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해남친구와 인천친구

담마다사 이병욱 2024. 1. 26. 08:04

해남친구와 인천친구
 
 
지금 시각은 7시 10분, 동이 트는 백권당의 아침이다. 세상은 아직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아침 7시가 넘어서일까 18층 꼭대기 층에서 본 세상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아마 아침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오늘 백권당에 일찍 왔다. 새벽에 잠이 깨어 경전을 보고 경행을 하는 등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것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무리한 것 같다.
 
새벽에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변화를 주어야 한다. 극적인 변화를 말한다. 샤워를 하면 몸과 마음이 가쁜 해진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된다. 집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도 좋다. 이른 아침에 백권당에 온 이유가 된다.
 
어제는 일이 겹쳤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겹치기로 일어났다. 평소에는 일감이 없어서 노는 날이 많았다. 새해 들어 보름 가량 그랬다. 그랬다가 큰 일감이 하나 생겼다. 작업하다 보니 일주일 분량이 되었다. 마무리하는 중에 대학 같은 학과 동기친구 두 명을 만났다.
 
해남에서 친구가 올라 왔다. 해남으로 귀촌하여 농사짓고 있는 학교친구이다. 친구부부가 백권당을 찾아 온 것이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점심대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등에 대하여 생각했다.
 
백권당에 사람들이 찾아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년에 너댓차례 되는 것 같다. 거의 하루 종일 혼자 있다가 손님이 찾아 왔을 때 마음이 바빠진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해남친구부부는 오랜만에 서울나들이 한 것이다. 지금은 농한기라 한가한 것 같다. 이렇게 한가할 때 만날 사람 만나는 것이다.
 
친구부부와 점심을 했다. 그리고 커피와 차를 마셨다. 친구 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해남 특산품 홍보를 해주기 때문이다. 해마다 6월이 되면 ‘밤호박’ 글을 쓰고 10월이 되면 ‘꿀고구마’ 글을 써 준다.
 
친구부부와 거의 네 시간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해남 특산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책 이야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지 기록해 둔다. 해남 특산품 철이 되면 좋은 글쓰기 소재가 된다. 해마다 두 차례 하는 일이다. 벌써 10가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친구 처에 따르면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철이 되면 주문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친구부부가 찾아 준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보 글을 써주다 보니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먼 길을 일부로 찾아 왔을 것이다.
 
친구부부에게 자랑도 했다. 책장에 백권이 넘는 책을 보여 주면서 책 한권은 아파트 한채 값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친구부부는 동의해 주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이 적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진 것이 많은 재벌급 부자임을 은연중에 과시한 것이다.
 
해남친구부부를 보내고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 부평에 사는 학교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전철을 탄 것이다. 노트북 가지러 가는 것이다.
 
노트북이 하나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중고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천친구는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컴퓨터 수리도 하고 중고컴퓨터도 판매하는 것이다. 노트북을 당근마켓 등에서도 살 수 있지만 이왕이면 친구 것을 팔아주고 싶었다.
 
인천친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인연이 있다. 같은 성씨이어서 같은 반인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더구나 번호도 바로 인근이었다. 이런 이유로 1학년 입학할 때부터 어울려 다녔다.
 
친구와의 인연은 이제 45년 되었다. 지나고 나니 참으로 오랜 세월이다. 언제 이렇게 오랜 세월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친구는 변한 것이 없다. 나이만 먹었을 뿐이고 얼굴만 늙었을 뿐이지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이다.
 
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머리는 벗어지고 또한 머리는 백발이 되어도 마음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보아야 할까?
 
변하고자 한다. 몸은 세월에 변화해 가지만 마음은 그냥 그대로 있다면 정신적 연령은 딱 멈추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모두 장로는 아니라고 했다. 머리가 흰 만큼 정신도 성숙해야 한다. 육체적 연령과 함께 정신적 나이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신적 연령을 높일 수 있을까?
 
오늘 새벽 일찍 깼을 때 경전을 읽었다. 쌍윳따니까야에 정신적 연령과 관련된 가르침이 있었다. 그것은 열반에 대한 것이다.
 
유행자가 잠부카타까가 사리뿟따존자에게 물었다. 유행자는 “벗이여, 열반, 열반이라고 하는데, 열반이란 무엇입니까?”라며 물은 것이다. 이에 사리뿟따는 “벗이여, 탐욕이 부서지고 성냄이 부서지고 어리석음이 부서지면 그것을 열반이라고 부릅니다.”(S38.1)라고 말했다.
 
열반은 안전하기가 섬과 같고, 열반은 안온하기가 동굴과 같다고 말한다. 본래 열반은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열반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아마도 무탐, 무진, 무치 상태일 것이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어른이 아니다. 머리가 흰 자가 탐욕에 불타고 성냄에 불타고 어리석음에 불타고 있다면 결코 어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머리가 칠흑같이 검은 청소년이라도 무탐, 무진, 무치인 상태라면 그가 장로일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 본다. 이 나이 먹도록 나의 오염원은 옅어졌는가? 예전보다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몸으로 체험한 것이 있어서 나름대로 지혜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 한다.
 
노인의 이미지는 어떠할까? 대부분 나이만 먹은 늙은이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사는 정신적 연령은 청년시절에 멈추어 있는 것이다.
 
친구는 옛날 그대로 마음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숙해 있다. 그것은 삶의 과정에서 겪었던 희로애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딸 둘을 키우며 외롭게 살아 온 친구이다.
 
인천친구에게서 노트북을 받았다. 여러 개의 노트북 중에 하나를 골랐다. 비용과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비용을 지불하고자 한다. 지난 번에 하나 가져 왔을 때는 받으려고 하지 않아 지불하지 못했다.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몇 년만이다. 친구가 사는 백운역 부근 감자탕 집에서 먹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십년 지기이기 때문에 역사를 알고 있다.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이다. 다만 이해 관계가 없어야 한다.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깨지기 쉽다. 돈거래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작은 거래는 문제 없을 것이다. 친구를 위해서 중고 노트북을 사주고, 친구를 위해서 특산품을 팔아 주는 것은 문제 없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도중에 날이 밝았다. 세상이 환해졌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찌뿌둥했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사라졌다. 나에게는 글이 보약이다. 글을 쓰면 힘이 펄펄 나는 것 같다.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2024-01-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