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권 외국성지순례기 VI 미얀마 2019, 불교가 살아 있는 미얀마는 마음의 고향
새벽에 행선할 때 발이 짝짝 달라붙었다. 방바닥에서 발을 뗄 때 “짝”하고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이것도 새겨야 할 대상이다. 발을 떼어서 올리고 밀어서 내리고 딛고 누르는 여섯 단계 행선을 했다.
행선을 하면 잡생각을 누를 수 있다. 잡념이 일어 났을 때 행선만한 것이 없다. 생각으로 인하여 홍수가 났을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행선하는 것이다.
경행과 행선은 다르다. 경행은 가볍게 걷는 것으로 일종의 몸 푸는 것을 말한다. 한국스님들이 참선한 다음에 둥굴게 빠른 속도로 돌면서 걷는 것은 경행이다. 그러나 행선은 걸으면서 명상하는 것이다. 동작 하나하나를 새겨야 한다. 아는 마음도 새겨야 한다. 행선은 정신과 물질을 관찰하여 새기며 알아차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명상하는 것이다. 누군가 눈을 감고 미동도 않고 가만 앉아 있을 때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해 보이기까지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원초적 그리움 같은 것이다. 저 건너기 어려운 언덕으로 건너간 자의 거룩한 모습이다.
명상에는 좌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선도 명상이다. 걷기 명상을 하는 장면을 보면 역시 아름답다. 한발한발 떼며 걷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명상센터에 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꿈에 그리던 미얀마에 간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8년 12월 31일의 일이다. 그때 당시 양곤 외곽에 있는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에 2주 가까이 머물렀다. 선원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생업이 있는 사람이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외국에 나가면 보름 이상 머물기 힘들다. 그 동안에 고객 대응을 하지 못하면 다른 데로 가버린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트북도 가져 가지만 효율적이지 않다. 2주 이내로 여행을 마쳐야 한다.
2019년 1월 미얀마에 있을 때 선원투어를 했다.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에서 2주가까이 머문 다음에 1박2일 일정으로 양곤시내와 외곽에 있는 국제선원 몇 군데를 가보기로 한 것이다. 도중에 양곤 성지순례도 했다. 이에 대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번에 책을 하나 만들었다. 2019년 1월 미얀마 국제선원 순례와 성지순례한 것에 대한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책 이름은 ‘120 외국성지순례기 VII 미얀마 2019’로 정했다. 이는 통산 120번째 책으로 외국성지순례기로서는 일곱 번째 책이다. 목차는 14개이고 308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빤디따라마 숲속의 명상센터
2. 삿담마란시(따담마란디) 명상센터
3. 모비찬먜 수행센터
4. 쉐우민 수행센터
5. 쉐다곤파고다
6. 모곡수행센터
7. 마하시 예익타 명상센터
8. 차욱타지 와불
9. 응아타지 대불
10. 마하빠사나 동굴
11. 가바에파고다
12. 순룬 명상수행센터
13. 쉐도파고다
14. 샨짜웅 대나무불상
목차를 보면 명상센터 순례와 성지순례로 이루어져 있다. 명상센터는 빤디따라마, 삿담마란시, 찬먜, 쉐우민, 모곡, 마하시, 순룬, 이렇게 여섯 곳을 순례했다. 성지로는 쉐다곤, 차욱타지, 응아타지, 마하빠사나, 가바에, 쉐도, 샨짜웅 이렇게 일곱 곳을 순례했다
지금 미얀마는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군부쿠데타로 인하여 제한적이다. 그러나 2018-2019년 당시에는 제한이 없었다. 성지순례 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수행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겨울 한철을 수행처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미얀마에 가서 위빠사나 수행하고 싶어질 것이다. 사실상 세계불교를 리드하고 있는 미얀마는 불교의 성지나 다름 없다. 부처님 당시의 불교가 그대로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 근현대 불교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는 5차와 6차 결집이 미얀마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선원과 성지 순례를 하게 된 동기는 권유 받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미얀마에서 2주간이라는 시간을 냈는데 그냥 귀국할 수 없었다. 김진태 선생의 권유로 1박2일 순례를 하게 되었다.
해외여행 갈 때 패키지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수행하러 간 사람에게 패키지 여행은 가능하지 않다. 김진태 선생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하나 소개 받아 일인여행을 하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은 1박2일이다. 이틀 동안에 선원과 성지를 둘러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기동력이 있어야 한다. 오래전부터 한국 수행자들의 가이드 역할을 해 온 미얀마 사람 미한씨 가족을 소개 받았다.
미얀마 사람 미한은 한국인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미한의 부인과 미한의 동생과 함께 투어했다. 운전자는 미얀마 사람이다. 승용차를 한대 렌트하여 투어한 것이다.
순례 첫째 날은 미한의 부인 미금씨가 가이드 했다. 둘째 날은 미한의 남동생 툰툰이 가이드 했다. 운전기사와 함께 했기 때문에 3인이 돌아 다닌 것이다.
(쉐우민)
첫째 날은 목차 1번부터 4번까지 네 군데 순례했다. 둘째 날은 본격적으로 순례했는데 툰툰과 함께 5번부터 14번까지 무려 열 군데를 다녔다. 이는 승용차를 이용한 순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미얀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것을 보고서 매우 후진국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가서 본 미얀마는 물질적은 것만 보고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얀마는 물질적으로 우리나라 보다 못산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불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 대부분은 불교를 믿는다. 불교가 생활화 되어 있다. 지금도 거리고 나가면 탁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탁발승에게 밥 등을 보시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 부처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미얀마는 가난한 나리이다. 우리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문명은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게 높은 것 같다. 불교적 측면으로 본다면 미얀마는 불교대국과도 같다.
둘째 날 툰툰과 함께 다니며 들은 것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출근할 때 선원에 들러서 좌선을 한다는 것이다. 혼자 조용히 앉아서 좌선을 한 다음에 일터에 가는 것이다. 일터에 일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선원에 들러 좌선한다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수행이 생활화 되어 있는 것이다.
(쉐다곤)
(쉐다곤)
미얀마 선원투어를 할 때 수행자들을 볼 수 있다. 국제선원에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놀랍게도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는 등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불자들은 신행은 어떤 것일까? 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절에 가면 각종 재를 지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재 지내는 것에 대하여 ‘기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관음재일에는 ‘관음기도’한다고 말하고, 지장재일에는 ‘지장기도’한다고 말한다.
한국불교에서 기도는 일상이 된 것 같다. 수능이 다가오면 ‘수능기도’를 하고 동지가 되면 ‘동지기도’를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기도는 불교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부처님 가르침에 기도라는 말은 없다. 공양을 뜻하는 뿌자(pūjā)라는 말은 있어도 마치 신에게 비는 듯한 기도는 없는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기도라는 말은 비불교적 행위이기 쉽다. 마치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기도를 연상케 한다. 기도라는 말 대신에 ‘불공(佛供)’이라는 말이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관음기도는 관음불공으로, 수능기도는 수능불공으로, 동지기도는 동지불공으로 바꾸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2주간 보내면서 느낀 것이 있다. 미얀마는 수행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수행의 전통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우 실라 사야도에 물어 보니 미얀마는 수행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교학의 나라이기도 하다고 했다. 왜 그럴까? 아마 그것은 5차와 6차 결집을 주도 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사람들은 미얀마로 수행하러 갔었다. 초기불교가 소개되고 위빠사나 수행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인 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매년 수천명의 사람들이 미얀마에서 수행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에서 테라와다불교가 정착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테라와다불교의 종가집은 스리랑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는 미얀마에서 꽃을 피웠다. 그리고 열매를 맺었다. 사실상 테라와다 불교는 미얀마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불교를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담마마마까 창건주 혜송스님은 “미얀마불교가 무너지면 세계불교가 무너집니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미얀마를 꿈꾸었다. 마침내 2019년 1월 미얀마에 있게 되었다. 부처님 당시에 불교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모습을 거리에서도 보고 선원에서도 보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삿담마란시(따담마란디) 명상센터에서 본 여성 수행자를 말한다. 여성 수행자는 머리를 단정히 올림머리하고 수행복을 입었다. 여성수행자는 행선 중에 있었다. 한발한발 걷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 장면을 보고서 “미얀마 사람들은 아줌마들도 수행하네?”라는 말이 절로 떠 올랐다.
(삿담마란시)
쉐다곤 파고다는 꼭 가보고 싶었다. 마침내 시절인연이 되어서 높이가 거의 백미터에 달하는 황금대탑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에만 감탄한 것은 아니었다. 미얀마 사람들의 신심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느 파고다에 가든지, 어느 사원에 가든지 미얀마 사람들의 신심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원에 가면 전통복장을 하는 듯 하다. 사원에 갈 때는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가는 것이다. 그들은 불상이나 탑을 향하여 간절하게 두 손 모은다.
미얀마에서 지낸 보름를 생각하면 지금도 흐믓하다. 마치 꿈에 그리던 나라에 간 것 같았다. 부처님 당시에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재작년 12월 스리랑카 순례 갔었을 때도 느꼈다.
미얀마는 따뜻한 나라이다. 겨울철 건기에 갔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늘 사시사철 푸르고 갖가지 꽃이 만발한 미얀마는 천상 같았다. 특히 응아타지에서 바라 본 누각은 초기경전에서 본 베자얀따 궁전이 연상되었다.
미얀마는 한번 밖에 가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짧은 기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은 강렬했다. 바로 이곳이 부처님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았다.
불교는 마음의 고향이다. 마음이 착잡할 때 니까야 경전을 펼치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전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부처님 당시에 와 있는 듯하다. 불교는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에 부처님 당시의 불교가 살아 있는 미얀마는 마음의 고향이 될 수밖에 없다.
2024-01-28
담마다사 이병욱
'책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2권 진흙속의연꽃 2020 I, 잉여재산 (15) | 2024.03.26 |
---|---|
121권 천장사 일요법회, 천장사는 누구겁니까? (16) | 2024.02.17 |
119권 담마의 거울 2020 II, 내가 만든 책도 금자탑(金字塔)이 될 수 있을까? (21) | 2024.01.14 |
118권 담마의 거울 2020 I, 커피 드립용 도자기가 깨졌는데 (18) | 2024.01.09 |
117권 담마의 거울 2019, 왜 글은 생명과도 같은가? (18) | 2024.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