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백권당 금강좌(金剛座)

담마다사 이병욱 2024. 9. 5. 10:24

백권당 금강좌(金剛座)
 
 
백권당 금강좌는 나의 도피처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 도망갈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또한 백권당 금강좌는 나의 피난처이다.
 
오늘은 재가우안거 48일째 되는 날이다. 우안거가 시작된 이래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좌선을 하고 있다. 여행을 가거나 집안 일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백권당 명상공간에서 좌선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기분이 우울했다. 평소와는 달리 의욕이 없었다. 샤워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꿈이 영향을 준 것 같다. 몸 상태도 영향을 준 것 같다. 무엇보다 좋지 않은 소식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친구가 많이 아프다. 친구 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장루를 두 개나 차고 있는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대학 같은 학과 동기모임이 있다. 일년에 한두번 만나서 소주 마시는 모임이다. 거의 십 년 전에 상조팀을 하나 만들었다. 부모 상이 났을 때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동기 깃발도 만들었다. 일이 나면 화환을 발송했다. 내가 상조일을 도맡아 했다.
 
작년 연말에 연말에 오랜만에 송년회가 열렸다.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린 것이다. 상조통장 잔고가 바닥이 났다. 더 이상 모연하지 않으려 했다. 부모 상당수가 돌아 가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친구가 반대했다. 그 친구는 “그 다음은 우리차례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우울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기분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명상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백권당에서 행선과 좌선을 하고 나면 새로운 기분이 된다.
 
오늘 행선은 좀 달랐다. 이것도 하나의 발견이다. 행선할 때 보폭을 짧게 가져 가는 것이다. 평소 30센티 걸음걸이를 했으나 이보다 약간 당겼다. 마치 종종걸음 하는 것처럼 보폭을 짧게 한 것이다.
 

 
행선할 때 발모양을 생각하면 안된다. 발모양은 개념이다. 발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발모양을 생각한다면 언어적 개념이 작동된 것이다. 단지 운동성으로 보아야 한다.
 
발의 보폭을 짧게 했을 때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발을 떼고, 올리고, 밀고, 내리고, 딛고, 누르는 여섯 단계 동작을 반복했을 때 땅바닥에 떠서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행선 할 때 앞발을 누를 때 뒷발을 떼야 한다. 동시에 누르고 동시에 떼면 안된다. 마음은 한순간에 하나의 일밖에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에 인식하기 어렵다.
 
앞발을 누른 상태에서 뒷발을 떼야 한다. 이렇게 스무스하게 연결되었을 때 바닥을 떠서 가는 것 같다. 이는 발의 모양 또는 이미지를 보지 않고 움직임만 새기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실재를 보는 수행이다. 이 말은 개념을 배제하라는 말과 같다. 행선할 때 발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말고 움직임만 보는 것이다. 좌선할 때 배의 이미지를 보지 말고 배의 움직임만 보는 것이다. 지수화풍 사대에서 풍대를 보는 것이다.
 
행선이 끝나고 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를 금강좌(金剛座)라고 이름 붙였다. 왜 금강좌인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앉았던 그 금강좌를 떠올리고 이름 붙인 것이다.
 

 
백권당 금강좌는 화려하지 않다. 금빛 번쩍하는 자리가 아니다. 푹신한 방석 위에 레자방석 네 개를 올려 놓은 것이 전부이다.
 
금강좌에 매일 앉는다. 2020년 초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은 이래 사 년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는다.
 
금강좌에 앉으면 스스로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것 같다. 미천한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성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다.
 
백권당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세간적 공간과 출세간적 공간이다. 칸막이를 중심으로 하여 창 측에 있는 공간은 세속적 공간이다. 책상이 있고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다. 출입문 쪽에 있는 공간은 출세간적 공간이다. 매트 위에 카페트가 있고 그 위에 방석이 있는 공간이다.
 
하루에 몇번씩 세간과 출세간 공간을 왕래한다. 불과 칸막이 하나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래 전에는 명상하기 위해서 먼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집중수행을 해 본 것은 2015년이 처음이다. 그때 설악에 있었다. 설악산이 있는 설악이 아니라 가평 설악을 말한다. 첫날 소감에 대하여 ‘설악의 아침’(2015-08-07)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설악에서 집중수행은 고작 2박3일에 지나지 않았다. 본래 6박7일이었는데 업무가 있어서 2박3일이 된 것이다. 한국명상원 황영채 선생이 지도했다.
 
설악 콘테이너 하우스는 무척 더웠다. 찜통 같은 더위였다. 수련원이 완성되지 않아 임시로 마련된 콘테이너박스에서 잠을 자고 그 자리에서 좌선을 했던 것이다. 여성수행자들은 황영채 선생 집에서 보냈다.
 
설악에서 삼 일은 맛만 보았을 뿐이다. 평좌한 다리가 너무 아팠다. 수행이 이렇게 힘든 것이라면 고행이 될 것 같았다. 언젠가는 제대로 집중수행 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행은 수행처에서만 해야 하는 것일까? 설악수련원에 다녀 온 후 서울 강남 논현동에 있는 한국명상원에 다녔다. 일요일에만 간 것이다. 일요일에 문을 열어 놓기 때문에 누구나 자율수행이 가능했다.
 
안양에서 논현동까지 몇 차례 다녔다. 오로지 행선과 좌선하기 위해서 그 먼거리를 이동한 것이다. 가까운 선원이나 수행처가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행은 집중수행할 때만 하는 줄 알았다. 왜 그런가? 수행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할 수 없었다. 집에서 수행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사무실에는 공유하는 사람이 있어서 꿈도 꾸지 못했다.
 
2020년 1월 사무실 공유하던 사람이 나갔다. 같은 오피스텔에 있는 방을 하나 얻은 것이다. 그 사람과 꽤 오래 함께 있었다. 거의 칠팔년 된 것 같다.
 
2020년 1월부터 사무실을 혼자 쓰게 되었다.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되었다. 또다시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달라졌다. 사업 초창기 때의 상황과 다른 것이다. 홀로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사무실을 두 개로 나누었다. 칸막이를 이용하여 정확하게 반으로 나눈 것이다. 사무공간과 명상공간으로 나누었다.
 
명상공간은 다섯 평 가량 된다. 매트가 깔려 진 공간은 세 평이다. 매트 가운데 카페트를 깔고 그 위에 방석을 놓았다. 방석 위에 또 방석을 놓았다. 엉덩이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명상공간에서 좌선한지 사 년 되었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재가우안거에 들어갔다. 매일 한시간씩 좌선했다. 올해 우언거는 삼십분 좌선한다. 그 대신 오전과 오후로 두 번 한다. 앞으로 야간좌선을 하게 되면 세 번 하게 된다.
 
백권당 명상공간에 있는 자리를 금강좌라고 이름 붙였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한 그 자리를 생각하고 지은 것이다.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에 가면 부처님의 금강좌가 있다. 보리수 앞에서 마하보디 대탑이 있는데 그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그 자리를 금강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금강좌는 보리수 나무 아래이다.
 
마하보디 사원에 가면 커다란 보리수가 있다. 부처님 당시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에서 이식해 온 것이다. 사람들은 보리수 앞에 있는 석재를 만지며 감격해 한다.
 
부처님의 금강좌는 악마와의 승리에 의한 것이다. 악마의 군대가 금강좌를 빼앗으려 하자 지켜 낸 자리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자타카에 실려 있다. 보살은 악마의 대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악마여, 그대는 열 가지 일반적 초월의 길도, 열 가지 우월적 초월의 길도, 열 가지 승의적 초월의 길도 닦지 못하고, 다섯 가지 위대한 포기도 닦지 못했고, 앎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고, 세상의 이익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고, 깨달음을 위한 삶도 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닦았다. 그러므로 이 가부좌는 그대의 것이 아니라, 참으로 나의 것이 다.”(Jat.I, 73-74)
 
 
악마는 보살의 성도를 방해했다. 이는 금강좌를 차지 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자리에 악마가 앉겠다는 것이다. 이에 보살은 세 종류의 십바라밀을 닦은 이야기 등을 했다. 금강좌에 앉을 자격이 있음을 말한다.
 
자타카 1권은 ‘인연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보살이 금강좌에 앉아 깨달음을 이루기 까지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깨달음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악마의 방해가 매우 심해졌다. 그것은 금강좌를 빼앗는 것이었다. 이에 보살은 최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보시한 것에 대한 증인들은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지만, 나의 이 경우에 는 의식이 있는 어떠한 증인도 없다. 내가 다른 생에서 보시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벳싼따라’로서의 생에서 칠백 번 큰 보시를 행한 것에 대한 증인은 의식이 없는 두터운 대지 이다.”(Jat.I,74)
 
 
보살의 마지막 생애는 ‘벳싼따라’ 존자로 살았다. 벳싼따라 자타카는 보시바라밀의 진수를 보여 준다. 아이들은 물론 아내까지 보시한 것이다. 이전 생에서 축생으로 살 때는 몸까지 보시했었다. 이런 것을 누가 알아줄까?
 
보살은 대지를 증인으로 삼았다. 그런데 대지는 의식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살이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대지를 가리켰다. 왜 그랬을까? 땅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미드웨이’가 있다. 엔딩 자막에 “바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말이 떴다. 보살이 사아승지십만겁동안 십바라밀을 닦으면서 보살행을 한 것은 대지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살은 오른손을 아래로 가리켰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항마촉지인’이다.
 
대웅전에 가면 오른손을 아래로 하고 있는 불상을 볼 수 있다. 석굴암 불상도 아래로 향하고 있고, 미얀마 불상도 아래로 향하고 있고, 스리랑카 불상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불상은 항마촉지인상이다.
 
부처님은 오른손을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대지에서 “그때 내가 그대의 증인이다.” (Jat.I,74)라고 수천, 수만, 수 없는 외침이 있었다. 의식 없는 대지에서 외침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악마의 군대를 제압하는 외침이다.
 
보살은 악마의 군대를 제압하고 부처가 되었다. 금강좌를 지켜 낸 것이다. 대지가 증인이 되어 주었다. 사아승지십만겁동안 수없는 생을 보살행을 살았는데 땅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자 다른 기분이 되었다. 아침에 우울했던 마음은 이전 마음이 되었다. 좌선을 삼십분만 해도 세상이 바뀐 것이다.
 
마음이 우울할 때는 명상공간에 앉아야 한다. 금강좌에 앉으면 다른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런 금강좌는 나에게 있어서 도피처이다. 마음이 혼탁해졌을 때 금강좌는 피난처가 된다.
 
하나의 공간에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행선대에서 행선을 하는 순간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이는 개념을 보지 않고 실재를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명상공간 금강좌에 앉으면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다. 눈을 감고 배의 부품과 꺼짐을 지속적으로 새기면 다른 상태가 된다. 이 자리가 세상의 도피처이자 피난처이다.
 
 
2024-09-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