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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권 위빠사나수행기 IV 2022, 명상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15. 12:49

109권 위빠사나수행기 IV 2022, 명상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
 
 
장갑 떨어졌어요.”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들었다. 날씨가 추워 장갑을 꼈는데 스마트폰을 보느라 장갑을 주머니에 집어 넣는 과정에서 떨어뜨린 것이다.
 
자꾸 흘린다. 자꾸 떨어뜨린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우려한다. 유튜브에서 최준식 선생은 “제가 이럴 줄 몰랐습니다. 나이가 칠십이 되다 보니 자꾸 흘리고 자꾸 떨어뜨립니다.”라고 말했다.
 
장갑을 흘렸다.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서야 발견했을 것이다. 그 결과 장갑을 새로 사야 했을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현명한 주의기울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새김(사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김이 없는 삶은 언제 어떻게 사고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어제 밤과 오늘 아침 속이 좋지 않았다. 어제 저녁 늦게 먹은 것이 화근이다. 그것도 탐욕으로 먹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후회의 마음이 일어났다. 일은 이미 벌어졌다. 화장실에 자주 가는 과보를 받았다.
 
종종 글에서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표현을 쓴다. 무언가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날 때 “이것은 악마의 속삭임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저녁에 탐욕으로 먹었을 때 그 탐욕도 역시 악마의 속삭임으로 보아야 한다.
 
오온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괴로움에 처하게 된다. 마음 하자는 대로 하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괴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새기면 괴로움을 막을 수 있다. 어제 저녁 탐욕이 일어났을 때 “탐욕, 탐욕”이라고 명칭 붙였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다. 내일은 어제 같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은 일상이다. 그러나 마음 먹기에 따라 괴로운 하루가 될 수 있다. 어제 저녁의 탐욕으로 인하여 일터에 와서도 화장실에 한번 더 가야 했다.
 
오늘도 한시간 좌선을 해야 한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나면 한시간 동안 앉는다. 이제까지 이렇게 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먼저 일을 한 다음에 좌선에 임하는 것이다.
 
할 일은 많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하는 것도 일이지만 나에게는 글을 쓰는 것도 일이고 책을 만드는 것도 일이다. 오늘 오전은 책만들기에 있어서 목차를 만드는 일을 하고자 했다.
 
목차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글을 모아 놓고 번호를 붙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진을 배열하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글의 제목을 바꾸는 것이다. 글 내용은 변경이 없지만 글 제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만든 책은 수행기에 대한 것이다. 위빠사나 네 번째 수행기를 말한다. 이를 ‘109 위빠사나수행기 IV 2022’라고 이름 붙였다. 통산 109번째 책으로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위빠사나 수행한 것에 대한 글 모음이다. 글은 모두 61개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옥(玉)처럼 아름답게 부서져라!
2. 경을 암송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3. 행선을 하면 사띠와 삼빠자나가 동시에
4. 나는 언제나 하루 한시간 이상 앉아 있을까?
5. 새벽 두 시에 행선했는데
6. 진리의 말씀은 외워야
7.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정을 이룰 수 있을까? 
8. 내가 흥분과 격정에 휩싸였을 때

9. 눈 먼 자처럼 귀 먹은 자처럼
10. 몸과 마음을 극적 반전시키려면
11. 행선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
12. 시각이 나를 속일지라도
13. 매일 내면의 제사를
14.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서 가치를 찾고자
15. 손가락 튕기는 순간 무상을 지각할 수 있다면
16. 본수행에 앞서 왜 예비수행을 해야 하는가?
17. 마음은 본래 불선한 것
18. 더럽혀진 심신을 어떻게 해야 깨끗이 할 수 있을까? 
19. 포살일 저녁 굶어 보니
20. 감각적 욕망에는 허물이 없다는 사견
21. 한국마하시선원 붓다의 날에
22. 암송하며 걷다 보면

23. 앎(知)만 있고 봄(見)은 없는 지식인들
24. 암송 하면 몸과 마음이 전혀 다른 상태로
25. 나는 언제나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26. 침을 침으로 닦으려 한다면
27. 실로 나는 이 길로 달려왔다
28.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행선
29. 산행이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은
30. 왜 자신을 의지처로 해야 하는가?
31. 경을 암송한 힘으로 행선 했을 때

3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3. 관념을 말하지 말고 느낌을 말하세요 
34.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다
35. 이제 다시 악마에게 정복당하지 않으리
36. 세상이 순간적으로 아름답게 보일 때
37. 왜 느낌 없는 것이 최상의 행복인가?
38. 부러진 이빨을 보며
39. 늙고 병들면 누구에게 의지 해야 할까? 
40. 경을 암송해서 얻는 이득

41. 오늘은 오늘 해야 할 일에 열중해야지
42. 새벽에 암송하고 행선하고 좌선하기
43. 대장경처럼 오래 보관 되는 글을 쓰고자
44.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뒤숭숭할 때

45. 마음이 울적할 때는 차 한잔과 명상 한판
46.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47. 어제 보다 나은 삶을 원하려거든
48. 왜 열반을 최상의 행복이라 했을까?
49. 인생은 괴롭다는 것을 알아야
50. 나의 사무실은 암자와 같다
51. 어떻게 해야 마음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을까?
52. 수행은 욕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53. 통증의 파도와 생각의 쓰나미가 밀려 왔을 때
54. 스님의 너털웃음을 보면
55. 행선을 할 때 동시에 세 가지를 볼 수 있다
56. 쉐우민 수행법에 대하여
57. 믿고 따를 수 없는 스승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58. 수행공덕은 축적된다
59. 암송으로 극적반전을
60. 참나를 부정한 부처님의 설법을 보면

61.
수행은 어떤 상태로 되는 것
 

109 위빠사나 수행기 IV 2022_231111.pdf
3.96MB

 

 
 
책 만들기 할 때 목차까지 달아 놓으면 일은 90프로 끝난다. 마무리는 서문 쓰는 것으로 한다. 이럴 때 책의 서문은 화룡점정(畵龍點睛)과도 같은 것이다.
 
목차 만들기가 끝나자 자리에 앉았다. 오늘 한시간 좌선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목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집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 가면 효과적이다.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앉아야 할까? 오른발을 왼발 위로 하는 것이 있다. 이를책상다리라고 한다. 편하게 앉는 다리를 말한다. 그러나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눌릴 것 같다. 평소대로 평좌로 했다.
 
앉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다리저림 등 통증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좌선을 매일 백일 이상 했기 때문에 적응 한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몸만들기는 실현된 것이다.
 
재가우안거에 들어 갈 때 목표가 있었다. 거창하게 ‘생멸의 지혜’와 같은 지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시간 앉아 있어도 통증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몸만들기’라고 했다. 백일이 지난 현재 몸은 만들어졌다.
 
오늘 컨디션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어제 탐욕으로 먹은 과보로 인하여 화장실에 자주 왕래 했는데 마지막으로 용변을 보고 나자 시원함을 느꼈다.
 
설사가 날 정도로 탈이 난 것은 아니다. 용변을 보고 나자 후련했다. 더 이상 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청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시간 좌선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좌선을 할 때는 늘 그렇듯이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긴다. 처음에는 잘 새겨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명칭을 붙여서라도 새겨야 한다. 의도적으로라도 새겨야 한다. 부품과 꺼짐뿐만 아니라 엉덩이 ‘닿음’도 새겨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잡념이 치고 들어 올 수 있는 구석이 없게 된다.
 
좌선을 시작한지 몇 분 되지 집중이 되었다. 평소와 다른 양상이다.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평좌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담요를 무릎 위에 깔았다. 이렇게 되자 안온한 느낌이 되었다.
 
푹신한 방석에 잔뜩 껴입고 거기다가 담요까지 덮었다. 이런 상태에서 부품, 꺼짐, 닿음을 새겼다. 똑 같은 동작을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백 번이든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재미가 붙는다. 동시에 집중이 된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부품과 꺼짐, 그리고 닿음을 새기는 것은 마음을 현재에 두는 것이다. 마음을 현재에 두면 마음은 과거나 미래로 가지 않는다. 설령 잡념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새김이 있는 상태에서는 금방 제압되어 망상으로까지 전개되지 않는다.
 
요즘 날씨가 춥다. 오늘도 아침 기온은 4도가 되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서인지 백권당 사무실 난방장치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좌선 중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음이다. 지난 재가우안거 때 소음으로 인하여 신경이 곤두선 적 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시달렸다. 또한 전철 지나가는 소리, 냉장고 모터 돌아는 소리, 원인을 알 수 없는 건물 전체에서 나는 기계음 등 갖가지 소음으로 시달렸다. 그래서 “사람이 살지 않는 산중이나 동굴에서 수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생각했었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 같다. 난방장치가 가동되자 소리가 정겨웠던 것이다. 마치 난로 위에 주전자 물 끓는 소리처럼 난방장치 철판에서 “부르르”하며 떠는 소리가 났을 때 마음이 안정되었다.
 
난방장치 가동소리는 거슬리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차 지나가는 소리, 전철 지나가는 소리 등 갖가지 소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김을 확립해야 한다. 새김이 확립되면 어떤 소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김이 확립되면 잡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 오전 좌선에서는 배의 부품과 꺼짐, 닿음을 새겼을 때 십분도 지나지 않아 새김이 확립되었다.
 
한번 새김이 확립되면 잘 깨지지 않는다. 새김이 확립되면 몸의 상태가 변한다. 마치 자석을 쇳가루에 대는 것과 같다.
 
자석을 쇳가루에 대면 쇳가루가 곤두선다.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새김이 확립되면 마치 자석 앞의 쇳가루처럼 몸이 곤두서는 것 같다.
 
새김이 확립된 상태에서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것 같다. 이를 파도치는 바다에서 섬처럼 안은하고,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을 떠나 동굴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안온하다.
 
안은하고 안온한 상태가 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매혹적인 장면을 보는 것이 행복이라 하지만 그런 행복과 비할 바가 아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이 세상에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엄마품과 같은 보드라운 감촉과도 역시 비할 바가 아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행복은 거친 것이다. 그러나 좌선해서 사띠가 확립되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미세한 것이다. 이를 잔잔한 행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잔잔한 행복은 마음이 충만된 상태를 말한다. 감각적으로 느끼는 거친 행복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잔잔한 행복은 꽤 오래 간다는 것이다.
 
거친 감각적 행복은 강렬하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한다. 단지 지금 여기서 경험되어지는 일시적인 행복한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느낌은 괴로운 것이다. 즐거운 느낌이 괴로운 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아 불만이기 때문이다. 거친 감각적 즐거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아 괴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거친 감각적 행복에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 거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여기에서의 ‘즐거움’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말로 말하면 지금 여기에서 ‘쾌락’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눈과 귀 등으로 즐기는 ‘오욕락’이기 쉽다.
 
명상에서의 행복은 오욕락을 떠난 것이다. 좌선에서의 잔잔한 행복은 오욕락을 여의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을 바탕을 둔 행복과 욕망을 떠난 행복이 있다. 전자는 세속적인 행복이다. 후자는 수행자의 행복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수행자의 행복은 거친 감각적 행복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감각적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장쾌한 경관에 탄성을 내지만 몇 분 가지 않는다. 극히 짧은 순간 행복을 맛 볼 뿐이다. 맛 있는 음식도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끝난다. 보드라운 감촉도 일시적이다. 그러나 욕망을 여읜 행복은 꽤 오래 간다.
 
오늘 한시간 좌선 했다. 한시간 내내 행복했다. 그냥 이대로 계속 있고 싶었다. 세상에 어떤 행복이 한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을까?
 
목차 11번 항목을 보면 ‘행선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2022-01-31)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행선하는 즐거움에 대하여 쓴 것이다.
 
행선은 여섯 단계로 한다. 발을 들고, 발을 들고, 발을 밀고, 발을 내리고, 발을 딛고, 발을 누르는 여섯 단계를 말한다. 이와 같은 여섯 단계는 새겨야 한다. 반복해서 새기다 보면 맛이 난다는 것이다.
 

 
음식을 씹을 때 반복해서 씹으면 맛이 난다. 등산할 때 한발한발 앞으로 하여 오를 때 걷는 맛이 난다. 어떤 것이든지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즐거움이 생겨난다.
 
행선도 여섯 단계로 반복하다 보면 즐거움이 생겨난다. 좌선도 배의 부품과 꺼짐, 그리고 엉덩이 닿음을 차례로 새기다 보면 즐거움이 생겨난다. 이럴 때 “좌선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라고 말하게 된다.
 
오늘 좌선은 행복했었다. 어제 저녁에 탐욕으로 먹은 것이 탈 나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나 좌선 한시간으로 인하여 깨끗이 제압되었다. 이럴 때 “명상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라고 말하고 싶다.
 
 
2023-11-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