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위빠사나 지혜에 이르는 자는 만명 중에 하나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27. 08:31

위빠사나 지혜에 이르는 자는 만 명 중에 하나

 


지금 시각은 3 20, 빠다나경을 암송하고 경행을 했다. 확실히 경행 전후가 다르다. 암송 과정에서 기억해 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집중을 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지 집중이 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부할 때도 집중해야 하고, 일할 때도 집중해야 한다. 당연히 수행할 때도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는데 있어서 암송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행선한다고 하여 단지 걷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좌선한다고 하여 단지 앉아 있는 것만으로 역시 되지 않는다. 먼저 마음을 대상에 묶어 두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호흡이기 쉽다. 그러나 더 효율적인 방법은 암송인 것 같다.

암송하고 나면 어느 정도 사띠가 확립된 것 같다. 어느 정도 집중된 상태이기 때문에 망념이 일어나도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경행을 하면 행선이 된다. 암송에서 집중된 힘을 행선으로 가져 가는 것이다.

행선에서 집중된 힘을 좌선으로 가져 갈 수 있다. 이는 경전에서도 확인된다. “경행이 목표로 하는 집중을 오래 유지시킨다.”(A5.29)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경에 따르면, 행선을 하면 집중을 오래 유지시킨다고 했다. 한시간 행선 했다면 한시간 집중이 유지 된 것이다. 이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 가는 것이다.

좌선한다고 하여 곧바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개 20분 정도 호흡에 집중하면 어느 정도 집중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행선에서 집중된 힘을 좌선에 적용하면 곧바로 집중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행선의 이점에 대하여 설명해 놓았다.


앉으면, 서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상이 사라진다. 누우면, 앉아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상이 사라진다. 경행하면,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 경행할 때의 집중은 앉아 있는 것보다 어렵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면, 오래 지속되고 몸의 자세를 바꾸어도 그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Mrp.III.236)


좌선하다가 일어서면 니밋따(표상)가 깨진다. 그러나 행선하다가 좌선하면 사띠가 유지 된다는 것이다. 행선해서 사띠가 확립되면 여간해서는 깨지지 않음을 말한다. 아마도 그것은 찰나삼매이기 때문일 것이다. 움직이는 대상을 관찰했을 때 순간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선에서 집중은 꽤 오래 간다고 했다. 좌선의 니밋따는 일어서는 순간 깨지지만, 행선에서 좌선으로 가면 그 집중이 계속 유지됨을 말한다. 그래서 경에서는 경행이 목표로 하는 집중을 오래 유지시킨다.”(A5.29)라고 했다. 주석에서는 몸의 자세를 바꾸어도 그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Mrp.III.236)라고 한 것이다.

어제 글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한시간 좌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을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더구나 월말 마감 서류 작성하고 주문서 대로 작업하다 보니 오후가 다 지나가 버렸다. 저녁에 하려 했으나 지친 상태에서 할 수 없었다. 결국 공수표 발행한 상태가 되었다.

수행은 힘 있을 때 해야 한다. 수행은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한다. 아침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침 이후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수행을 할 수 없다. 일처리하다 보면 역시 수행을 할 수 없다.

사람과 일을 떠난 상태에서 수행할 수 있다. 하루 일과 중에 수행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새벽과 아침시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자기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수행을 해서 어쩌자는 건가?

수행을 하는 목적은 다른 상태가 되기 위함이다.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해당된다. 수행한다고 하여 닦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더러운 거울을 닦는 것이 연상된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본마음을 드러내는 것, 내가 본래 부처인 것을 아는 것을 수행이라고 말한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무언가 어떤 상태로 되는 것을 말한다. 현재의 상태에서 수행을 통해서 다른 상태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을 빠알리어로 바와나(bhavana)라고 한다. 여기서 바와나는 문자적으로 존재를 뜻한다.

수행의 본래 의미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드는 것도 수행에 해당된다. 범부에서 성자가 되는 것이 수행인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행의 종착지는 아라한이 된다. , , 치가 소멸된 상태로 번뇌가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아라한은 늘 사띠하고 있기 때문에 번뇌가 치고 들어 올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망념이 일어났다고 해도 강력한 사띠로 인하여 힘 쓰지 못할 것이다.

아라한은 죽는 순간까지 사띠를 유지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사띠는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늘 강조된다. 정진도 사띠의 연장선상으로 본다.

2019 1월 미얀마 갔었을 때의 일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담마마마까 선원에 갔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때 에인다까 사야도를 단체로 만났다. 그때 정진에 대해서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혜송스님이 통역해 준 말에 따르면 사야도가 말하는 정진은 철저하게 사띠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띠를 놓치지 않는 것이 정진이라고 했다.

어떤 것이든지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사야도와 첫 만남도 기록해 두었다.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상견례에서 세 가지를 강조했다. 그것은 위리야(정진)와 사띠(정념)와 빤냐(지혜)에 대한 것이다. 사야도는 사띠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정진이라 했다. 또 사띠가 성성하게 유지 되는 것이 정념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오온에 대하여 심, , , 법으로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고 보는 것이 지혜라 했다. 이 모든 것이 사띠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고 있음을 강조했다."(사야도 상견례, 담마마마까 수행기2, 2019-01-17,https://bolee591.tistory.com/m/16159088)



사야도는 2018 12 31일 저녁에 만났다. 사야도가 말한 것을 스마트폰 메모앱에 써 놓았다. 기억을 되살려 수행기를 작성한 것이다.

사야도는 첫날 사띠를 강조했다. 항상 사띠가 끊어지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정진하는 것도 사띠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 봤다. 더구나 사야도는 위빠사나 지혜에 이르는 자는 만명 중에 하나라고 했다.

위빠사나 수행한다고 하여 누구나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수행을 잘 하는 사람은 어쩌면 전생에서부터 수행자로 살았는지 모른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위빠사나 지혜가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만명 중에 하나라고 했다. 이 말을 듣자 나는 어느 세월에 가능할까?”라고 생각되었다. 이에 이렇게 본다면 이번 생에서 수행은 다음 생을 위한 공덕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을 남겼다.

담마마마까 에인다까 사야도는 첫날 수행자들에게 충격을 준 것 같다. 더 잘 하라는 의미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인다까 사야도가 말한 것을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 발견했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마하시 사야도의 손자뻘 된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스승인 쿤달라 사야도가 마하시 사야도의 직제자 중의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에인다까 사야도가 마하시 사야도의 저술을 보고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보면 정진에 대해서 사띠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관련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새길 때마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노력이 분명하게 생겨난다. 가끔씩 어떠한 자세를 시작으로 처음부터 노력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 너무 지나치게 애를 쓰게 된다. 그때에는 들뜸이 제거 되지 않아 새김이 좋아야 할 만큼 좋지 않게 되기도 한다. 가끔씩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부터 노력을 너무 느슨히 하여 나중에도 너무 느슨하게 된다. 그때에는 혼침이 제거되지 않아 새김이 희미하게 된다.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부터 느슨하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노력하든가, 지나친 노력을 조금 줄이든가, 너무 느슨한 상태일 때 조금 애를 더 쓰든가 하여 균형 잡힌 노력이 생겨나면 너무 열심히 애를 쓰지 않기 때문에 들뜸도 없고, 애를 전혀 쓰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해태·혼침도 없다. (대상이)생겨날 때마다 (그 대상들을)놓치지 않고 새기기만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정진 깨달음 구성요소(viriya sambojhanga)이다.”(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 520)


마하시 사야도는 정진각지에 대하여 새김(사띠)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정진각지를 수행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다. 사띠가 유지 되어야만 위빠사나 지혜가 생겨나기 때문일 것이다.

마하시 사야도는 수행의 관점에서 칠각지를 설명했다. 염각지에 대해서는 생멸의 지혜를 시작으로 새김이 깨끗해졌을 때 새길 때마다 그 대상 들에 꽉 밀착하여 머무는 듯이 드러나는 새김이 매우 분명하게 생겨난다.”(519)라고 설명했다.  

칠각지는 생멸의 지혜 이후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생멸의 지혜 이후 사띠에 대해서는 어느 대상 하나를 새겨 알고 나면 즉시 다른 하나가 저절로 드러난다.”(519)라고 했다. 이는 “대상 들에 꽉 밀착하여 머무는 듯이 드러나는 새김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은 수행과 관련하여 새겨야 할 것으로 가득하다. 택법각지에 대해서는 무상, , 무아의 성품을 분명히 아는 것이라고 했다. 정각지에 대해서는 찰나삼매에 대하여 삼매 깨달음 구성요소(사마디 삼보장가)라고 했다. 이런 말은 다른 데서 보지 못했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 처음 본다.

지금 시각은 5 15분이다. 3 20분에 엄지치기를 시작한 이후 거의 2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수행에 관하여 글을 쓰는 것도 수행에 해당될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은 어떤 상태로 되는 것이다. 범부에서 성자로 되는 것이 수행일 것이다. 그런데 수행은 좀 더 건강할 때, 좀 더 젊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이 있을 때 어떤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태가 지속되도록 해 놓아야 한다.

날이 밝았다. 하루 일과에서 가장 힘이 있을 때이다. 아직 번뇌가 일어 나지 않았을 때 수행하기 좋은 시간이다. 전화가 걸려 오고 사람을 만나고 업무를 하다 보면 수행을 할 수 없다. 새벽에 또는 아침 시간에 암송하고 행선하고 좌선하는 것이 좋다. 오늘은 꼭 실천하고자 한다.


2023-06-27
담마다사 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