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권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 V 2023 , 금요니까야 공부모임의 결실
이제 단풍이 완전히 졌다. 어제 비오는 날 일시에 떨어진 것을 보니 한 해가 다 지나간 것 같다.
바닥에는 이파라리가 수북하다. 겨울비에 처참한 모습이다. 마치 계절의 변화에 대량학살을 당한 것 같아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연은 냉혹하고 인정사정 없는 것 같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지고야 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무언설법을 하는 것 같다.
거리의 가로수는 앙상하다. 죽음의 계절이 된 것이다. 사계절 중에 겨울은 사실상 죽음의 계절이나 다름 없다. 이럴 때 결실이 없다면 더욱더 더욱 더 춥고 혹독한 계절이 될 것이다.
계절은 극적으로 바뀐다. 사계절의 변화를 보면 극적이다. 계절의 변화에서 무상을 본다. 이럴 때 사람들은 대개 센치한 감정상태가 된다. 그런데 계절무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허무함을 느낀다. 그다지 해 놓은 것이 없을 때, 또다시 한 해가 갈 때 허탈해진다. 아무것도 해 놓지 않았는데 나이만 한 살 더 먹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느 때 쇼윈도우에 비친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았을 때 경악할지 모른다.
한살한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초조해진다. 머리는 갈수록 희어가고 머리는 빠져 간다. 거울을 보면 노인네 얼굴이 되었다. 이 오랜 세월 나는 무엇을 했을까? 인생무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무상, 계절무상, 인생무상에서 허(虛)와 무(無)를 본다. 그런데 무상을 본다고 하여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지 센치한 감정이 들 뿐이다.
어떻게 해야 자연의 이치, 사물의 이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센치한 감정 없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부처님 공부에 달려 있다. 경전을 보고 수행을 하고 공부모임에 참여하는 이유가 된다.
책을 하나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책은 금요니까야모임에 대한 책이다. 책 이름을 ‘112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 V 2023’으로 정했다. 여기서 112는 112번째 책이라는 숫자이다. 또한 로마자 V는 니까야모임과 관련된 다섯 번째 책이라는 의미이다. 올해 1년 동안 모임에 참석하여 기록한 것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이다.
책에는 모두 23개의 글이 실려 있다.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동안의 기록이다. 모두 230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2. 이제는 경전불사를 할 때
3. 머물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4. 자타카 출간 기자간담회
5. 사면에서 죽음의 벽이 옥죄어 올 때
6. 둘이서 같은 길로 가지 말라고 한 것은
7. 사디스트적 가학에 대하여
8. 왜 인내하는 자가 승리할까?
9. 페터 노이야르 선생 근황을 듣고
10. 아수라의 리더십과 제석천의 리더십
11. 자아와 세상은 왜 없지 않고 있는 것일까?
12. 남양주 정혜사 연등교체작업
13. 스승의 날 카네이션
14. 행위자도 없고 향수자도 없고
15. 연기(緣起)와 연생(緣生)은 어떻게 다른가?
16. 존재를 윤회하게 하는 네 가지 자양분
17. 금요니까야모임 열네 번째 개학
18. 즐거운 느낌에 목숨을 거는 갈애
19.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윤회를 끝낼 수 있을까?
20. 오랜 세월을 거쳐서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21. 칸다, 다발인가 무더기인가?
22. 신화적 번역과 생물학적 번역
23. 흐름을 거슬러 가는 연어처럼
니까야모임에 개근했다. 한달에 두 번 모이는 모임에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록을 남겼다. 이제 한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것도 삶의 결실일 것이다.
무엇이든지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니까야모임도 예외가 아니다. 늘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 전재성 선생이 말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자 한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홍광순 선생은 스마트폰으로 녹음한다.
기록해 두면 남는다. 글을 써 놓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에 올려 놓으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십년전에 올려 놓은 글도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다.
글은 생명력이 있다. 누군가 보면 살아 있는 글이 된다. 한번 작성된 글은 삭제하지 않는 한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마련이지만 한번 작성된 글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인터넷의 바다에 떠돌아 다닌다.
글은 개념에 대한 것이다. 빤냣띠라 불리우는 개념은 실재가 아니다. 실재하는 것은 생멸이 있지만 개념은 생멸이 없다. 이름이 백년, 이백년, 오백년, 천년 하는 것도 언어적으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노트를 할 때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해 둔다. 내 생각도 기록해 둔다. 토론할 때 내용도 기록해 둔다.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 글로 쓰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쓸 수 없다. 가장 인상에 깊은 것만 쓴다. 사실상 쓰고 싶은 것만 쓴다고 볼 수 있다. 모두 다 쓰고자 한다면 열 편을 써야 할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다 쓸 수 없다. 일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하나만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니까야모임에서 들은 것 모두 쓸 수 없다. 세 개의 경을 합송했다면 그 중에 한두개 쓰는 것이다.
나는 왜 매일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일까? 그것은 글쓰기가 이제 생활화 되었기 때문이다. 때 되면 밥 먹듯이 글쓰기도 매일 밥 먹듯이 쓰는 것이다. 또한 글쓰기는 의무적으로 쓴다. 매일 하루 한 개는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또 하나의 목적이다. 그것은 영원히 살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왜 그런가? 글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개념 지어진 것은 죽지 않는다.
생명체는 나고 죽는다.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글은 죽지 않는다. 이름이 잊혀지면 죽듯이 글 역시 잊혀지면 죽을지 모른다.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린다. 특히 블로그에 올린 글은 생명력이 있다. 십년전에 쓴 글도 검색만 하면 읽을 수 있다. 누군가 보게 되었다면 생명을 얻은 것이나 다름 없다. 언어적으로 형성된 개념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경전읽기도 의무적으로 한다. 예전에는 필요한 경전만 읽었으나 3년전부터 태도를 바꾸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했다. 각주에 실려 있는 작은 글씨를 특징으로 하는 주석까지 샅샅이 본다.
경전은 머리맡에 있다. 가까이 있어서 늘 열어본다. 백권당 사무실에도 경전은 가까이 있다. 의자만 돌리면 이동하지 않고 경전을 열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좌선하는 것이다. 올해 테라와다 우안거를 행한 바 있다. 매일 한시간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앉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수행기를 작성했다. 한시간 앉아 있는 것에 대하여 후기는 두세 시간 썼다.
교학만 해서는 안된다. 수행과 병행해야 한다. 처음에는 글만 썼다. 경전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를 말한다. 지난 십여년동안 수많은 글을 썼다. 그러나 무언가 허전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좌선을 하기로 했다. 채워지지 않은 것을 채워 넣기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백권당 사무실을 반으로 나누었다. 칸막이를 해서 명상공간을 만든 것이다. 2020년 2월의 일이다.
명상공간을 만들었다. 세 평 가량 된다. 매일 한시간 앉아 있기로 했다. 코로나 기간이라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었다. 코로나 기간 3년 동안 명상공간에서 좌선 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매일 한시간 앉아 있겠다고 다짐 했으나 흐지부지 되었다. 생업이 바쁜 것도 이유가 있다. 그러나 마음 가짐이 문제였다.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했다.
코로나 기간동안 드문드문 좌선을 했다. 좌선하는 날보다 좌선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좌선한 것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겼다. 그 결과 매년 한권씩 수행기를 남길 수 있었다.
경전은 오래전부터 보아 오던 것이다. 경전 보는 것만으로 양이 차지 않았다. 경을 외워 보기로 한 것이다. 꼭 필요로 하는 수호경을 말한다. 빠알리어로 된 경이다. 가장 최근에 외운 것은 빠다나경(정진의 경, Sn.3.2)이다.
경을 외우고 외운 경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암송했다. 그리고 수행을 했다. 글을 쓰고 경전을 읽고 경을 외우고 경을 암송하고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는 나날을 보냈다. 모두 의무적으로 하고자 한 것이다.
모두 다 할 수 없다. 요즘은 글쓰기, 경읽기, 좌선하기가 주된 일상이 되었다. 밥 먹듯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스스로 족쇄에 갇히게 가두어 놓고자 한 것이다.
올해도 다 지나간다. 지난주 12월 8일 금요니까야모임이 있었다. 올해 마지막 모임이 되었다. 내년 2월에 다시 열린다. 일년 동안 쓴 것에 대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니까야모임 다섯 번째 책이다. 이런 것도 수행자의 삶의 결실일 것이다. 금요니까야모임의 결실이기도 하다.
2023-12-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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