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언제나 직장 꿈을 꾸지 않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4. 1. 29. 11:45

나는 언제나 직장 꿈을 꾸지 않을까?

 

 

또다시 갑갑한 꿈을 꾸었다. 매번 반복되는 꿈이다. 그것은 직장에 관한 것이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해 쩔쩔 매는 꿈이다.

 

꿈이 반복되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한때 군대 꿈을 꾸었다. 군대 갔다 온지 오래 되었는데 다시 끌려 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수십 년 꾼 것 같다. 지금은 더 이상 군대 꿈을 꾸지 않는다.

 

지금 반복되는 꿈은 직장 꿈이다. 군대 꿈이 끝나니 직장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직장을 그만 둔지는 올해로 19년 되었다.

 

직장 꿈을 반복해서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꿈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실력이 들통난 것이다.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이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쩔쩔 매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도 갑갑함을 금할 수 없다.

 

직장 꿈을 꾸고 나니 잠을 잘 것 같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할 때가 있는데 꿈에서 쩔쩔매고 갑갑한 꿈을 꾸고 나면 잠을 잘 자고 난 듯하다. 그런 한편 안심이 된다. 더 이상 꿈속에서의 상황은 아닌 것이다.

 

어렸을 적의 일이다. 악몽을 꾸었을 때 이것이 꿈이었으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진짜 꿈이었다. 그런데 꿈은 너무나 생생했다는 것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군대 꿈이나 직장 꿈도 생생하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 가지 않는다. 꿈속에서는 갑갑하기만 하다. 꿈속에서도 이것이 꿈이었으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꿈속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직장생활 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은 2005년 봄으로 끝났다. 이후에는 내 사업을 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로 살고 있다. 원맨컴퍼니이자 일인사업자이자 일인사장인 것이다. 그럼에도 19년이 지난 현재까지 직장 꿈을 꾼다.

 

군대 꿈이 사라진 것은 거의 30년 걸린 것 같다. 군데 갔다 온지 30년 가까이 되었을 때까지 다시 끌려 가는 꿈을 꾼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직장 꿈도 아마 30년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새벽에 꿈 직장 꿈은 드라마틱했다. 마치 연속극을 보는 것 같았다. 깨었다가 꾸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럼에 따라 직장 꿈도 변화되어 갔다. 처음에는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해서 마치 실력이 들통난 것처럼 쩔쩔매는 꿈이었으나 이어지는 꿈에서는 직장에서 깨끗이 나오기로 한 꿈을 꾸었다.

 

직장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 더구나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을 때 마치 민폐 끼치는 것과 같다. 실적도 없이 월급만 축내는 것과 같다. 사용자 또는 고용주는 놀고 먹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직장은 프로페셔널 집단이다.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팔아서 돈을 받는다.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자신이 받는 월급에서 최소한 세 배의 이익을 내 주어야 밥값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적도 없이 월급만 타 간다면 두고 볼 사용자는 없을 것이다.

 

직장 꿈을 꿀 때면 갑갑하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력도 없는 자가 직급만 높고 월급만 많이 가져 갈 때 마음이 갑갑해진다.

 

직장을 그만 두면, 직장에서 쫓겨나면 먹고 살 방법이 없다. 가족을 책임져야 할 가장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야 한다. 이런 것이 꿈속에서 여과 없이 나타난 것이다.

 

무의식은 통제하기 어렵다. 일단 잠 들면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 든다. 의식을 놓아 버렸을 때 무의식에 지배 받는다. 그 무의식은 의식하지 않은 것들이다. 숨기고 싶은 것들이다. 마치 마음의 그림자와도 같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무의식이 있다. 무의식은 마음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꿈속에서와 같이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숨기고 싶었던 것이나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직장 꿈이나 군대 꿈도 그렇다.

 

직장을 여러 군데 옮겨 다녔다. 국민연금을 받기 위해서 조회해 보니 13군데나 옮겼다. 한달 짜리도 있고 육 개월짜리도 있다. 가장 긴 기간은 첫 직장이다. 1985729일부터 1992년까지 7년 다녔다. 그 다음으로 긴 기간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 다녔다. 나머지는 일이년이 대부분이다.

 

 

요즘 나이는 만으로 친다. 만으로 30대 끝자락부터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녔다. 나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이다. 속된 말로 아무리 개떡 같은 직장이라도 월급만 준다면 끝까지 다닌다. 그러나 회사에서 사업이 잘 되지 않으면 접을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니게 되었다.

 

꿈속에서 쩔쩔매는 직장은 어떤 직장일까? 가만 생각해 보니 집히는 데가 있다. 그것은 2000년에 다녔던 벤처회사이다. 서울 강남 일원동에 근무지가 있었던 회사였다.

 

모으는 버릇이 있다. 수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골동품이나 그림과 같은 고상한 것은 아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작성했던 업무노트를 말한다.

 

업무노트는 다이어리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달력이 있는 노트이다. 이런 노트가 있으면 여로 모로 편리하다.

 

업무노트를 버리지 않았다. 직장생활은 1985년에 처음 시작했지만 업무노트는 1987년 것부터 있다. 업무노트를 쓰게 된 것은 일본 기술고문 영향 때문이다. 일본 기술고문의 기록하는 태도를 보고서 감명 받았다.

 

 

다이어리 형식으로 된 업무노트는 늘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록했다. 심지어 낙서까지 기록했다. 먼 훗날 이런 것도 볼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현재까지 작성된 업무노트는 100권이 넘는다. 꿈에서 쩔쩔매고 갑갑한 것은 아마 강남에 있었던 회사 다녔을 때일 것으로 생각한다.

 

업무노트는 책장에 시기별로 진열되어 있다. 꿈속에 자주 나타나는 문제의 직장에 대한 업무노트를 열어 보았다. 20001월에 작성된 노트이다. 노트 안쪽 표지에는 명함을 붙여 놓았다.

 

업무를 기록한 첫 장에 첫 직장에 출근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 이미 수없이 직장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첫 날 출근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다. 노트에는 세진 T&M 근무시작이라고 써 놓았다. 날자를 보니 2000120일이다.

 

 

강남 일원동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회사는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 직장이 있던 곳도 헐려서 재건축 되었다. 다만 이렇게 업무노트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서기 2000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특히 셋톱박스(Settopbox) 업계에서 그랬다. 기술의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0년을 전후해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것이다.

 

인터넷이 본격화 된 것은 2000년부터이다. 이전에는 사실상 아날로그 시대였다. 2000년 이후에 모든 것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아날로그 기술로 먹고 살았다. 그런데 2000년을 전후에서 기술 트렌드가 급격하게 디지털로 바뀌었다. 그것은 디지털 위성이 발사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에 따라 단말기라 볼 수 있는 위성셋톱박스 설계 기술도 디지털로 바뀌었다.

 

일원동에 있었던 벤처회사는 오래 다니지 못했다. 업무노트를 보니 200010월에 그만 두었다. 불과 10개월 다닌 것이다. 그 사이에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벤처회사는 기술로 승부를 낸다. 2000년 당시에는 코스닥 광풍이 불던 때였다. 너도나도 코스닥에 상장시키는 것이 꿈이었다. 코스닥에 상장만 되면 주식이 백배나 튀어서 졸지에 부자가 되는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직원들도 꿈을 가졌다. 우리사주 형식으로 주식을 사서 상장만 하기만 바라는 꿈을 꾼 것이다.

 

2000년 당시에는 코스닥 상장으로 신화를 창조한 벤처회사들이 있었다. 강남 일원동에 있었던 회사도 엔지니어를 모아서 신화를 창조하고자 했다. 마치 골드러시 광풍에 동참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엔지니어를 끌어 모으고 영업을 강화하는 등 오로지 코스닥 상장만을 목표로 달렸다.

 

어느 것이든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코스닥으로 대박을 노리던 회사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밤낮으로 개발에 매진 했지만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한번도 접하지 못하던 신기술이었다.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와 차원이 달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왜 그런가? 연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의 단절을 의미한다. 아날로그 기술은 디지털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아날로그 기술은 낡은 것이 된다.

 

아날로그 기술자였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써 먹을 수 있었으나 디지털 시대에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기술도 무용지물이 되었고 사람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나이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이제 갓 입사한 이십대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 직급은 높았다. 회사에서는 부장 타이틀을 주었다. 그것도 회사 사장이 고등학교 선배라서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들어가 보니 고등학교 선배였던 것이다.

 

회사에서 직급만 놓고 월급을 많이 가져 가면 부담스럽다. 무언가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특히 기술 계통에서는 기술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기술은 아날로그이다. 디지털은 차원이 달라서 새롭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갓 들어온 이십대와 차이가 없게 되었다.

 

패싱이라는 말이 있다. 기술이 없을 때 패싱당하기 쉽다. 디지털 기술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아랫사람에게 패싱당하기 쉽다.

 

디지털에 적응이 빠른 사람은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 그러나 기술이 없는 자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런 것이 꿈속에서 나타난 것 같다.

 

꿈에서 직장을 나왔다. 실력이 들통 나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의외로 마음이 편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수근거리며 인정하지 않는 듯한 직장에서 나온 것이 더 잘된 것 같았다.

 

꿈속에서 직장을 나오니 후련했다. 그 동안 쩔쩔매며 눈치나 보며 살다가 막상 나오게 되니 시원했던 것이다. 마치 오랜 세월 병고에서 시달리던 자가 꿈속에서 무언가 쑤욱 빠져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기분이었다.

 

 

직장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다. 오늘 꾼 것은 드라마틱 했다. 마치 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꿈을 꾸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며 꾸었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나니 후련했다는 것이다.

 

현재 내일 있다. 2005년 이후 더 이상 직장생활 하지 않는다. 내사업을 해서 먹고 산지 올해로 19년째이다. 그럼에도 직장 꿈을 꾸면 갑갑하다. 마치 내가 그 상황에 있는 것 같다.

 

 

직장 꿈을 꾸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 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생생하다. 그러나 꿈에서 깨면 안심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꿈속에서 이것이 꿈이었으면!”라고 바랬는데 정말 꿈이었던 것과 같다. 현재 내가 할 일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더 이상 직장 꿈을 꾸고 싶지 않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 세계로 빠져 들면 통제가 되지 않는다. 무의식에 지배 받는다. 숨기고 싶었던 것이나 감추고 싶었던 것들이 여과 없이 꿈으로 나타난다. 나는 언제나 직장 꿈을 꾸지 않을까?

 

 

2024-01-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