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백아산자연휴양림의 아침

담마다사 이병욱 2024. 5. 16. 09:12

백아산자연휴양림의 아침

 

 


아침햇살에 세상이 빛난다. 아침햇살에 대지가 깨어난다. 부처님오신날 아침이다. 햇살을 듬뿍받으며 능선에 앉아 있다.

여기는 백아산이다. 아침 일찍 산책나왔다. 백아산자연휴양림의 아침이다.

 


아침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다. 어제 죽었던 내가 깨어난다. 이를 부활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또한 재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도시를 탈출했다. 소음에 시달리는 도시를 벗어나 산속으로 피난했다. 그래 보았자 이틀이다.

도시의 소음은 참을 수 없다. 특히 오토바이 소음이다. 오토바이 폭탄음을 들으면 저절로 쌍욕이 튀어 나온다.

오토바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도시탈출을 하지 않는 한 파할 수 없다. 감내하며 살 수밖에 없다.

오토바이 폭탄음은 해결될 수 없는 것일까? 경찰이 단속하면 좋을 것 같다.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속수무책인 것 같다. 공무원들의 직무유기는 아닐까?

오토바이 폭탄음은 단속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듣기 싫어도 들으며 살아야 할까? 그때마다 쌍욕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나는 날마다 불선업 짓고 사는 것이 된다.

어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보았다. 그것은 중국사례를 말한다. 현재 중국에서 모든 오토바이는 전기로 운행된다고 한다. 그 결과 소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희망적 메세지가 아닐 수 없다.

이박삼일 일정으로 휴가나왔다. 월요일부터 시작하여 수요일까지, 평일과 부처님오신날인 공휴일을 낀 일정이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다.

사람들은 해외로 자주 나간다. 상당수는 철마다 나간다고 한다. 그러나 해외로 나갈 처지가 되지 못한다. 그 대신 국내여행을 한다.

국내도 해외 못지 않다. 작은 국토이지만 오밀조밀 다 갖추고 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장쾌한 산을 보면 중국의 명산이 부럽지 않다. 섬으로 이루어진 다도해에 가면 하롱베이 못지 않다. 무엇보다 교통이다.

한국은 사통팔달이다.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어디서나 일일생활권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 드물다.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여행은 화순군이다. 화순에 있는 자연휴양림을 예약했다. 한천자연휴양림과 백아산자연휴양림이다.

 


여행 첫째날에는 증심사에 갔다. 어제 둘째날 일정은 바빴다. 세량지, 개천사, 운주사, 메타세콰이어길, 죽녹원을 들렀다. 무려 다섯 군데 일정을 소화했다. 오늘 셋째날은 귀가하는 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이므로 귀가길에 절 한 곳을 들르고자 한다.

 

어제 둘째날 점심식사를 잊을 수 없다. 산채비빔밥을 시켰는데 반찬이 무려 열세 가지 나왔다. 인터넷으로 '화순 운주사 맛집'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알아 내었다. 운주사에서 1키로 떨어진 곳이다.

백아산 산책길 능선에 앉아 있다. 아침햇살은 찬란하다. 이런 저런 새소리가 들린다. 오토바이 소음에 시달리다 이런 곳에 앉아 있으니 확실히 도시탈출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소음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백아산은 어떤 산일까? 담양 죽녹원에서 출발하여 55키로를 들어 왔다. 첩첩산중 깊은 산중이다. 도중에 곡성을 지났다. 화순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백아산은 예사롭지 않은 산세이다. 백아산 입구 북면에서 본 백아산은 위엄 있어 보였다. 밑변이 긴 삼각형 모양의 장쾌한 산세에 마음이 끌렸다.

 

 


오늘 산책길에 휴양림 안내표지판을 보았다. 백아산은 해발 810미터이다. 그런데 설명문을 보니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다는 것이다. 백아산지구 전투를 말한다.

백아산은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념 갈등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백아산은 백운산, 지리산과 함께 빨치산의 최강부대인 전남빨치산의 본거지로 모든 빨치산 부대 참가자들에게는 3대 성지로 추앙받는 곳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안내판에는 빨치산의 전설적 이야기도 소개 되어 있다. 끝까지 저항하는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서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 폭격기가 출격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빨치산들이 총으로 비행기를 쏴서 격추시켰다는 것이다.

백아산 빨치산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존속했다고 한다. 1955년에 완전히 토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휴양림은 과거 이념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지금 이 자리는 어쩌면 빨치산 본부가 있었던 곳인지 모른다. 그때 당시 백아산 본부에는 발동기와 연자방아까지 갖추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70여년이 되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고인이 되었다. 그때 당시 나이 어린 사람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백아산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저 아래 마을 사람들은 두 개의 세상을 살았다. 밤에는 빨치산, 낮에는 국군의 세상을 산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있었다. 남부군 저자 이태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이여 죽은 것이다.

백아산, 단순한 산이 아니다. 치열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비극의 산이다. 그러나 70여년이 지난 현재 그 자리에는 휴양림이 들어서 있다. 도시의 소음에 지친 자가 하루를 보냈다.

2024-05-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