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때이른 입학동기 2023송년회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1. 17. 09:21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때이른 입학동기 2023송년회
 
 
어떤 이가 말했다.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이런 말에 공감한다. 마치 과일이 가을이 되면 익어 가듯이 사람도 연륜이 쌓이면 익어가는 것이다.
 
어제 저녁 송년회가 있었다. 11월 16일이니 때이른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앞당겨 모임을 개최한 것은 오랜만에 모이기 때문이다. 무려 사년만에 만나는 것이다. 입학동기 송년모임을 말한다.
 
코로나 삼년동안 동기들을 만나지 못했다. 작년 하반기에 코로나가 사실상 종료 되었기 때문에 그 때 모였어야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올 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 까지 몇 건의 경조사가 있었다. 자녀결혼식과 부모장례식이 있게 되면 사람을 모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기회로 모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송년모임 장소는 이제 고정되어 가는 듯하다. 사당역 사거리에서 주로 모인다. 지난 십여년동안 변함 없다. 동서남북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인 것이 입지선정의 이유가 된다.
 

 
모임은 오후 6시에 있다. 모두 16명이 모일 것이라고 했다. 대체로 많이 모이는 편이다. 아마도 코로나 이후 사년만에 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경조사에 참여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에 대한 모임이 되기도 한다.
 
백권당 사무실에서 5시에 출발했다. 한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정말 딱 한시간 걸렸다. 도착하니 이미 상당수 친구들이 와 있었다.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사년만의 만남이다. 그 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놀랍게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나이를 먹었는지 알 수 없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것은 매년 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년이라는 공백기간이 있어도 폭삭 늙어 버린 사람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얼굴은 변한 것이 없다. 아마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악수 한다. 때로 포옹하기도 한다. 동기들간에 모임에서는 돌아 가며 악수를 한다.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보는 것이다. 감촉으로 느끼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것도 정일 것이다. 우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테이블은 네 개가 준비 되었다. 오늘 모임 메뉴는 보쌈과 족발이다. 늘 그렇듯이 테이블에는 소주와 맥주가 있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대부분 소주를 마신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맥주만 마셨다.
 
모임에는 15명 참석했다. 오지 못한 사람들은 이유가 있다. 감기에 걸려서 못오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했다. 26명 되는 카톡방에서 모두 다 모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오는 것이다.
 

 
모임에 참석한 동기들의 면면을 살펴 보았다. 모두 얼굴이 좋다. 모두 건강한 모습이다. 건강하기 때문에 모임에 나왔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다면 나올 수 없다.
 
점점 나이 들어 간다. 이순이 넘어가자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몸의 저항력도 차츰 약해져 가는 것 같다.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모임에 참석할 수가 없다. 모임에 나왔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더구나 소주를 마실 정도이면 매우 건강한 것이다.
 

 
사년만의 모임이다. 이럴 때 “안죽고 살아 있었네!”라는 말이 절로 든다.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별스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얼굴을 보니 모두 다 살아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건배 했다. 소주잔을 높이 들고 서로 만남을 축하했다. 아마 그것은 건강하게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축하의 표시일 것이다.
 
모임은 산만하게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두 시간 동안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주로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 동안 궁금했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뭐하고 사냐?”라고 물어 본다. 그 동안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 보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단절은 컸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한두차례 만났다. 그래서 어떻게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동안 전혀 알 수 없었다.
 
앞에 앉아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양 일을 한다고 했다. 방문요양 하는 것이다. 같은 띠의 사람들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될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같은 띠는 바로 위에 띠를 말한다. 12살이 더 많은 사람을 지칭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이 최대의 이슈가 된 것 같다. 이구동성으로 서로가 건강이 어떤지 물어 본다. 그렇다면 어느 시기에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질까? 여러 의견이 있지만 칠십대 후반부터라고 본다.
 
이제 동기들은 모두 육십을 넘겼다. 앞으로 일이년만 지나면 국가가 인정하는 노인이 된다. 경로우대증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오십대였는데 사년 공백이 육십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요즘 부고장을 보면 부모의 연령대는 구십대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세대의 경우 구십대까지는 산다고 보아야 한다. 앞으로도 창창히 남은 것이다.
 
반도체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에 시스템메모리 회사를 만들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어떻게 버텨나갈지 걱정 되었다. 그러나 사업은 십년 넘게 유지되었다.
 
사년동안 친구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반도체가 호황이라고 하는데 혹시 대박난 것 아닌지 궁금했다. 친구는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했다.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좋은 조건에 넘겼다면 다행으로 본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역시 사업에 대한 것이다. 이라크 사업은 어떤지 물어 보았다. 그저 그런 상태라고 말했다. 이라크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예전의 이라크가 아니라는 것이다. 폐허 속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화려하기가 강남 못지 않다고 했다.
 
열 다섯 명의 친구 모두에게 물어 볼 수 없다. 코로나 이전에 매년 만났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지는 대강 알 수 있다. 또한 간접적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연령적으로 은퇴할 나이가 지났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허물이 없다. 재산이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배우자 나 자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념이나 종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창시절을 공유한 것에 기반한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만남이다.
 
시간이 갈수록 취해가는 것 같다. 한 친구가 제안 했다. 수학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마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즉석 제안을 하면 동조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자칭타칭 회장인 친구가 이를 수락했다. 내년 오월에 1박2일 하자고 말했다.
 
모임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거의 끝날 무렵에 회장이 일어섰다. 친구들을 향해서 통장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모임통장이 있는데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십시일반 보태줄 것을 말했다.
 
모임통장을 관리하고 있다. 계기는 어머니 장례로 인한 것이다. 2015년 모친상이있었는데 식장이 썰렁했다. 화환이 몇 개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 “동기모임 화환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제안은 채택되었다. 그때 당시 정보통신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가 깃발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학교깃발을 말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대학교 전자공학과 79학번’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깃발을 만들었다.
 

 
통장은 2016년에 만들었다. 모두 13명이 동참했다. 송년회를 하고 남은 금액은 입금되었다. 최대 138만원 모금되었다. 2016년 이후 조사가 발생될 때마다 깃발과 화환을 보냈다. 이렇게 7년 지나다 보니 이제 거의 소진에 이르렀다.
 
모연금액을 얼마로 해야 할까? 누군가 이백만원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누군가는 큰 금액을 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살아계신 부모들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대부분 돌아가셨다. 자신의 부모와 처의 부모 이렇게 네 분 중에 돌아 가신 분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자칭타칭 상조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제안했으니 내가 담당이 되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 역할을 해야할까? 친구들 양가 부모가 모두 다 돌아가시고 나면 나의 역할도 끝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모연하지 않아도 된다.
 
이백만원이라는 금액은 적지 않다.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말했다. “그 다음은 우리 차례야.”라고. 이 말에 쇼크 받았다. 부모 상 당하는 것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다음은 우리차례인 것이다.
 
산더미 같이 쌓여 있던 보쌈과 족발은 모두 먹어 치웠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래도 식사는 해야 했다. 식당 메인메뉴 중의 하나인 옹심이를 먹었다. 테이블당 하나를 주문해서 나누어 먹은 것이다.
 
식당 밖으로 나왔다. 요즘 사당역 주변은 나이든 세대들 세상인 것 같다. 젊은 사람들보다 우리세대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마 이곳이 모임을 갖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다. 사년만의 만남이다.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 일단 카페로 들어 갔다. 한명도 빠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없어서 만들어 앉았다. 이런 모임에 일사분란함은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대화하는 것이다.
 
 
대부분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나는 차를 마셨다. 카페에 가면 커피보다 허브차를 즐겨 마신다.
 

 
카페에서 삼십여분 보냈다. 그저 커피를 마시며 잡담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재산이나 이념, 종교 따위는 없다. 입학동기라는 공감대만 있을 뿐이다.
 
카페에서 자칭타칭 회장인 친구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그 동안 동기모임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있는데 이를 모아 책으로 내겠다고 말했다. 이런 제안에 회장은 흔쾌히 동의했다. 회장은 다음 모임 때 책을 한권씩 나누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에 북콘서트를 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든지 글의 소재가 된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쓴다. 동기모임에 대한 것도 훌륭한 글쓰기 소재가 된다. 2006년 이후 매일 글을 쓰다시피 했으므로 동기에 대한 글은 아마 30편 가까이 될 것이다. 책으로 만들면 한권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모였다. 코로나 이후 사년만이다. 본래 작년에 모였어야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년 늦게 모인 것이다. 그럼에도 카톡방 26명 중에 15명이 나왔다는 것이다. 참석율이 대단히 높은 것이다.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 친구이다. 친구는 허물이 없다. 특히 학교 친구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시간을 내서라도 기꺼이 모임에 참여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을 보았다. 모두 건강한 모습이다. 켜켜이 쌓인 세월 속에서 잘 익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백세시대이다. 앞으로 살날이 창창하다. 아직도 우리는 젊다.
 
 
2023-11-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