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망해암 낙조바위

담마다사 이병욱 2024. 5. 3. 08:59

망해암 낙조바위
 
 
싱그러운 오월의 아침이다. 일터로 가는 길에 상큼한 향내를 느꼈다. 어떤 냄새일까? 이마트 안양점 주변에서는 찾을 수 없다.
 
냄새에 약하다.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날 때 한참 후에 알아본다. 후각능력이 덜 발달한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비산사거리에서 향내가 코를 자극했다.
 
깊게 흡입 했다. 후각을 의도적으로 알아차리고자 한 것이다. 그때 대로 건너편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 흰 목걸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아카시아꽃이다!”라고 알아차렸다.
 
향기는 바람을 타고 간다. 또한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리지 못한다. 아마 강하게 바람이 분 것 같다. 후각능력이 떨어진 자의 코에도 아카시아 상큼한 냄새가 다가왔다.
 
하나의 사물을 보면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비산사거리에 작은 동산이 있다. 이 동산은 관악산에서 오는 것이다. 비봉산을 거쳐서 비산사거리에서 끝을 맺는다.
 

 
노동절날 비봉산에 갔다. 관악대로만 건너면 산에 이른다. 이때 비산레미안 아파트단지를 지나야 한다. 이십년전 주공아파트가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숲세권 아파트가 되었다.
 
비산사거리에 살고 있다. 안양 교통의 요충지이다. 서울로 가려면 비산사거리 1번 국도를 통해서 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지하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이른바 ‘월판선’이다. 월곳에서 판교에 이르는 노선을 말한다.
 

 
월판선은 언제 개통될까? 아마 삼년 이상은 걸릴 것 같다. 비산사거리에서는 매일 발파작업이 일어난다. 흙을 퍼 내는 별도의 장치가 사거리에 설치되어 있다.
 
요즘 지하철 공사는 옛날과 다르다. 도로를 파헤치는 공법은 아니다. 공사를 하는지도 모르게 진행된다. 아마 깊은 곳에서 터널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월판선이 개통되면 역세권이 된다. 운동장역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되지만 오백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역세권으로 보는 것이다.
 
이 거리를 사랑한다. 이 도시를 사랑한다. 비산사거리는 살기에 대단히 편하다. 무엇보다 마트가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동 현관에서 직선 거리로 불과 백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신호등이 있는 도로도 없다.
 
나이가 들면 도시에 살라고 말한다. 너무 나이들면 전원에서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병원이 가까이 있고 마트가 가까이 있는 곳이 좋다고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비산사거리 아파트야말로 최적의 조건이 된다. 더구나 대로를 건너면 관악산으로 연결된다.
 
비산 레미안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숲에 들어가자 마자 기분이 달라진다. 온통 초록의 세상이다. 햇살이 강렬해도 나무가 터널을 이루기 때문에 더운 줄 모른다.
 
숲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상큼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무엇일까? 기대되는 것이 있었다. 요즘 절기상으로 보아 때죽나무꽃이나 쪽동백나무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마치 목걸이를 늘어 뜨린 것처럼 흰 꽃타래가 눈의 띄었다. 언제 보아도 햇갈린다. 때죽나무꽃일까 쪽동백나무꽃일까?
 
때죽나무꽃과 쪽동백나무꽃은 비슷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꽃 피는 시가가 다르다. 때죽나무꽃이 먼저 핀다. 다음으로 차이 나는 것은 꽃타래이다. 쪽동백나무꽃은 목걸이처럼 줄기를 이루어 핀다.
 

 
비산사거리 주변은 천지개벽 되었다. 비산 1동, 2동, 3동이 모두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요즘 유행하는 타워형 아파트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비봉산 가는 길도 공원화 되었다.
 
오르다 보니 마실길에 이르렀다. 마실간다고 해서 마실길이라고 이름 붙인 것 같다. 일종의 산책코스와도 같다. 관악산 둘레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마실길을 가다가 미물이 짝짓기 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곤충인지는 알 수 없다. 장수풍덩이 같아 보이지만 어떤 곤충인지 알 수 없다.
 

 
생명 있는 것들이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번식하는 것이다. 오월의 신록에 벌레들로 가득한 것도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곤충에 짝짓기 하는 것을 보니 자손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사람도 동물에 속한다. 식욕과 번식욕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는 벌레나 곤충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똑같다.
 
밀린다팡하 교정작업을 하고 있다. 오늘 새벽에 읽은 것 중에 하나는 인간이 축생과 다른 것에 대한 설명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동물은 ‘정신활동(yonisomanasikāra)’을 한다. 정신활동을 한다고 하여 모두 지혜로울까? 밀린다왕은 “존자여,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에 나가쎄나 존자는 정신활동과 지혜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지혜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흔히 유정중생이라고 말한다. 정신능력이 있는 존재를 말한다. 이런 유정중생의 범주에 축생도 해당된다. 곤충도 해당된다. 식물은 해당되지 않는다.
 
곤충이 짝짓기 하는 것은 본능이기도 하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축생에게 정신활동은 있지만 지혜가 없다는 것이다. 지혜가 없어서 축생인 것이다.
 
인간과 축생이 서로 다른 것은 지혜의 유무에 있다. 나가쎄나 존자는 지혜의 특징에 대하여 “정신활동은 파지(把持)를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절단(切斷)을 특징으로 합니다.”(Mil.32)라고 했다.
 
파지와 절단,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그런데 나가쎄나 존자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어떤 것이든지 비유를 들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일까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하여 비유로 설명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비유에 따른다.
 
 
“대왕이여, 보리이삭을 베는 자가 왼손으로 보리단을 잡고 오른 손으로 낫을 들어 낫으로 자르듯, 이와 같이 대왕이여, 수행자는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으로 마음을 파지하고 지혜로서 번뇌를 자릅니다. 이와 같이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은 파지를 특징으로 하고 이와 같이 지혜는 절단을 특징으로 합니다.”(Mil.33)
 
 
참으로 명쾌한 설명이다. 파지만 있으면 축생과 같다. 지혜가 있어야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파지와 지혜를 보리단을 자르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축생과 인간은 다르다. 축생은 파지만 있고 지혜는 없다. 그런데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수행자는 범부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번뇌의 유무에 달려 있다.
 
번뇌를 어떻게 제거 해야 할까? 지혜의 검으로 잘라 내야 한다. 그래서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은 파지를 특징으로 하고 이와 같이 지혜는 절단을 특징으로 합니다.”(Mil.33)라고 한 것이다.
 
마실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장사에 이른다. 안양을 대표하는 전통사찰 중의 하나이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아래로 내려 가면 비산사거리에 이른다. 올라 가기로 했다.
 
망해암을 향해 길을 걸었다. 망해암까지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천천히 느릿느릿 걸었다. 이삼십분 걷자 망해암이 나타났다.
 

 

 
망해암은 안양을 대표하는 절 중의 하나이다. 특히 망해암은 안양구경 중에 하나에 속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팔경이라고 했는데 슬그머니 하나가 늘었다.
 
망해암은 낙조가 일품이다. 망해암에 서면 저 멀리 서해 바다가 보인다. 송도 신도시 마천루도 아스라히 보인다.
 

 
망해암 낙조는 전각에서 보아야 한다. 전각 난간에서 보면 최상의 뷰가 된다. 그러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 대신 망해암 낙조바위로 가야 한다.
 
요즘 망해암에 가면 낙조바위를 찾는다. 낙조바위는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명소이다. 전각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바위에 편하게 앉아 멍때리기하듯이 하계를 바라다 본다.
 

 
낙조바위에 앉아 있으면 세상이 내려다 보인다. 굽이굽이 산마다 아파트단지 들어서 있다. 마치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산 반 아파트 반이라고 볼 수 있다. 수도권 도시의 특징이다.
 
망해암 낙조바위는 알려진 것 같다. 절 것으로 보이는 파라볼라 안테나에 시 한편이 써 있다. 한자를 곁들인 짤막한 시이다. 제목은 ‘망해암 일몰’이다.
 
 
“望海菴 日沒
 
남서쪽 산 자락에
아스라이 걸리는 線
태양을 걸어 놓고
太古를 노래한다
이참에 불은 노을이
산자락에
걸렸다
 
채현병 님의 詩”
 

 

 
이 시를 보니 망해암 낙조바위에 앉아서 쓴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파라볼라 안테나가 시판이 되었다.
 
시에서 “태양을 걸어 놓고 太古를 노래한다”라는 문구가 와 닿는다. 일몰의 순간을 노래한 것이다. 지금이나 백년전이나 천년전이나 만년전이나 십만년전이나 변함 없이 태양은 선에 걸렸을 것이다.
 
낙조바위는 절벽 위에 있다. 낙조바위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낭떠러지가 된다. 그래서일까 나무 펜스를 쳐 놓았다.
 
사람들은 낙조바위를 찾는다. 낙조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 본다. 어제도 해는 졌고 그제도 졌다. 먼 태고 적부터 있어 온 일이다.
 
망해암은 벼랑에 있다. 더구나 해가 지는 곳에 있다. 벼랑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자도 낙조바위, 벼랑바위에 앉아 해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 볼 것이다.
 
서산에 해가 지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해가 져도 세상은 계속된다. 내일이 되면 동쪽에서 내일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알기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삶은 산 자의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삶이 없다. 오늘 절망하더라도 하나의 희망의 씨를 심어야 한다.
 
낙조바위 바로 옆에는 작은 돌탑 무더기가 있다. 마치 공기돌로 만든 것 같은 작은 돌탑이다. 돌 하나 얹으면 희망도 하나 얹는 것이 될 것이다.
 

 
망해암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먼저 아는 척 했다. 그 사람은 낙조바위에 있다가 나오는 길이었고 나는 들어가는 길이었다.
 
세상에 아는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길거리에서 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사람은 업체 사장이다. 전자부품 조립업체 여사장이다. 딸 둘을 데리고 왔다. 스무 살 전후로 보인다. 2007년부터 거래 했으니 그때 당시 아이들은 서너살 되었을 것이다.
 
그 사장을 보자 결제해야 할 것이 생각났다. 지난달에 결재해 주어야 하나 깜박 잊고 있었다.
 
오늘 일터로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날 뻔 했다. 안양천을 건너기 전에 옆을 보니 저 멀리 아는 사람이 보였다. 부부끼리 아침 산책 나온 것이다. 이런 경우 일부러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 징검다리를 빠르게 건너갔다.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 1995년 안양에 직장을 잡았을 때 알게 되었다. 직장 동료였던 것이다. 그는 현재 안양7동 메가트리아에 살고 있다. 전에 혼자 산책 나올 때 몇 번 만난 적 있다.
 
평범한 일상이다. 늘 똑 같은 패턴이다. 집과 일터를 왕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평범한 일상이 최상의 삶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흔적을 남기려 한다. 글로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오늘 아침 상큼한 향기가 자극이 되었다. 아카시아 향기에 쪽동백나무꽃 향기가 연상되었고 망해암 낙조바위에 이르게 되었다.
 

 
망해암 낙조바위, 삶에 지친 자가 찾으면 좋을 것 같다. 절벽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면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허무하게 스러지는 해를 보면 항상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는 해를 바라보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작은 돌탑 무더기에 소원이 보인다. 삶이 고단한 자는 망해암 낙조바위에서 지는 해를 바라 보아야 한다.
 
 
2024-05-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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