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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권 외국성지순례기 VI 스리랑카 2022, 스리랑카 순례 일년 대장정을 마치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3. 12:36

107권 외국성지순례기 VI 스리랑카 2022, 스리랑카 순례 일년 대장정을 마치고
 
 
마침내 편집작업을 마쳤다. 거의 천장에 달하는 사진을 작게 하여 배열하는 작업은 거의 한달 걸렸다. 조금씩 하다 보니 다 하게 되었다. 스리랑카 순례 다녀온지 11개월만의 일이다.
 
스리랑카 순례를 다녀온 것은 작년 2022년 12월의 일이다. 꿈에 그리던 순례였다. 코로나 바로 전에 가려고 했었으나 좌절되었다.
 
그때 2019년 12월 25일 스리랑카 순례 떠나는 날이었다. 불교방송 사업단에서 주관하는 성지순례를 말한다. 아산 마하위하라 주지 담마끼띠 스님과 함께 하는 성지순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당일 장인이 돌아가셨다.
 
장인상으로 인하여 순례는 불발되었다. 6개월 후인 다음해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2020년 1월부터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순례는 언제 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은 없다. 코로나가 끝나자 다시 추진했다. 마침내 2022년 12월 3년만에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뉴욕에 사는 김형근 선생과 미국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 혜월스님과 함께 하는 순례가 되었다.
 

 
스리랑카는 나에게 있어서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 없다. 블로그에 글쓰기를 하면서부터 스리랑카를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살아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부처님의 나라로 보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많이 다녀 본 것은 아니다. 성지순례 명목으로 중국, 일본, 불교, 미얀마를 갔었다. 미얀마를 갔었을 때 이곳이야말로 부처님의 나라라고 보았다. 그런데 스리랑카를 가보니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얀마가 최고로 좋은 줄 알았더니 스리랑카가 있었습니다.”라며 말하고 다녔다.
 
스리랑카 불교를 접한 것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흰옷 입은 불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접한 것이 시초이다. 어느 미국 비구의 여행기를 본 것을 말한다.
 
유튜브에서도 스리랑카 불교를 접했다. 한국에 있는 어느 사찰에서 스리랑카 승려가 예경문과 삼귀의, 오계를 빠알리로 하는 것을 보고 소리가 매우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스리랑카 예불의식을 들으면 듣는 것만으로 힐링 되는 것 같다. 아산 마하위하라에서 붓다의 날이나 까띠나 행사가 있을 때 스리랑카 스님의 낭송을 들으면 저절러 삼매에 들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스리랑카 음악을 접했다. 유튜브에서 난다 말리니의 자야망갈가타 음악을 접했을 때 마음이 충만했다. “언제나 나도 저 나라에 가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시절인연이 되어서일까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되었다.
 
스리랑카 순례는 12월 12일부터 12월 18일까지 일주일동안 이루어졌다. 그러나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후기를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사진을 찍고 메모를 했다.
 
여행을 하면 반드시 후기를 남긴다. 후기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다. 특히 성지순례가 그렇다. 스리랑카 성지순례기를 거의 10개월 썼다. 목차를 만들어 보니 47개의 글에 달한다. 수많은 사진을 곁들였다. 그러다 보니 534페이지에 달하는 긴 분량이 되었다. 이를 ‘107 외국성지순례기 VI 스리랑카 2022’으로 제목으로 했다. 107번째 책으로 2022년 순례한 것을 말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성지순례는 언제쯤이나
2. 스리랑카 성지순례 할 분 두 분 모십니다
3. 스리랑카 성지순례 항공권을 끓고
3. 스리랑카 성지순례 떠나는 날에
4.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대장정을
5. 구도 순례기를 쓰고자
6. 태국 공항에서 하루밤을, 수완나품 박스텔
7. 황금의 땅 수완나부미, 수완나품 사리탑
8. 공항에서 혜월스님을 만나고, 콜롬보 공항

9. 콜롬보 시내 투어, 강가라마야 사원
10. 가이드겸 운전기사 가미니와 함께, 아누라다푸라 가는 길에
11. 저렴한 숙소와 청정한 식사, 아누라다푸라 게스트하우스
12. 왜 신성도시라고 했을까? 이수루무니야
13. 불탑에서 탑돌이를, 미리사베띠야
14. 어둠 속에 빛을 내는 다고바, 루완웰리세이야
15. 부처님 오른쪽 쇄골뼈가 있는, 투파라마야
16. 이 댓돌을 딛고 가는 자 열반에 이르리라! 아바야기리 문스톤
17. 사마디 불상 유적에서 데자뷰를, 아바야기리 유적
18. 대탑은 왜 붉은색일까? 아바야기리 다고바
19. 부처님은 불상에 동의했을까? 아바야기리 1번 사마디불상
20. 불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제따바나라마야
21. 기도 대신 불공(佛供)을, 스리마하보디 보리수
22. 스리랑카 비구니계맥은 복원되었을까? 비구니 사원 위하라마하데비
23. 산정에서 밀림의 지평을, 미힌탈레
24. “빨리, 빨리”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 길거리 시골식당
25. 위대한 군주 파라크라마바후, 폴론나루와 왕궁유적
26. 치아사리의 수난, 폴론나루와 불치사
27. 그들은 출가목적을 달성했을까? 파리베나 포살당
28. 아난다상인가 불상인가? 갈 비하라 
29. 숲속 오두막집에서, 시기리야 게스트하우스
30. 부왕을 살해한 업보, 시기리야
31. 동굴은 열반과 동의어, 순례기 27담불라
32. 아유르베다 농원에서, 스파이스가든
33. 정법수호를 위한 결집과 삼장의 기록, 알루비하라
34. 침략자의 종교로 편입되지 않은 것은, 불치(佛齒)의 성지
35. 영역 경전 구입, BPS(Buddhist Publication Society)
36. 한가하고 한적한 사원, 란카틸라카
37. 천상의 고원, 누와라 엘리야
38. 길에서 만난 두려움과 공포, 강제 코끼리 사파리
39. 부처님이 방문한 위대한 축복의 탑묘, 키리베헤라
40. 습지와 저수지와 호수의 나라, 스리랑카 동남부
41. 게스트하우스 주인가족의 환대
42. 제국주의 흔적, 갈레
43. 올코트 대령의 오래된 일기, 비자야난다 피리베나
44. 성보로 가득한 작은 사원, 갈와두고다
45. 불교가 이겼다! 파나두라 광장
46.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심은 이런 것, 켈라니야
47. 한국의 다르마팔라는 언제 출현할까? 마하보디소사이어티

107권 외국성지순례기 VI 스리랑카 2022 (1)_231103.pdf
14.04MB
107권 외국성지순례기 VI 스리랑카 2022 (2)_231103.pdf
12.26MB

 

 
일주일동안 스리랑카 전역을 돌아 본 것이나 다름 없다. 승용차를 렌트하여 운전기사겸 가이드인 가미니와 함께 다녔다.
 
승용차로 다니다 보니 자유로웠다. 아무 곳이나 세워서 코코넛 주스를 마시는가 하면 카페에 들어가서 실론티를 마시기도 했다. 이는 스리랑카 사람 혜월스님이 있어서 가능했다.
 
후기를 작성하면서 병이 날 듯 했다. 잘 써야 된다는 부담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후기 중의 일부는 미주현대불교에 연재되기도 했다.
 
후기는 매우 상세하게 썼다. 먼저 역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검색이 이루어졌다. 현지에서 촬영한 사진과 검색한 자료, 그리고 경전을 인용하여 글을 완성했다.
 
글을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처음 본 유적이나 성지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먼저 공부를 해야 했다. 검색을 하고 관련 서적을 참고 했다. 글 하나 나오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 것 같다.
 
스리랑카에서 놀란 것이 있다. 그것은 스케일이 크다는 것이다. 조그만 섬나라에서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유적이 있을 줄 몰랐다.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불탑이 대표적이다.
 

 
목차 14번에 ‘어둠 속에 빛을 내는 다고바 루완웰리세이야’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불탑을 보았을 때 불탑의 진수를 맛보았다.
 
높이가 50미터가 넘는 반구형의 불탑을 보았을 때 가슴이 뛰었다. 더구나 야간에 백색으로 빛나는 불탑을 보았을 때 마음이 충만했다. 그래서 “부처님 정법이 살아 있는 불국토가 바로 이곳이구나!”(2023-01-12)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문헌에서만 보던 아바야기리라고 불리우는 무외산사도 보게 되었다. 이는 목차 17번에‘사마디 불상 유적에서 데자뷰를, 아바야기리 유적’(2023-01-18)라는 제목의 글에 실려 있다.
 
아바야기리 유적은 4세기에 중국의 법현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다. 법현스님은 그때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아바야기리 불상 유적에 섰을 때 묘한 데자뷰가 왔다는 것이다.
 

 
아바야기리 유적에 사마디불상이 하나 있다. 어깨가 부러지고 코가 깨진 불상이다. 법현스님이 머물렀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상이 있는 주변의 유적의 모습이 너무 익숙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보자 순간적으로 혹시 내가 전생에 이곳에서 수행자로 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2023-01-18)라고 써 놓았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3세기 때의 일이다. 그때 당시 마우리아 왕조 아소까 대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가 불교를 전해주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교는 공인된 불교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스리랑카 불교는 종가집이나 다름없다. 테라와다불교의 시작은 스리랑카불교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스리랑카 불교는 오늘날 세계불교의 종주국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3차 결집으로 공인된 불교를 고스란히 보전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경전이 전승되어 오고, 팔장도 수행이 있고, 팔정도 수행으로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다면 정법시대로 보는 것이다. 스리랑카불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스리랑카는 신심의 나리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나 흰옷 입은 신심 깊은 불자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불탑이나 보리수, 불상에 꽃 등으로 불공 드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바로 이런 것이 스리랑카 불교의 힘일 것이다.
 

 
스리랑카 일주일 동안 마음이 충만했다. 부처님 당시의 불교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무엇보다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심이다. 마치 경전 속에서 보는 불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스리랑카 불자들이 꽃공양 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불탑, 보리수, 불상에 불공 드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대체 그들은 어떤 기원을 하는 것일까?
 

 
절에 가면 법당에 가서 삼배를 한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스리랑카 불자들이 불공 드리는 모습을 보니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는 촬영된 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진정성 있게 불공 드리고자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불상 앞에서 오체투지 한다. 탑이 있으면 탑돌이를 한다. 성물이 있으면 합장한다. 이럴 때 스리랑카 불자들 같이 하고 싶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 무언가 기원을 하는 것이다. 무엇일까? 생각해 낸 것은 ‘사대축원’이다.
 
전세계적으로 어느 나라 불자이든지 기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리랑카 불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사대바람이라 해서 건강, 사업, 학업, 치유에 대한 것이다.
 
한국불자들도 건강, 사업, 학업, 치유라는 사대바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바람이 법구경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유 반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이라는 가르침이다. 이 말은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Dhp.109) 라는 뜻이다. 장로스님이 보시를 하는 재가자에게 축원해주는 말이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오래 사는 것이다. 그것도 무탈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장수축원을 최상의 축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법구경에서는 세 가지가 더 있다. 그래서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게”라는 사대축원이 되는 것이다.
 
성지에 가면 불공을 드린다. 바라는 기도가 아니다. 절대자와 거래하는 듯한 기도가 아니다. 불공 드리는 자는 자신이나 자신의 부모가 또는 자신의 가족이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Dhp.109)라며 소박하게 바라는 것이다.
 

 
스리랑카 불자들의 불공드리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 이제까지 형식적으로 삼배하거나 합장하는 것을 반성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불공드리는 것이 최상일까?
 

 
스리랑카 불자들이 애송하는 게송이 있다. 이는 ‘자야망갈라가타(Jayamagala Gāthā)’를 말한다. 한자로는 ‘길상승리게(吉祥勝利偈)’이다. 우리말로는 ‘승리와 축복의 노래’이다.
 
자야망갈라가타는 경전에 실려 있지 않다. 스리랑카 중세 때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던 게송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개업식, 심지어 독립기념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합송되는 게송이다.
 
자야망갈라가타에는 여덟 게송이 있다. 여덟 가지 부처님의 승리에 대한 게송이다. 그런데 각 게송마다 후렴구가 있는데 바로 이 후렴구가 자타를 위한 훌륭한 축원이라는 것이다.
 
후렴구는 “땅  떼자사  바와뚜  떼  자야  망갈라니 (Ta tejasā  bhavatu  me  jayamagalāni)”라고 되어 있다. 이는“이 위대한 힘으로 승리의 행운이 제게 임하길 바라옵니다.”라고 해석된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승리와 행운이 임하길 바라는 것이다.
 
축원은 자신의 것이 되기도 하고 타인의 것이 되기도 한다. 후렴구에서 ‘나’를 뜻하는 ‘메(me)’ 대신에 상대를 뜻하는 ‘떼(te)’로 바꾸면 상대방을 위한 축원이 된다.  그래서 “이 위대한 힘으로 승리의 행운이 그대에게 임하길 바라옵니다.”가 된다.
 
축원은 자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신과 타인을 위하여 부처님의 승리의 행운이 자신에게 또는 그대에게 임하길 바라는 것이다.
 
불자로서 불상 앞에 설 때가 많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자야망갈라가타 후렴구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 축원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서 라면 “내가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라고 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머니라면 “우리 어머니가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라며 축원하는 것이다. 상대가 딸이라면 “우리 딸이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라며 축원하는 것이다.
 
스리랑카 순례가 끝났다. 꿈에도 그리던 순례였다. 현지에서 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례기를 작성함으로 모두 끝났다. 그러다 보니 거의 일년 걸린 순례가 되었다. 일년 대장정의 순례기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2023-11-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