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폐기물 수거장에서 취득한 오단책장

담마다사 이병욱 2024. 5. 11. 09:33

폐기물 수거장에서 취득한 오단책장

 

 

요즘 유튜브를 보면 서재 화면을 종종 볼 수 있다. 뒷면에는 책장이 있다. 책장 안에는 수백권에 달하는 울긋불긋한 책이 채워져 있다. 줌모임 할 때도 볼 수 있다.

 

어느 번역가는 집에 책으로 가득하다. 서른 평 대의 아파트의 거실은 물론 서재, 작은 방에 이르기까지 책으로 가득했다. 보는 것만으로 압도 되었다.

 

서재에 책이 가득하면 무언가 있어보인다. 비록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없어도 정신적으로는 부자처럼 보인다. 전집이 아니라 울긋불긋 단행본이라면 아마 읽어 보았을 것이다. 지식의 향연을 보는 것 같다.

 

백권당에도 책이 꽤 있다. 책장이 여섯 개 있다.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책이 너무 많아서 작년에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했다. 읽어 보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을 과감히 치웠다.

 

책은 버리면 또다시 채워진다.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아끼는 책은 버리지 않는다. 글 쓸 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새기고 싶은 내용이 있는 책은 보존한다.

 

가장 아끼는 책이 있다. 그것은 경전이다. 이른바 사부니까야를 포함하여 이제까지 번역되어 있는 빠알리경전은 모두 다 갖추어 놓았다. 그것도 두 종류의 번역서를 모두 갖추어 놓았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과 초기불전연구원본을 말한다.

 

초기경전은 의자 뒤에 있다. 의자만 백팔십도 돌리면 이동하지 않고 책을 꺼내 볼 수 있다. 글을 쓸 때 시간 단축이 된다.

 

빠알리니까야는 현재 육십권가량 된다. 금액으로 따지면 백만원이 훌쩍 넘는다. 아마 이백만원 가까이 될지 모른다. 한꺼번에 갖춘 것은 아니다. 여유 돈이 생길 때마다 한권, 두권 구입했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모두다 갖추게 되었다.

 

니까야에는 손때가 묻어 있다. 노랑 형광메모리펜 칠을 하면서 보고 또 보았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본 것이다. 십년 이상 보았다.

 

단행본은 잘 보지 않는다. 한번 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전처럼 새기며 보지는 않는다. 아예 보지도 않은 책도 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나 줌모임에서 서재를 볼 때 의문이 있다. 저 많은 책을 다 읽었을까에 대한 것이다. 아마 한번쯤 읽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중에는 애착이 가는 책도 있을 것이다. 가까이 있는 책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본다.

 

책은 지혜의 보고와도 같다. 그렇다고 모두 지혜의 책이라고 볼 수 없다. 한번 보고 마는 책이라면 지식의 나열과도 같다. 그러나 경전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보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책으로 넘쳐난다. 이럴 때 책장의 필요성을 느낀다. 작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책장 사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포기했다. 책을 버리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작년 책을 엄청나게 버렸다. 선물로 받은 책도 예외가 아니다. 한번도 읽어 보지도 않고 버린 책도 많다. 책을 선물한 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책을 감당할 수 없어서 미니멀라이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책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그렇게 많이 버렸어도 책이 남아 있다. 남은 책은 차마 버릴 수 없어서 박스 속에 포장해 두었다.

 

어제 책장을 하나 발견했다. 누군가 이사 가고 난 다음에 버린 것이다. 폐기물 딱지가 붙어 있었다.

 

오피스텔은 안양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방이 무려 삼백개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사 가고 이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사 갈 때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간다는 사실이다.

 

책장은 거의 새것이나 다름 없었다. 상태가 양호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렇잖아도 책장이 하나 필요 했는데 잘 되었다.

 

책장 무게는 상당했다. 혼자 힘으로 옮길 수 없다. 이럴 때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비원에게 부탁했다.

 

경비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이다. 수년전에는 경비원들과 미화원들에게 과일박스를 선물한 적도 있다.

 

경비는 요청을 기꺼이 들어 주었다. 대차를 하나 빌려 와서 경비와 함께 책장을 날랐다. 생각지도 못한 책장이 생겼다.

 

책장은 오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이는 사람 키만 하다. 아래 두 단에는 문이 달려 있다.

 

책장을 물티슈로 닦았다. 닦는 행위로 인하여 내것이 된 것이다.

 

책장을 닦는 과정에서 종이에 탄탈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아마 전자제품 관련 일을 했던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인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책장을 왜 버리고 갔을까? 어쩌면 망해서 버리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망한 물건을 취득한 것이 된다.

 

백권당에는 중고물품이 많다. 책장이 여섯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수년전 주택가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가져 온 것이다. 상태가 좋아 보여서 가져 왔다.

 

물품 중에는 새로 산 것도 있지만 중고품도 많다. 백권당 사무실에 있는 소형냉장고와 전자레인지는 당근마켓에서 구입했다. 차기세트는 재활용품 매장인 아름다운 가게굿윌스토어에서 구입했다.

 

백권당에는 화분이 삼십개 가량 된다. 이 중에 몇 개는 선물 받은 것이다. 미화원이 퇴직할 때 자신이 보관한 것을 준 것이다. 그때 경비원과 미화원에게 과일박스 선물한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

 

백권당에는 행운목이 하나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쓰레기 버리는 날에 가져 온 것이다. 누군가 이사 갈 때 버리고 간 것 같다. 이파리가 몇 개 남지 않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쓰레기장 행운목을 가져 온지 삼년 되었다. 그 동안 꽃도 한번 피었다. 때 되면 물을 주어서인지 잎이 무성해졌다. 처음 가져왔을 때와 비교하면 몰라 보게 달라졌다.

 

새로 가져 온 책장에 무엇을 넣어야 할까? 박스 속에 보관 되어 있던 책을 꺼내 진열해 놓아야겠다. 그래도 칸이 남는다. 남는 칸에는 셋톱박스를 채워넣고자 한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셋톱박스와 업무노트를 들 수 있다.

 

셋톱박스는 직장생활 이십년 삶의 결실이다. 셋톱박스 개발자로 이십년 살았는데 개발할 때마다 기념으로 집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직장생활 이십년은 기록의 역사이기도 하다. 업무노트에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 놓았다.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닐 때도 업무노트를 버리지 않았다. 셋톱박스처럼 언젠가 진열해 놓을 것을 염두에 두었다.

 

현재 책장에는 백권 이상의 노트가 있다. 직장생활 이십년 노트를 포함해서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작성된 노트를 합하여 백권 되는 것이다. 직장생활 할 때나 일인사업자로 살 때나 늘 기록해 놓았다.

 

노트에 기록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이후 일인사업자로 살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매일 쓴 것이다. 이제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126권 만들었다. 책장에는 121권이 꼽혀 있다. 그런데 책이 점차 늘어날수록 책장의 필요성을 느꼈다. 수용할만한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버려진 책장이 포착되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 버려진 책장도 사연 있을 것이다. 사업이 잘 되었다면 가져 갔을 것이다. 버리고 간 것으로 보아 망했을지도 모른다. 망한 사람 물건을 가져 오면 좋지 않은 것일까?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게 주인과 마주쳤다. 오피스텔 일층에 있는 우리매점주인이다. 매점은 먹을 것 등 갖가지 잡화를 판매한다.

 

오피스텔은 2007년 입주했다. 가게 주인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가게 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요즘 왜 일찍 문을 닫는지 물어 본 것이다.

 

매점은 입주할 당시까지만 해도 토요일에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토요일에 문을 닫았다. 평일에는 아홉 시 넘어 늦게까지 있었다.

 

우리매점은 코로나 때 저녁 여덟 시에 문을 닫았다. 오늘 아침 물어 보았더니 이제 일곱 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왜 이렇게 일찍 문을 닫을까? 가게 주인은 모두 다 일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오피스텔에는 삼백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작은 평수의 방이다. 소규모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런데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가게 주인이 늦게까지 앉아 있어 봤자 사람들이 안와요. 일곱시가 넘으면 한사람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복도를 중심으로 해서 여러 개의 방이 있다. 그런데 육개월이 멀다하고 방 주인이 바뀐다는 것이다. 생겨났다가 망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한 장소에 십칠년 째 앉아 있다. 마치 터줏대감처럼 복도 양쪽에 있는 방들을 지켜 보았다. 자주 주인이 바뀐다. 새롭게 창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망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책장은 우연히 취득하게 되었다. 망한 방의 물건인지 모른다. 그러나 게의치 않는다. 중고품이면 어떤가? 잘 활용하면 그만이다. 이는 아나바다를 실천하는 것이다.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는 것이다.

 

백권당 사무실에 새로운 가구가 들어 왔다. 지금부터 항상 함께 하게 될 것이다.늘 보는 것이기 때문에 익숙해질 것이다. 이것도 물건과의 인연이다. 이제 채워 넣는 작업을 해야겠다.

 

 

2024-05-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