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량없는 숭고한 마음이 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4. 2. 10. 08:49

한량없는 숭고한 마음이 있는데
 
 
이 세상에 부모마음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어디 있을까? 아름다운 마음 이상일 것이다. 이를 숭고라고 말할 수 있다.
 
숭고는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숭고는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한량없는 마음이라 볼 수 있다. 부모의 마음은 숭고한 한량없는 마음이다.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이자 수호경 중의 하나인 멧따경(자애경, Sn1.8)이 있다.  자애경을 부면 부모의 한량없는 숭고한 마음이 잘 표현된 문구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라는 말이다. 부모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그래서 “이와같이 모든 님들을 위하여 자애로운 한량없는 마음을 닦게 하여지이다.”(Stn.149)라고 했다. 부모의 마음은 한량없는 자애의 마음인 것이다.
 
자애의 마음은 한량없는 마음이다. 어느 정도인가? 이는 “일체의 세계에 대하여, 높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자애로운, 한량없는 마음을 닦게 하여지이다.”(Stn.150)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온 우주에 모든 방향으로 모든 존재에게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라고 바라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다.
 
세상에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그것은 조건 없는 한량없는 사랑이다. 하다 못해 축생도 자신이 낳은 새끼에 대해서도 무량한 사랑을 낸다. 하물며 인간은 오죽할까? 그러나 남들에게까지 한량없는 자애의 마음을 내기 힘들다.
 
불교에서는 자애를 말한다. 이는 유일신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유일신교에서 사랑은 조건적이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자애는 무조건적이다. 이는 자애에 대하여 어머니의 한량 없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하여 무량한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런 자애는 다름 아닌 부처님의 자애와도 같은 것이다.
 
깨달은 자는 지혜와 자비를 구족한 자이다. 지혜 있는 곳에 자비가 있고 자비가 있는 곳에 지혜가 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라고 할 때 이는 부처님의 지혜와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없는 것이다. 동시에 부처님의 자비 역시 한량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일까? 자타카 초입에 ‘먼 인연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수메다의 명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괴로움의 반대가 되는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존재가 있다면 반대로 존재의 여읨이 있을 것이다. 열기가 있다면, 그것이 식은 청량이 있는 것처럼, 탐욕 등의 불꽃이 꺼진 열반이 있을 것이다. 악하고 비천한 상태의 반대가 되는 선하고 허물 없는 상태가 있는 것처럼, 악한 태어남이 있다면, 일체의 태어남을 버렸기 때문에 태어남을 여읜 열반이 있을 것이 다.”(자타카 1권 2p, 쑤메다의 명상)
 
 
부처님이 보살로 살 때 전생은 수메다 존자였다. 수메다 존자는 괴로움의 반대가 되는 즐거움이 있듯이, 일체의 태어남을 버린 열반이 있을 것이라고 명상했다.
 
수메다의 명상은 실현 되었다. 디빵까라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된 것이다. 무려 사아승지 십만겁이 걸렸다. 정법이 살아 있을 때 열반을 성취하여 완전한 열반에 들 수도 있었지만 모든 중생을 열반에 이끌지 않고서는 혼자만 열반에 들 수 없었다. 그래서 보살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목숨을 건 십바라밀행이었다.
 
보살은 서원했다. 부처가 되어서 모든 중생이 열반에 들기를 바라는 서원을 한 것이다. 이런 마음은 자애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생노병사를 거듭하는 중생을 보면서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혜가 있는 자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부모를 대표한 것이다. 당연히 부처님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자애의 마음이다. 여기서 자애는 자애, 연민, 기쁨, 평정이라는 사무량심을 대표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보살이 사아승지 십만겁 동안 닦은 자애바라밀은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은 자타카에 실려 있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자애에 의한 초월의 길)

그리고 또한 그는 ‘부처님이 되는 원리는 이러한 것만이 아닐 것이다.’라고 더 찾아 보다가, 아홉 번째로 자애에 의한 초월의 길을 발견하고, 이렇게 자신을 훈계했다. ‘현명한 자인 쑤메다여, 그대는 지금부터 자애에 의한 초월의 길도 닦아야 한다. 그대는 이익이 되는 자에게나 불익이 되는 자에게나, 마찬가지로 한 마음을 닦아라. 물이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청량한 상태를 한결같이 느끼게 하듯, 그대도 일체의 뭇삶에게 자애의 마음으로 한 마음을 지니면, 부처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는 아홉 번째로 자애에 의한 초월의 길을 확고하게 닦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이러한 언급이 있다.
(자타카 1권 24p, 자애에 의한 초월의 길)
 
 
이 가르침은 디빵까라 부처님이 수메다 존자에게 말한 것이다. 십바라밀 중에 자애바라밀에 대한 것이다. 자애에 의한 초월의 길을 닦을 때 먼 미래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준 것이다.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평등하게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오늘 설날 아침에 부모의 사랑에 대하여 써 보았다. 불교에서는 사랑보다는 자애라는 말을 더 사용한다. 본래 우정을 뜻하는 자애라는 말은 부모의 사랑만큼 한량 없는 것이다. 세상에 부모의 마음은 한량없는 숭고한 마음이다.
 
 
2024-02-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