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지말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22. 15:29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말자


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몹시 서두른다는 것이다. 마음은 급하고 몸은 따라 주지 않는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다 발을 의자에 부딪쳤다. 맨발을 나무에 찌이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자업자득이다. 언젠가는 일어나고야 말 사고가 지금 난 것이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발이 돌뿌리에 부딪칠 때가 있다. 아무생각없이 갖다 박은 것과 같다. 그 순간 정신과 육체가 따로 놀았다고 볼 수 있다. 정신이 한눈 판 사이에 통제를 잃은 다리가 멋대로 행위한 것이다.

멀쩡한 정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발가락에 금이라도 갔다면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것이다. 서둘다가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될까? 골반 골절이라도 발생했다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몸에 종종 멍울이 발견된다. 언젠가 어디에서인가 부딪쳤을 것이다. 주로 다리에서 발견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마 정신 줄 놓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을 때 발생한 것인지 모른다.

글을 쓰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 오를 수 있다. 이런 경우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억해 놓거나 기록해 놓아야 한다. 이럴 때 스마트폰 메모리앱은 훌륭한 메모장이 된다. 그러나 손해도 있다. 몸이 다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돌뿌리에 넘어지는 것도 해당된다.

요즘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본다.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 걸을 때는 것는 것에 집중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사고가 예견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한순간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 물론 시차를 두고 할 수는 있다. 운전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생각을 요하는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면 사고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순간에는 한가지 일만 해야 한다. 한순간에 두 마음을 낼 수 없다. 한순간에 탐욕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걸을 때는 걷는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대념처경(D22)에서도 갈 때는 간다라고 분명히 안다.(gacchanto va gacchāmīti pajānāti.)”(D.ii.292)라고 했다.

 


갈 때는 간다라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설 때는 선다라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서 '분명히 안다'라는 말은 빠자나띠(pajānāti)를 번역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위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발을 들려는 의도를 알고 발을 움직이는 행위를 아는 것이다. 나마루빠, 명색, 정신-물질 현상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모든 행위에 대해서 분명히 알 때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의자 다리에 맨발이 부딪친 것은 분명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하려다 놓친 것이다.

육체가 정신의 통제를 받지 않았을 때 고장난 기계와 같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도 정신 줄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순간에는 하나의 일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마음만 앞설 때 사고가 난다. 마음이 급할 때도 사고가 난다.

무엇에 쫓기듯 급하게 행위하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알아차려야 한다. 허리 아픈 환자처럼 천천히 하는 것이다.

일어설 때도 천천히 일어나야 한다. 앉을 때도 천천히 앉아야 한다. 걸을 때도 천천히 걸어야 한다. 옷을 입을 때도 천천히 입어야 한다. 밥 먹을 때도 천천히 먹어야 한다. 급하게 서두르면 사고 난다. 급하게 행위하면 사고는 예견 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뛰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급해도 뛰어가면 안된다. 뛰는 순간 사고 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위빠사나 선원에서는 뛰지 말라고 말한다. 뛰어 가면 지적 받는다.

 


위빠사나 선원에서는 빨리 가는 사람, 뛰는 사람은 수행이 덜 된 사람으로 본다. 눈을 아래로 하여 멍에의 길이만큼 앞을 보고 걸어야 한다. 탁발승이 사띠하며 걷는 것처럼 걷는 것이다.

 


걸을 때는 사띠하며 걸어야 한다. 이렇게 걸었을 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갓찬또 봐 갓차미띠 빠자나띠(gacchanto va gacchāmīti pajānāti.)”(D.ii.292)라고 하는것이다. 갈 때는 간다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


2023-06-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