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권 담마의 거울 2022, 서탑(書塔)에 책 하나 더 올려 놓고
일은 단계적으로 완성된다. 오늘 이 만큼 해 놓으면 내일 발판이 된다. 내일 또 저 만큼 해 놓으면 진전된다. 이렇게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 놓으면 어느 날 다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삶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생업과 자기계발을 말한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한다. 일이 없으면 글을 쓴다. 요즘에는 책도 만든다. 과거 써 놓은 글을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정리해서 만드는 것이다.
나의 본업은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이다. 고객으로부터 회로도를 받아서 도면대로 그려 주는 것이다. 이를 업계에서는 아트워크(artwork)라고 한다. 마치 예술작품 만들듯이 작업하는 것이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로 인하여 자기실현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생계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고객들은 언제나 급하기 때문에 납기를 지켜 주어야 한다. 당연히 다른 것은 후순위가 된다. 먼저 일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 글도 쓰고 책도 만들고 경전도 읽는다.
일은 본업이다. 부업은 글쓰기, 책 만들기, 경전읽기 등이 된다. 돈이 되는 것은 본업이고 돈이 되지 않는 부업이다. 당연히 자기계발에 대한 것은 부업이 된다.
이 일에는 정년이 없다. 일감이 있는 한 계속 된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있는 것은 삶에 활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일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도 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본다면 일하는 것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 된다. 일을 함으로써 이 사회에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사업보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문보국(作文報國)도 있다. 글을 씀으로 인하여 이 사회에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책 만들기도 보국이 된다. 이를 서책(書冊報國)이라 해야 할 것이다. 책을 만듦으로 인하여 이 사회에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 하면 훌륭한 일이 된다. 청소부가 거리를 청소할 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이 세상을 깨끗이 하는 것이 된다.
일을 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책을 만드는 것은 보국이다. 이 사회에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했을 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오늘 책을 한권 만들어야 한다. 틈만 나면 시간만 나면 책을 만든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책 만들기는 여러 날 걸린다. 먼저 과거 글을 수집한다. 블로그에 있는 글을 가져 오는 것이다. 시기별로 카테고리 별로 분류하는 것이 일차작업이다.
책 만들기 2단계는 목차 만드는 것이다. 목차를 만들 때 글의 제목을 달리 붙이기도 한다. 마치 기사에서 제목을 바꾸어 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용은 건드리지 않는다.
책 만들기 3단계는 사진 사이즈 조정하는 작업이다. 이 단계가 가장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러나 매일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어느 날 된 것을 알게 된다.
책 만들기 4단계는 서문을 쓰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은 서문에 대한 것이다. 책 소개 위주로 쓴다. 그러나 현재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쓰기도 한다. 항상 현재 것을 쓴다.
이번에 만든 책은 2022년 담마에 대하여 쓴 것이다. 이를 ‘127 담마의 거울 2022’라고 이름 붙였다. 127번째 책으로 목차에는 59개의 글이 있다. 종이 사이즈는 B5(18.2X25.7mm)이고 폰트 사이즈는 10이다. 총 319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오염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2. 우문우답과 우문현답
3. 내가 회의론자에게 답하지 않는 이유
4. 어리석은 자가 명성을 얻으면
5. 죽음이 두려운 것은
6.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7. 머리맡 경전으로 맛지마니까야를
8. 밤에는 맛지마 낮에는 디가
9. 받을 줄도 모르고 줄 줄도 모르고
10. 이것을 말하지만 이것의 실체를 알았으니
11. 물질문명은 정신문명보다 우월한가?
12. 새로운 신앙을 받아 들이려면
13.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이 열반
14. 마음이 윤회한다고 하는데
15. 느껴지지 않는 즐거움, 느껴지지 않는 행복
16.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잠자기 전 성찰
17. 늘 학인(學人)의 자세로 배우고자
18. 정법이 변질되면 나타나는 현상
19.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20. 경전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을 때
21. 사랑도 미움도
22. 이혼한 전처 보듯 현상을 관찰하면
23. 굼실굼실 무섭게 흐르는 안양천을 보면서
24. 오후불식하면 어떤 이익이
25. 사랑하는 자로부터 슬픔이
26. 그 사람은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
27. 오온의 배후에는 초자아가 있다는데
28. 어떤 존재로도 형성되지 않기 위하여
29. 스승과 제자는 우정의 관계
30. 사람의 목숨은 옹기와 같아서
31. 나는 싸우지 않는다
32. 후진불가 전륜왕의 사군과 부처님의 사성제
33. 공부하다 죽으라는데
34. 천사(天使)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35.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부처님
36. 시간투자해서 먹고 사는데
37. 고귀한 우정에 대하여
38. 맛지마니까야 완독 대장정을 마치고
39. 내가 경전읽기 하는 것은
40. 진실을 고백하여 힘을 불러오는 진실선언
41. 심청정이면 중생청정
42. 슬퍼하지 마라, 무엇을 근심하는가?
43. 말 때문에 망한 사람은 열 가지 통치자의 원리를 몰라서
44.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45. 주기만 하는 사람과 받기만 하는 사람
46. 큰스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47. 영원한 저 세상과 자아가 있다는데
48. 왜 둘이서 같은 길을 가지 말라고 했을까?
49. 부처님은 발을 어떻게 씻었을까?
50. 어떻게 우연론자가 되는가? 무상유정천과 무심도인
51. 반야심경과 입법계품의 모티브가 되는 께밧다의 경(D11)
52. 내가 사람을 호칭할 때 "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53. 산냐(相)의 척파에 대하여
54. 어떻게 해야 타인을 감동케 할 수 있을까?
55. 유년시절 순수의 시대로
56. 나는 세상의 창조자이자 파괴자
57. 과거칠불의 증명이 되어준 정거천
58. 자신이 자신을 의지처로 해야 하는 이유는?
59. 법의 맛을 알면
글을 쓰면서 배운다. 매일매일 글을 쓰면 엄청나게 축적된다. 그것은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전 문구를 인용하여 글을 쓰기 때문에 지혜라고도 볼 수 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식은 머리로 이해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지혜는 몸으로 체득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경전을 읽어서 이해하는 것은 지식에 해당되고 수행을 해서 체득된 것은 지혜에 해당된다.
경전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깨달은 자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된 것이다. 그러나 몸으로 체득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몸으로 체득된 것 못지 않다. 이런 것도 지혜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 수행승과 교학승이 있다. 서로 다투고 있다. 수행승은 교학승에 대하여 “들뜨고 오만하고 동요하고 수다스럽고 쓸데없이 지껄이고 새김을 잃고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만하고 마음이 혼란되고 감관은 거칠다.”(A6.46)라고 비난했다.
교학승은 수행승을 비난했다. 교학승은 “이들은 도대체 무슨 선정에 든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선정에 든단 말인가?”(A6.46)라며 비난했다.
교학승은 경전적 지식이 풍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깊게 수행을 하지 않어서 선정의 맛은 모른다. 수행승은 선정의 맛은 알지만 경전적 지식은 부족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그 사람 단점만 본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럴 때는 그 사람 장점만 보고 가야 한다.
수행승에게 없는 것이 교학승에게 있다. 교학승에게 없는 것이 수행승에게 있다. 서로서로 장점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학과 수행을 함께 해야 한다.
여기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한 부류는 가르침을 중시하면서 선정에 드는 수행승이다. 선정의 비중이 높아서 수행승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수행승에 대해서는 “세상에 이러한 심오한 의취를 지혜로 꿰뚫고 있는 놀라운 사람들을 세상에서 만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A6.46)라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한 부류가 있다. 선정에 들면서 가르침을 중시하는 수행승을 말한다. 교학의 비중이 높아서 교학승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교학승에 대해서는 “세상에 이러한 심오한 의취를 지혜로 꿰뚫고 있는 놀라운 사람들을 세상에서 만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A6.46)라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수행만 하는 사람은 경전공부나 교리공부하는 것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자만이다.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으나 지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경전공부만 하는 사람이 있다. 좌선이나 경행 등 수행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심오한 경지를 모른다. 다만 경전이나 논서에서 이론으로만 접할 뿐이다.
경전공부만 하면 비난 받기 쉽다. 헤엄 치는 법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한다. 먹어 보아야 맛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전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행도 하게 되어 있다.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글쓰기 하다 보면 비난 받을 때가 있다. 글만 쓰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비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행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수행한 사람에 대하여 비난한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책 읽은 자를 비난한다. 경전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 경전 읽는 사람을 비난한다. 글을 써 보지 않은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을 쓰기를 비난한다. 자신이 직접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난하는 것으로 본다. 마치 신통에 대하여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초기경전을 보면 여러 가지 신통이 있다. 신통에 대한 정형구는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된다. 어떤 이는 이를 보고서 초기경전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통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말한다.
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생각한다.왜 그런가?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통을 부정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럴 때는 “사선정에 들어가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 같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또한 자신이 인식하는 것만 믿는다. 그러다 보니 경전에서의 초월적인 가르침이나 신화적인 가르침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자신이 보지 않은 것, 자신이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부정하고 비난한다. 수행해 보지 않은 자가 수행을 비난하고, 경전을 읽어 보지 않은 자가 경전을 비난 하는 것이다.
비난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들 대부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해 본 사람이라면 격려할 것이다.
어떤 이는 경전 보는 것에 대하여 탐탁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경전 보는 것에 대하여 집착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경전을 보지 않은 것 같다. 경전을 보았다면 수희찬탄(隨喜讚嘆)했을 것이다.
매일 경전을 읽고 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어깃장 놓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경전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경전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새긴다. 이럴 때 법의 맛(法味)을 느낀다.
반드시 수행을 해야 법의 맛을 아는 것은 아니다. 교학을 공부하고 경전을 읽어도 법의 맛은 안다. 더 좋은 것은 수행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오한 의취를 지혜로 꿰뚫는다.”라고 했다.
글쓰기 십칠년 되었다. 경전에 근거한 글쓰기이다. 일상에 대한 글도 경전 문구 하나 넣어서 쓴다. 이렇게 쓰다 보니 하나의 탑(塔)이 되었다. 글자의 탑(文字塔)이다. 이제 책으로 만든다.
경전을 근거로 하는 글쓰기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누군가 글 쓰는 것에 대하여 실천이 없다고 해도 게으치 않는다. 누군가 경전 보는 것에 대하여 남의 소 센다고 말해도 게으치 않는다. 이럴 때 테라와다 수행승들을 떠 올린다. 맛지마니까야 주석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소승이라든지 은둔불교라든지 아공법유라든지 부처님 가르침을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다든지 하는 그들을 향한 어떠한 비난이나 도전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법을 올바르게 이해(pariyatti)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고 바른 도를 실천하여(paṭipatti) 괴로움에서 벗어나(paṭivedha) 부처님이 보이신 해탈열반을 직접 실현하는 것이었으며 이런 출가 생활이 이웃이나 불교도 들에게 가장 큰 공덕을 가져다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 puññakkhetta)이 된다고 부처님께서 설하셨기 때문이다.”(M.1.446)
오늘날 빠알리 삼장이 전승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은 테라와다 수행승들의 역할이 크다. 아공법공 등을 말하면서 소승이라고 폄하하건 말건 자신의 할 바를 다한 수행승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테라와다 수행승들은 대승불교와 같은 새로운 사조에 물들지 않았다. 세 가지, 즉 교학(pariyatti)과 실천(paṭipatti) 과 증득(paṭivedha)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정법(正法)이 이어져 왔다.
오늘도 내일도 쓴다. 매일매일 십칠년 동안 써 왔다. 비난도 많이 받았다. 수행은 하지 않고 글만 쓴다는 것이다. 경전을 인용하면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오늘 책 한권 만들었다. 한권한권 만들다 보니 이제 127권이 되었다. 틈 날 때 마다 만들다 보니 이런 성과를 내었다.
책을 쌓아 놓으면 하나의 탑이 된다. 이를 서탑(書塔)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탑에 책 하나 더 올려 놓았다.
2024-05-2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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