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출가자가 속퇴하는 다섯 가지 이유

담마다사 이병욱 2024. 5. 27. 22:14

출가자가 속퇴하는 다섯 가지 이유

사람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스님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

출가자라 해서 모두 부처님 같은 사람은 아니다. 계행이 엉망인 자가 있을 때 실망하기 쉽다.

계행이 엉망인 자가 교단에 남아 있으면 신도들이 떠날 것이다. 불교 세력의 약화 요인이 된다.

출가자는 모든 면에 있어서 재가자보다 뛰어나다. 설령 사미라 해도 합장공경해야 한다. 이는 "재가신도는, 흐름에 든 님으로 악처를 끊고 -바른 견해에 도달하여 가르침을 식별하여도, 법부인 수행승이나 사미에게 예경하고 일어나 맞이해야 합니다."(Mil.162-165)라는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다.

재가의 수다원이라도 이제 갓 출가한 사미에게 합장예경해야 한다.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재가신도로서 흐름에 든 님은, 범부인 수행승이라도 '수행자를 수행자로 만드는 스무 가지 원리와 두 가지 특징의 그 모든 덕성이 수행승에게 있는데, 그는 그 덕성을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가르치고 있다. 나에게는 그러한 전승의 학습 계율이 없다.'라고 그에게 예경하고 일어나 맞이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재가신도로서 흐름에 든 님은, 범부인 수행승이라도 '대왕이여, 왕자가 왕립사제의 아래서 학문을 배우고, 왕족의 의무를 배우고, 훗날 관정을 받고 스승에게 '이 분은 나의 선생이다.'라고 예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듯,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승은 선생이고 계승자 이다.'라고 그에게 예경하고 일어나 맞이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대왕이여, 또한 이러한 탐구에 의해서도 수행승의 지위는 위대하고 견줄 수 없고 광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대왕이여, 재가신도로서 흐름에 든 님이 거룩한 경지를 깨우치면 그 날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인가 아니면 수행승의 상태에 이를 것인가의 두 가지의 운명이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대왕이여, 그 출가 즉, 수행승의 상태는 부동이고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Mil.162-165)

출가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한 좋은 환경에 있기 때문에 훌륭한 수행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출가 했다고 해서 계속 출가자로 살라는 보장은 없다.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물러 났을 때 그 출가자를 부처님보듯 믿고 따른 신도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밀린다팡하 교정작업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머리맡에 두고서 틈날때마다 읽는다. 오늘 새벽에는 출가자의 속퇴문제에 대한 것을 읽었다. 밀린다왕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존자 나가쎄나여, 광대한 여래의 가르침은 심수이고 최상이고 최승이고 고귀하고 견줄 수 없고 청정하고 때를 여의고 밝고 허물이 없습니다. 재가자를 그대로 출가시키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재가자는 어느 한 지위로 이끌고 다시 퇴전하지 않을 때 출가시켜야 합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그 경우에 악한들이 이러한 청정한 가르침에 출가하여 되돌아 속퇴하고 그들의 속퇴로 인해 이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이들이 물러났으니 이 수행자 고따마의 가르침은 헛된 것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것에 대한 이유입니다."(Mil.246)

출가자는 재가자에서 나온다. 속퇴하면 재가로 돌아간다. 이렇게 본다면 재가는 출가의 어머니와 같다. 모든 생명체의 대지와도 같다.

출가에 조건이 있다. 아무나 출가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추어진 자이어야 한다. 그래서 "재가자는 어느 한 지위로 이끌고 다시 퇴전하지 않을 때 출가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 출가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을 낸 사람이어야 한다. 생계를 위한 출가나 도피를 위한 출가는 실패하기 쉽다. 마음이 더러운 악한 자가 출가해도 버티기 힘들다. 그들이 속퇴 했을 때 신도들도 떠날 것이다.

출가자의 속퇴는 그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가르침은 그대로 있다. 이에 대하여 나가쎄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음식의 비유를 들고 있다.

"대왕이여, 이와 만찬가지로 여래께서는 가르침이 담긴 상자에 '누구라도 인지가 있고 식별이 있으나 내부에 번뇌의 굶주림이 있고 마음이 갈애에 정복된 자들은, 이 음식을 먹고 감각적 욕망계와 미세한 물질계와 비물질계에서 모든 갈애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지극히 뛰어나고 평화롭고 길상이고 탁월하고 불사이고 아주 감미로운, 신체에 대한 새김의 음식을 넣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 음식을 먹지 않고 갈애에 사로잡혀 돌아와서 속퇴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이자는 승자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속퇴했다. 어떻게 승자의 가르침이 이 적응하지 못하는 자를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겠는가? 승자의 가르침에 어떠한 허물이 있겠는가?'라고 비난할 것입니다."(Mil.248)

말을 물에 데려갈 수 있다. 그러나 강제로 먹일 수 없다. 승자의 가르침에는 잘못이 없다. 적응하지 못하는 자에게 문제가 있다.

준비된 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권력을 잡으면 폭주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준비된 자가 출가해야 한다. 재가자라도 도와 과를 이룬 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굳이 출가하지 않아도 된다. 왜 그런가? "그 경우에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루 어진 것입니다. 그들에게 출가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Mil.249)라는 말로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비유로도 설명된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여래께서 재가자를 하나의 과위로 이끌어 출가시키면, 그 경우에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에게 출가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참된 선인의 시자로서 전승된 진언의 구절을 잘 기억하 고, 바보가 아니고, 병의 원인에 밝고,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의사와 외과의사는 온갖 질병을 가라앉히는 약을 모아놓고 이와 같이 '여러분, 누구든지 병이 있는 자는 나에게 와서는 안 됩니 다. 병이 없는 자만이 나에게 오십시오.'라고 알린다면, 대왕이여, 그 병이 없고 아픈 곳이 없고 건강하고 행복한 자들에게 그 의사가 필요하 겠습니까?"(Mil.248-249)

또한 다음과 같은 비유도 있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수백 그릇의 음식을 준비하고 대중에게 '여러분, 누구라도 굶주린 자들은 이 급식소에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잘 먹고, 잔뜩 먹고, 배부르고, 물리고, 만족한 자들이 이 급식소에 들어오십시오.'라고 알린다면, 대왕이여, 그 잘 먹고, 잔뜩 먹고, 배부르고, 물리고, 만족한 자들에게 그 음식이 필요하겠습니까?"(Mil.249)

재가자가 도와 과를 이루면 출가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맛 있는 음식을 두 번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 가르침을 실천하면 된다. 다만 아나함이 되면 출가해야 한다. 오상분결이라는 미세한 번뇌를 소멸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속퇴자가 있기 마련이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나가쎄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승자의 가르침의 위대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재가자를 하나의 과위로 이끌어 출가시키면,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여래께서 재가자를 하나의 과위로 이끌어 출가시키면, 그 경우에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에게 출가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그러나 속퇴한 자들은 승자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견줄 수 없는 특성을 보여줍니다. 다섯 가지란 무엇입니까? ① 지평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② 청정무구하다는 것을 보여줍 니다. ③ 악인과 함께 살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④ 꿰뚫기 어려운 것을 보여줍니다. ⑤ 많은 제어를 통해 보존되는 것을 보여줍니다."(Mil.249)

출가부적격자가 있다. 출가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출가하면 견딜 수 없다. 이에 대하여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승자의 가르침은 지평이 위대하고, 청정무구하고, 악인과 살 수 없고, 가르침을 알기 어렵고, 제어로 보존 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지평의 위대함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지평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까? 대왕이여, 한 사람이 가난하고 비천하고 특별한 것이 없고 지성이 결핍되었는데, 위대한 왕국을 얻으면 머지않아 그는 망하고 몰락하고 명성이 퇴전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됩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권력이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자들이라도 뛰어난 것이 없고 공덕도 쌓지 않고 지성도 결핍된 자들이 승자의 가르침에 출가하면, 그들은 그 뛰어난 최상의 출가를 유지할 수가 없어 머지않아 승자의 가르침에서 망하고 몰락하고 퇴전하고, 속퇴하고, 승자의 가르침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승자의 가르침의 지평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Mil.249-250)

준비되지 않은 자가 권력을 잡으면 망하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자가 출가하게 되면 견딜 수 없어서 속퇴하게 됨을 말한다.

승자의 교단은 악인과 함께 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어떻게 악인과 함께 지낼 수 없음을 보여줍니까? 대왕이여, 대해가 죽은 자나 시체와 함께 지내지 못하고, 어떠한 대해에서 죽은 자나 시체라도 그것을 신속하게 육지로 인도하여 밀어올리는 것과 같습니 다. 무슨 까닭입니까? 대해가 위대한 존재의 주처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악하고, 둔하고, 정진이 없고, 타락하고, 오염되고, 사악한 사람들이 출가하면, 그들은 머지않아 승자의 가르침 - 티끌 없이 번뇌를 부순 거룩한 님, 위대한 존재의 주처 ·에서 나와 함께 살지 못하고 속퇴합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승자의 가르침은 악한 자와 함께 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악인과 함께 지낼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Mil.250)

한때 종단에서 정화운동이 있었다. 말이 정화이지 절 뺏기나 다름없었다. 그때 폭력배가 동원 되었다. 그들은 스님이 되었다. 그들은 잘 적응되었을까? 속퇴 아니면 생계형이 되었을 것이다.

청정한 교단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설령 생계형이나 도피형 출가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청정한 출가자가 있는한 가르침은 유지된다. 나가쎄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왕이여,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최상인 재스민 꽃의 덤불에는 벌레에 먹히는 꽃들이 있는데, 그 싹들이 시들어 어느 사이엔가 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다고 해서 재스민 덤불이 경멸받지는 않습니다. 거기에서 남아 있는 꽃들은 참다운 향기를 사방팔방으로 퍼뜨립니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승자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속퇴하면, 그들은 승자의 가르침에서 벌레에 먹혀 색깔과 향기를 잃은 재스민의 꽃들처럼 계행의 색체가 없어져 성숙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속퇴한다고 해도 승자의 가르침이 경멸받는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 남아있는 수행승들이 있는데, 그들이 신들과 인간의 세계에 뛰어난 계행의 향기를 퍼뜨립니다."(Mil.251)

미꾸라지 같은 사람이 있다. 흙탕물로 혼탁해 질 수 있으나 사라지면 청정해진다. 꽃이 벌레로 인하여 망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꽃이 파괴 되지 않는다. 대부분 꽃에서 향기를 낸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다.

참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스른다. 바람을 거슬러 사방팔방십방으로 퍼져 나간다. 계의 향기다. 꽃이 피면 열매가 맺는다. 도를 닦으면 과가 따른다. 밀린다왕은 참사람의 모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찬탄한다.

"존자 나가쎄나여, 현명하십니다. 각각 적절하고 각각 적당한 이유로 승자의 가르침이 허물없는 것이 이해되었고, 승자의 가르침이 가장 수승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속퇴하는 자들이더라도 그들은 승자의 가르침이 가장 수승한 것임을 밝힌 셈입니다."(Mil.252)

2024-05-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