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차량소음없는 적막강산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8. 10:40

차량소음없는 적막강산에서

 


하루해가 짧다. 해떨어지면 어둠이다. 세상은 밝음과 어둠만 있는 듯 보인다.

여기는 남쪽 월출산 가까이에 있는 기찬자연휴양림이다. 세상이 고요하다. 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불선업을 일으키게 하는 오토바이 소음이 없다. 적막강산이다.

 


나는 힐링했는가? 일상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멀리할 수 없다. 만일을 대비해서 노트북은 가지고 다닌다.

어제는 비가 오락가락 했다. 갑자기 쏟아지다가 멈춘다. 잠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쨍쨍하다. 바람도 불었다.

"내가 날씨처럼 변할 사람 같소?" 김동수 열사가 말한 것이다. 조선대 추모비에 써 있다.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삼일이상 청명한 날은 지속되지 않는다. 공기가 탁해지면서 구름이 되고 비를 뿌린다.

사람들은 날씨처럼 변덕이 죽끓듯하다. 마치 울었다가 웃었다가 하는 아이 같다. 이럴때 변치않는 마음은 성층권의 청공같다.

마음이 오염되면 세상도 오염된다. 이념투쟁에 골몰하면 폭력적 세상이 된다. 세상을 바꾸려거든 먼저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중생도 청정해진다.

이 마음은 오랫동안 오염되어 왔다. 탐, 진, 치로 오염된 마음은 이 생뿐만이 아니다. 세세생생 오염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축생에게서 윤회의 두려움을 본다. 오로지 식욕과 번식욕만 있는 축생의 세계이다. 식사가 대사가 된 사람들은 축생과 다를 바 없다.

식사라고 해서 반드시 먹는 것만 말하지 않는다. 물질도 식사이고, 느낌도 식사이고, 의도도 식사이고, 의식도 식사이다. 오온에 집착된 마음이 식사인 것이다.

식사는 몸을 지탱하게 해준다. 네 가지 식사를 하면 윤회의 땔감이 된다. 사람들은 즐거운 느낌에 목숨을 건다. 죽어도 좋은 것이다. 접촉의 식사를 하는 것이다.

남도에 사람들이 없다. 공장도 보이지 않고 산업단지도 없다. 스리랑카 농촌지역을 보는 것 같다.

세상이 한가하다. 사람이 없다 보니 산은 들에서 바로 돌출된다. 이른바  평지돌츌형이다. 민중의 신앙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신령스러운 산이 되었다.

 


남도에는 가을이 없다. 오로지 푸르름만 있다. 백련사에 갔더니 봄인지 여름인지 모르겠다. 짙푸른 동백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감이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해남, 강진, 영암일 것이다. 왜 그런가? 때묻지 않은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남도3군은 반도의 끝자락에 있어서 개발되지 않았다. 금강산을 보는 듯한 산이 여럿 있다. 이런 이유로 유홍준은 문화답사기 1장 1절에서 이곳부터 소개했을 것이다.

 


무위사, 예전에 한번 와 본 것 같다. 극락전 맞배지붕은 언제 보아도 끌린다. 측면을 보면 수덕사 대웅전을 보는 듯 하다.

법당에 앉았다. 삼배로 그치지 않고 잠시 앉아 기를 느끼고자 했다.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내었을까?

 

 


월남사지는 이제 더이상 절터가 아니다. 탑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벌판에 대웅전이 세워졌다. 주변에는 전각이 건설되고 있다.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대웅전에 앉았다. 예전에는 금당이라 했다. 불탄 자리에 다시 건설된 법당은 예전의 것은 아니지만 자리는 그대로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출가의 목적을 이루었을까?

여행 가면 절로 가게 되어 있다. 불자들은 저절로 간다. 절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자연환경이다.

 


갈대밭을 걸었다. 강진만 갈대축제는 끝났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 온다.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저절로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 같다.

 


가우도를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진만 끝자락 가우도에 가려면 긴 다리를 지나야 한다. 그러나 도중에 그만 두었다. 해가 서산에 지려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하루해는 짧다. 해떨어지면 암흑의 세상이다. 해야 할 것은 먹고 자는 일뿐이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

고요한 새벽이다. 차량 소음 없는 적막강산이다. 이런 것을 바랬다. 좌선할 때 "적막강산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수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소음도 법이다. 모두 새겨야 할 대상이다.

이 세상에 법아닌 것이 없다. 법에는 성품이 있다. 그것은 무상, 고, 무아이다. 법의 성품을 알면 두려울 것이 없다. 나는 언제나 법의 성품을 사무치게 알 수 있을까?

2023-11-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