자 한다. 그러나 잘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암송으로 전환해야 한다.

 


암송을 하면 집중이 된다. 여러 번 해 보아서 입증된 것이다. 암송을 하는 순간 다른 것을 할 수 없다. 오로지 외운 것을 기억해내서 표출하는 것이다. 대단히 힘이 드는 일일 수 있다. 힘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새벽이나 아침에 힘이 있을 때 암송하면 너끈하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수타니파타에 있는 정진의 경(Sn.3.2)을 말한다. 모두 25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 긴 길이의 경이다. 부처님이 성도하기 직전 악마와 싸워 이긴 것에 대한 승리의 게송이다. 빠알리어로 암송한다.

빠다나경 암송한지 일년이 넘었다. 애써 외운 것이다. 외운 것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암송한다. 그런데 암송하고 나면 대단히 상쾌하다는 것이다. 마치 천수경을 암송했을 때처럼 일시적으로 느끼는 성취감을 말한다.

암송을 하면 신심이 생겨난다. 빠다나경을 암송하면 마치 내가 부처님이 된 것 같다. 부처님 입장이 되어 악마와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악마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악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까마(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와 같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부처님은 까마(욕망), 아라띠(혐오), 쿱삐빠사(기갈), 딴하(갈애), 티나밋다(해태와 혼침), 비루(공포), 비치킷짜(의심), 막코탐보(위선과 고집)와 같은 여덟 마라의 군대를 쳐부수었다.

빠다나경을 암송하고 나면 어느 정도 집중이 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기억해 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집중인 것이다. 더구나 빠알리어 뜻을 새기며 암송하기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집중이 되면 몸과 마음이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상태로 된다.

행선을 하기 전에 암송을 하면 행선에 도움이 된다. 암송하는 것 없이 행선하면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단지 걷는 것, 몸 푸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경행이 된다.

경행과 행선은 다른 것이다. 경행은 가볍게 걷는 것이다. 선방 스님들이 참선하고 난 다음 몸을 푸는 포행같은 것이다. 행선은 좌선과 거의 동급으로 보행 명상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행명상이 가능할까? 그것은 순간집중하기 때문이다. 걷는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행선은 찰나삼매로 하는 것이다.

암송을 하고 나면 확실히 이전과 다른 상태가 된다. 이미 상당한 집중이 된 상태이다. 이 집중의 힘을 그대로 행선으로 가져 가면 힘들지 않게 행선을 할 수 있다. 발을 움직일 때 알아차림이 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행선이 끝나면 좌선을 한다. 막바로 방석에 앉으면 번뇌가 들끓듯 해서 가만 있을 수 없다. 호흡을 보고나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려 해도 망상 때문에 가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예비수행 개념으로 먼저 암송이나 행선을 하고 난 후에 앉는 것이다.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앉은 것 같다. 처음 명상공간을 만들었을 때 최소한 하루에 30분 이상 앉아 있고자 했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원인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침 시간에 앉지 않은 이유가 크다.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 되었을 때 마음은 이미 오염된 상태나 다름 없다. 품질불량 메일을 받았을 때 심하게 흔들린다. 이런 상태에서 앉아 있어 보았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 되기 전에는 5분 앉아 있기도 힘들다.

명상은 새벽이나 아침에 하는 것이 좋다. 좀 더 마음이 덜 오염 되었을 때, 좀 더 힘이 있을 때 하면 집중이 잘 된다. 그래서일까 수행은 좀 더 젊었을 때, 좀 더 건강할 때 하라고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방석에 앉았다. 명상공간을 확장하고 난 다음 처음 앉았다. 한시간 앉아 있기로 했으니 한시간 앉아 있고자 했다. 번뇌와 망념이 죽 끓듯 했으나 암송과 행선한 힘이 있어서 쉽게 진압 되었다. 생각에 속지 않은 것이다.

좌선 할 때는 눈을 감는다. 오로지 마음의 문만 열어 놓는다. , , , , 신의 문은 닫아 놓을 수 있지만 마음의 문 만큼은 닫아 놓을 수 없다. 일어나는 생각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만약 알아차리지 못하면 망상이 된다. 생각이 집을 짓는 것이다.

생각에도 무게가 있는 것 같다. 명상 중에 한생각이 일어나서 집을 지을 때 피곤함을 느낀다. 이념의 노예가 되어 투쟁을 일삼을 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생각해 본다. 생각 없는 상태가 가장 편안하고 안락하다.

한시간 좌선을 마쳤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명상을 마치고 나니 상쾌했다. 이런 기분을 하루종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한다. 유튜브를 보는 순간 깨진다. 전화 통화하는 순간 깨진다. 다시 혼탁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침 명상은 상쾌하다. 이런 좋은 기분을 생각하면 또다시 앉고 싶어 진다. 점심 식사 후에도 앉고 어느 정도 일처리가 끝난 다음에도 앉는다. 일터에 명상공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등을 끄고 은은한 자연채광이 비칠 때 선원에 있는 것 같다.


2023-06-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