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종로는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의 해방구, 2024년 우중의 연등축제

담마다사 이병욱 2024. 5. 12. 10:55

종로는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의 해방구, 2024년 우중의 연등축제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다. 오월 신록의 공기는 싱그럽다. 살맛 나는 날씨이다. 늘 이런 축복받은 날씨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일에 장애 업기 바라지 말라고 했다. 어제가 그랬다. 연등축제가 열리는 날에 비가 왔기 때문이다.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늘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연등축제에 참관하기로 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법회모임의 거사가 참여하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에 이미 참관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연등축제에 참관한 것은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하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2005년 불교에 입문하고 나서 2007년부터 기록을 남겼다. 매년 연등축제의 날이 되면 종로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여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나중에 책을 낼 것을 염두에 두었다. 연등축제에 참관하여 기록을 남기는 것은 먼 훗날 한권의 역사적 사료가 될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연등축제의 날에 내리는 비는

 

이번 2024년 연등축제는 오랜만이다. 코로나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거의 매해 빠지지 않고 참관하여 기록을 남겼다.

 

어제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아침에 쨍쨍 해가 났으나 오후 들어서 바람이 불며 비가 온 것이다. 연등축제의 날에 내리는 비는 재앙과도 같다.

 

요즘 일기예보는 대체로 정확한 편이다. 그럼에도 예보가 맞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예측은 거의 정확했다. 연등축제가 열리는 시각부터 폐회 하는 시각까지 비가 내린 것이다. 마치 그 시간대를 콕 꼬집어서 방해 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등축제나 부처님오신날 행사 때 비가 오면 어떻게 될까? 그날 행사는 망친 것이나 다름 없다. 오로지 하늘만 바라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늘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 같다.

 

연등축제가 열렸다. 동국대 운동장에서 오후 네 시부터 식전 행사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비는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행사 시간에 맞추어서 내린 것 같다. 이럴 때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은 정말 무심한 것일까? 하늘이 무심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노자 도덕경에서도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하여 하늘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날씨는 언제나 그렇듯이 변화무쌍하다. 오늘 햇볕이 쨍쨍 나다가도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청명한 날씨는 오래 가지 않는다. 날이 지날수록 공기는 혼탁해진다. 혼탁해진 공기는 구름을 만든다. 마침내 조건이 되면 비를 뿌린다. 저 멀리서 비구름이 몰아쳐 오면 비를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은 무상한 것이다.

 

하늘은 무심하고 지연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온다고 전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정된 행사는 진행되어야 한다. 연등축제는 이제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기 때문에 강행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가 와도 행사는 여법하게

 

비가 와도 행사는 해야 한다. 비 오는 것을 알았는지 참석자들은 모두 우비를 준비 했다. 우비를 입고 율동을 하고 우비를 입고 연등을 드는 것이다.

 

행사 내내 비가 내렸다. 동국대에서 행사할 때도 내렸고 종로거리를 행진할 때도 내렸다. 그럼에도 행사는 여법하게 치루어 졌다. 예년과 다름 없었다. 길 거리에 구경하는 사람들도 우산을 쓰고 지켜 보았다.

 

 

축제의 날에 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마 폭우가 쏟아졌어도 행사를 진행 했을 것이다. 실제로 어제 시간당 8mm의 비가 쏟아 졌다. 주룩주룩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옷을 입은 참가자는 예년과 다름 없이 등을 들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연등축제가 되었다. 종로거리에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우려에 지나지 않았다. 예년 보다는 못하지만 우산을 든 사람들이 지켜 보았다. 특히 외국인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흔히 물반고기반이라고 말한다. 이날 종로거리에는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외국인이반이었다. 제등행렬에 참여하는 외국인들도 상당했다.

 

 

어제 종로오가에서 제등행렬을 지켜 보았다. 바로 옆에는 서너명의 외국인이 있었다. 젊은 남녀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었다. 이를 본 행렬참가자들 역시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손을 흔들어 교감한 것이다.

 

연등축제는 단지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마치 TV에서 쇼프로를 시청하듯이 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놀이동산에서 퍼레이드를 관람하듯이 보는 것이 아니다. 행사 참가자나 거리에서 구경하는 자들이나 모두 함께 하는 것이다. 손을 들어 교감을 표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연등축제는 참가자나 구경하는 사람이나 일체가 된다. 쇼 하는 사람 따로 보는 사람 따로가 아니다. 동국대 운동장에서 율동하는 연희단은 불교신자들이다. 길거리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역시 불교신자가 다수이다. 그러다 보니 불자들의 축제가 되었다. 여기에다 외국인들도 합세했다. 지구촌이 글로벌화 된 것이다.

 

 

여성청년불자들은 우비를 벗고

 

행사 참가자들 중에는 젊은 층이 많다. 동국대 운동장에서 율동시간이 있었다. 그때 청년 율동 때 놀라운 일을 보았다. 비는 하염 없이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여성청년들이 우비를 벗은 것이다.

 

 

여성청년들은 우비를 벗고 율동을 했다. 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리는 비를 즐기는 듯이 보였다. 행사 참여자들에게 날씨는 문제 되지 않은 것이다. 젊음의 특권을 보는 것 같았다.

 

 

 

 

비가 와도 축제는 축제이다. 동국대 운동장에서 춤판을 보기도 했다. 외국인 참가자들 석에서 대여섯명의 여성들이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대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나라 참가자들일까? 주황색의 태국 스님석 뒷좌석에서 일아난 것을 보니 태국불자들인 것 같다. 축제의 날에 궂은 날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로는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의 해방구

 

2007년 이후 연등축제에 참관하여 글을 남기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마도 외국인 참여자일 것이다. 길거리에 외국인이 반이 될 정도로 많지만 행렬에 참가하는 외국인들도 많다는 것이다.

 

외국인 행렬은 볼만 하다. 왜 그런가? 이국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김 모습 자체가 이국적이다. 더구나 의상도 이국적이다. 마치 국제페스터벌을 보는 것 같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대부분 불교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네팔,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베트남, 몽골 사람들이 대거 참가했다.

 

연등축제는 한국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연등축제는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날이나 다름 없다. 전통의상을 입고 한국의 심장인 종로거리를 활보 하는 것 자체가 축제인 것이다.

 

 

젊음은 폭발적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스리랑카 행렬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그들은 우비도 입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몸을 흔들어 댔다. 마치 종로가 그들의 해방구가 된 것처럼 보였다.

 

 

 

중학교 때 제등행렬

 

연등축제는 2004년부터 보기 시작했다.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한 해부터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거의 매해 거르지 않고 지켜 보았다. 그러나 연등행사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 되었다.

 

불교와의 인연은 중학교 때 시작되었다. 추첨으로 들어간 학교가 동대부중이었다. 조계종 종립중학교인 것이다.

 

중학교 다니기 전에는 불교와 인연이 없었다. 절에 간 적도 없었고 불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불교를 알게 되었다. 중학교 일학년 때 불교시간에부처님의 일생을 배운 것이 시초이다.

 

청소년 시기는 하얀 백지장과도 같다. 마치 흰천에 물감이 스며들듯이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불교시간에 부처님의 일생을 배웠을 때 아무 저항이 없었다. 만약 그때 기독교학교에 배정받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 들였을지 모른다.

 

불교가 먼저 머리 속에 자리잡았다. 마치 흰 천에 물감이 드는 것처럼 물들었을 때 다른 것이 들어 올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후 불교가 나의 종교가 되었다. 이력서를 쓸 때도 종교란에 불교라고 적었다. 비록 정서적으로 불자였지만 불교는 나의 종교였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정신적 방황했다. 배정받은 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이다. 불교가 먼저 들어 왔기 때문에 기독교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삼 년 내내 정신적 고통 속에서 보냈다.

 

중학교 때 제등행렬이 있었다. 그때 부처님오신날 동국대 운동장에서 행사를 했다. 행사가 끝나면 저녁에 종로거리를 행진했다. 전교생이 모두 참석한 것이다. 등은 들지 않았다. 등은 일부만 들었다.

 

51년만에 다시 동국대운동장에

 

어제 51년만에 다시 동국대운동장에 섰다. 그때 1973년 부처님오신날 때 동국체전이 있었다. 카드섹션 했던 계단에 가 보았다. 그때도 가파랐는데 지금도 여전히 가파르다.

 

 

중학교 때 대학을 처음 가보았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위해서 동원된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당일 동국체전이 열렸는데 카드섹션 연습하기 위해서 동국대에 간 것이다.

 

카드섹션 연습은 2주동안 진행되었다. 그때 당시 학교는 종로구 연지동에 있었는데 걸어서 동국대까지 간 것이다. 종로5가를 거쳐서 충무로해서 동국대 후문으로 들어갔다.

 

중학교 일학년 학생에게 대학은 신선한 것이었다. 이십대의 남녀대학생들이 잔디밭에서 담소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국대 대운동장의 가파른 계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주 동안 카드섹션 연습하면서 엉덩이가 배기다시피 한 것이다.

 

여래입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한 것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 일학년 때 동국대에서 불상을 처음 보았다. 지금도 본관 앞에 서 있는 여래입상을 말한다. 팔정도 조형물 안에 있다.

 

 

여래입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세월이 51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또한 모습도 변함 없다. 마치 부처님 가르침이 변함 없이 전승되어 오는 것 같다.

 

백상은 어디로 갔을까?

 

그때 본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코를 쳐들고 있는 코끼리상이다. 이를 백상이라고 한다. 51년 전에는 대운동입구에 있었다. 마치 아쇼카 석주 위에 있는 것처럼 코를 높이 쳐든 흰 코끼리상을 말한다.

 

동국대 하면 백상이 기억에 남았다. 백상은 동국대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하고 나서 2014년 찾아 갔을 때 백상이 보이지 않았다. 찾아 보니 정각원 앞에 있었다.

 

 

백상을 왜 정각원 앞으로 옮겨 놓았을까? 그때 당시에는 대운동장 입구 기둥 높은 곳에 있어서 마치 랜드마크처럼 보였는데 한쪽으로 치워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어제 백상을 찾아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백상은 어디로 갔을까? 동국대 상징과도 같았던 백상이 정각원 앞으로 옮겨졌는데 어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백상도 무상한 것일까?

 

백상이 없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것은 부처님의 평화의 이미지와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런가? 코를 쳐들고 있는 모습은 전투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사군 중에 상군이 있다. 보병부대, 전차부대, 기마부대, 코끼리부대로 이루어진 사군 중에서 상군은 가장 강력한 부대였다. 그래서일까 마우리애 왕조 초대황제인 찬드라굽타는 상군을 이용하여 그리스계 왕조가 침입을 시도했을 때 장창부대를 격파했다.

 

코끼리가 술을 먹으면 난폭해진다. 이는 자야망갈라가타에서 술취한 코끼리가 부처님을 살해하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때도 코끼리는 코를 쳐든다.

 

백상은 코를 쳐든 이미지였다. 이런 백상이 석주 위에 있었는데 어느 때인가 정각원 앞에 방치 되다시피 있었다. 어제 찾아 갔더니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상군의 이미지가 있는 전투적 코끼리가 정체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장난으로 모래에 부처님 형상을 그렸어도

 

세월이 한참 흘렀다. 그때 중학교 일학년 학생은 이제 백발이 되었다. 그리고 비오는 날 연등축제를 지켜 보았다.

 

연등축제는 계속 진화해 왔다. 중학교 일학년 때는 한국불자들만 대상이었다. 그것도 제등행렬이라는 이름으로 종로 거리를 행진했다. 그러나 51년이 지난 현재 제등행렬은 연등축제가 되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참여하는 국제축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동남아 불교국가 이주민노동자들의 축제가 되었다.

 

 

연등축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연등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불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참여자 중에는 스님도 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테라와다 스님들도 참여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이 참여자나 중고등학교 참여자는 불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한 일반 신도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연등축제에 어린이 참가자들을 볼 수 있다. 동국대 운동장에서 율동을 보여 주기도 하고 거리의 행진에 참여하기도 한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더라도 축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아이들 장난으로

풀 나무 붓이거나

혹은 꼬챙이로

부처님 모양 그린 이들

 

이와 같은 여러 사람들

공덕을 점점 쌓아

큰 자비심 갖추어

모두 성불하였나니

(묘법연화경, 방편품, 동국역경원 54)

 

아이들이 장난으로 모래에 부처님 형상을 그렸어도 모두 성불했다고 한다. 부처님 형상을 그린 인연으로 먼 훗날 모두 부처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인연은 매우 중요하다. 한번 인연 맺어 놓으면 그것이 씨가 되어서 언젠가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으로부터 51년전에 불교와 인연 맺어 놓은 것이 오늘날 불교를 종교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었네

 

불교와 인연 맺어 놓으면 그 인연으로 언젠가 성불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설령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을지라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예전에 나는 흉적으러서

앙굴리말라라고 알려졌다.

커다란 폭류에 휘쓸렸으나

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었네.”(M86)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연쇄살인자 앙굴리말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아라한이 되었다. 그래서 한때 커다란 폭류에 휘쓸렸으나 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었네.”(M86)라고 노래한 것이다.

 

중학교 때 불교와의 인연으로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에 배정받아 정신적으로 고통 받았지만 결국 부처님에게 안식처를 갖게 되었다. 오랜 세월 불교를 잊고 살았지만 사십대 중반에 다시 인연을 맺어 여기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모두가 사실이구나

 

부처님 가르침은 한량 없다. 부처님의 원음이라 일컫는 사부니까야를 읽어 보면 부처님 그분이 무엇을 이야기 하셨는지 알 수 있다. 중학교 때는 전혀 몰랐으나 세월이 흘러서 알게 된 것이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를 말해준다.

 

 

“ ‘물질과 정신, 이 두 가지 만 있다. 개인, 중생, 어떠한 실체라고 하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 사실이구나. ‘눈을 한 번 깜빡하는 사이조차 길게, 확고히 머무는 법이라고는 없고 생겨나서는 즉시 무너지고 사라지는 법들뿐이다라는 것이 사실이구나. ‘항상하지 않다. 괴로움인 것이다. 좋지 않은 것이다.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 나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사실이구나. 모든 법을 아시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은 사실이구나.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모두가 사실이구나. 스승님께서 말해 주신 것도 사실이구나
(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 521-522)

 

 

이 몸과 마음은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알았을 때 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순간순간 생멸하기 때문에 항상하는 것은 없다.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고, 무상하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이다. 과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불교를 종교로 가진 사람들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이 하여 연등을 달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소원을 빌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점차 가르침을 알게 되면 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모든 법을 아시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은 사실이구나.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모두가 사실이구나. 스승님께서 말해 주신 것도 사실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연등 든 인연으로

 

연등축제의 날이 비가 왔다. 그것도 주룩주룩 내렸다. 그럼에도 행사는 진행되었다. 어떤 이들은 비를 맞으며 율동을 하고 거리를 행진했다. 동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혼자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떠할까? 연등축제만을 본다면 한국이 불교국가인것으로 착각된다. 그러나 종로거리에 한정된다. 조금만 벗어나면 세상은 십자가천지이다.

 

두 종교를 겪어 보았다. 중학교 때는 불교를 겪었고, 고등학교 때는 기독교를 겪었다. 비교해 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불교가 먼저 자리잡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이 세상에 불교만한 것이 없다.

 

어떤 이는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종교도 한가지만 겪어 본 사람이 가장 무서울 것이다. 마치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만의 종교에 빠지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불교는 접하면 접할수록 새롭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진실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대승불교에서부터 초기불교까지, 그리고 아비담마와 청정도론과 같은 논서를 접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부처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는 니까야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경전을 잘 읽어 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불교에 대해서 무지하다. 부처님 그분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는 것이다.

 

초기경전, 즉 니까야는 얼마나 잘 팔릴까?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하나의 니까야 경전이 번역되어서 출간했을 때 일년에 고작 200권 팔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상윳따니까야 천부를 발간 했을 때 소진 되는데 오년 걸린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불자가 천만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니까야를 읽어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히 적을 것으로 본다.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연등을 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또한 길거리에서 연등행렬을 바라 본 것도 큰 인연이 된다. 법화경 방편품에서처럼 그것을 인연으로 먼 훗날 모두다 성불하기를!

 

 

 

2024-05-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