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담마다사 이병욱 2024. 9. 6. 10:17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자리에 벌러덩 누웠다. 삼십분 좌선이 끝난 것이다. 명상홀이라면 상상할 수 없다. 개인 공간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오늘 재가우안거 49일째이다. 매일매일 삼십분 좌선을 하고 있다. 오후에도 삼십분 좌선한다. 아직까지 저녁좌선은 생활화 되지 않았다. 좌선이 끝나면 벌러덩 드러눕는다.
 
오늘은 잠을 대체로 잘 잔 편이다. 그 동안 잠을 잘 못 이루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이다.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깼다. 담마짝까법문을 한시간 보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잠을 잘 자려고 해서는 안된다. 쉰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른쪽이나 왼쪽 옆구리로 누워 가만 있다 보면 잠들게 된다.
 

 
잠깐 잠들었음에도 몸이 개운 했다. 잠을 잘 자면 꿈의 질도 좋다. 그대로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평소보다 삼십분 늦게 일어났다.
 
아침에는 어떤 정보도 접하지 않는다. 머리맡에 있는 경전이나 논서 이외에 일체 어떤 것도 보지 않는다. 어제 올려진 글의 반응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오전은 거의 정보와 차단하며 지낸다. 막 좌선을 끝낸 상태에서 흰 여백을 대하면 글도 잘 써지는 것 같다. 특히 명상을 막 끝낸 상태에서 일을 하면 효율은 배가 된다.
 
어제 두 건 일감 처리를 했다. 두 건 수주 받은 것을 두세 시간 간격으로 끝낸 것이다. 이는 좌선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음에 오염이 없는 상태에서 인쇄회로기판설(PCB) 설계작업을 했을 때 속도가 났다.
 
오늘 아침 좌선에서 ‘심월(心月)’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좌선 중에 마음의 달이 뜬 것을 상상해 본 것이다.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경’(M86)에 이런 게송이 있다.
 
 
예전에는 방일하여도
지금은 방일하지 않은 자
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저질러진 악한 일을
선한 일로 덮으니
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참으로 젊은 수행승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M86, Thag.871-873)
 

 

 
연쇄살인자였던 앙굴리말라 장로가 읊은 게송 중의 일부이다. 장로는 해탈의 기쁨에 대하여 “구름을 벗어난 달(abbhā muttova candimā)”로 비유했다.
 
달에 구름이 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밤이 어둡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보름달이 구름을 벗어나면 마치 대낮처럼 밝아진다. 땅에 기어가는 작은 생명체도 보일 것이다.
 
게송에서는 왜 ‘구름을 벗어난 달’이라고 했을까? 대낮의 구름을 벗어난 태양이라고 노래 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름을 벗어난 달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심월(心月), 마음의 달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도 달이 뜰 수 있을까? 명상을 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음을 집중하면 못할 것이 없다. 청정도론에서는 게으른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오직 올바르게 행도를 닦고 이치에 맞게 노력하고 통찰을 시작한 휼륭한 가문의 아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다.”(Vism.20.105)라고 했다.
 
명상 중에 빛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위빠사나 십경계라고 말한다. 도와 과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장애로 보는 것이다. 빛을 즐기지 말라는 것이다. 단지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으로 무상, 고, 무아로 보라고 말한다.
 
구름을 벗어난 달에 대하여 어떤 이는 심월로 표현한다. 마음에 달이 뜬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마음이 만들어낸 물질을 말한다. 마음도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음식을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뿐 만이 아니다. 뼈도 되고 골수도 된다. 갖가지 호르몬도 만들어 낸다. 이는 음식이라는 물질이 소화되었을 때 물질이 물질을 만들어낸 결과에 따른 것이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음식을 먹으면 열 번 진행된다고 한다. 물질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물질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것은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진행된다. 내가 음식을 먹지만 신진대사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마음도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어떻게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마음에서 생겨난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란 세 가지 비물질적 존재의 다발 내지 소리-구개조와 신체적 암시·언어적 암시·허공계·경쾌성·유연성·적합성·집적성·상속성의 열일곱 가지 물질을 말한다. 마음에 조건지어진 것이란 ‘나중에 생겨난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이전에 생겨 난 그 몸에 대하여 후생조건으로써 조건이 된다.’라고설한, 네 가지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물질을 말한다.”(Vism.20.32)
 
 
마음에서 생겨난 물질을 보면 ‘신체적 암시·언어적 암시·허공계·경쾌성·유연성’등이 있다. 행선을 할 때 발을 드는 것은 마음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이때 신체적 암시가 있어서 발을 드는 것이다. 마음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음의 물질은 명상 중에 빛으로도 나타난다. 이를 심월이라 해야 할 것이다. 손으로 만져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눈 앞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집중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구름을 벗어난 달은 심월이다. 마음에 보름달이 뜨면 훤하게 비추게 될 것이다. 어두운 마음은 사라지고 밝은 마음이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석에서는 구름을 벗어난 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마치 오염원이 가신(nirupakkilesa) 달(candimā)이 세상을 비추듯이, 방일함이라는 오염원을 벗어난(pamāda-kilesa-vimutta)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자신의 무더기[蘊], 감각장소[處], 요소[界]라는 이 세상(loka)을 비춘다. 오염원인 어둠을 몰아낸다(vihata-kiles-andhakāra)는 말이다.”(MA.III.340)
 
 
초기불전연구원 각주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겼다. 마음의 달은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세계에서 오염원인 어둠을 몰아냄을 말한다.
 
테라가타에도 앙굴리말라 게송이 있다. 구름을 벗어난 달에 대한 주석을 보면“길(magga)과 경지(phala)의 행복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길에서 얻어진 지혜로, 달이 구름에서 벗어나 허공을 밝히듯, 존재의 다발(五蘊: pañcakhaṇḍa)의 이 세계를 밝힌다.” (DhpA. III. 169)라고 설명되어 있다.
 
구름을 벗어난 달은 어둠의 세계를 밝힌다. 그런데 주석에서는 공통적으로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세계를 밝힌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자신의 세계를 밝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오염원을 밝히는 것이다.
 
캄캄한 방에 불을 켜면 잘 보인다. 어두우면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불을 켜면 탐욕, 분노 등 갖가지 오염원이 보인다. 그런데 오염원은 밝음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훤하게 비추기 때문이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매일 보초를 서야 했다. 보초 서는 것에 대하여 군대용어로 ‘근무’라고 말한다. 군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군대에서 보초는 한시간 반이 보통이다. 돌아가며 순번으로 서기 때문에 새벽에 걸릴 수도 있고 초저녁에 걸릴 수도 있다. 초저녁에 근무 서면 일직하사가 “오늘은 긴 밤이네.”라고 말한다. 초저녁에 서면 잠을 열 시부터 다음날 여섯 시까지 잘 수 있기 때문에 긴 밤이 되는 것이다.
 
보초 설 때 새벽에 걸릴 때가 있다. 새벽 두 시나 세 시에 보초를 설 때 보름날이 될 때가 있다. 세상이 훤해지는 것 같다. 마음은 보름달처럼 풍요로워진다. 하물며 좌선 중에 보름달을 보면 어떠할까?
 
앙굴리말라경에서 보름달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마음의 오염원이 사라졌을 때 보름달이 뜬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치 좌선 중에 빛을 본 것과 같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구름을 벗어난 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DhpA.IV.137에 따르면, 그 수행승은 거룩한 길에 대한 궁극적인 앎으로써, 달이 구름에서 벗어나듯, 존재의 다발의 세계를 완전히 밝힌다. ThagA. III. 59에 따르면, 그는 나중에 선지식과의 교류를 통해 이치에 맞게 사유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올바로 실천하여 세 가지 명지(tevijjā: 三明)를 얻고 여섯 가지 곧바른 앎(chalabhiññā: 六神通)을 얻어 그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허공을 자신이 얻은 명지와 곧바른 앎으로 이 존재의 다발의 세계를 비춘 다는 뜻이다.”(테라가타, 2922번 각주)
 
 
각주에서는 법구경과 테라가타 각주를 이용하여 구름에 벗어난 달을 설명했다. 구름을 벗어난 달은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온이라는 세계, 십이처라는 세계, 십팔계라는 세계에 달이 뜬 것이다.
 
마음의 보름달이 뜬 것은 해탈의 경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노력과 선지식과의 교류에 의해서 뜬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 역시 보름달이 뜰 것이다. 그래서일까 과거 연쇄살인자였던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장로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나의 적들은 법문을 들어라.
나의 적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라.
나의 적들은 가르침으로 이끄는
훌륭한 사람들과 사귀어라.”(Thag.874)
 
나의 적들은 인욕을 설하고
원한이 없는 것을 찬양하는 자에게
올바른 때에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따라 수행하라.”(Thag.875)
 
이와 같이 하면 반드시
나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네.
그는 최상의 평온을 얻어
약자이건 강자이건 수호한다.”(Thag.876)
 
관개하는 사람은 물꼬를 트고
활 만드는 자는 화살촉을 바로잡고
목수는 나무를 바로잡고
현자는 자신을 다스린다.”(Thag.877)
 
어떤 사람들은 몽둥이나
갈구리나 채찍으로 다스린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몽둥이 없이 칼 없이 다스려졌네.”(Thag.878)
 
예전에 살해하는 자였던 나는
이제는 살해하지 않는 자이네.
오늘 나에게 진실한 이름이 있으니
아무도 ‘해치지 않는 자’였네.”(Thag.879)
 
예전에 나는 흉적으로서
앙굴리말라라고 알려졌다.
커다란 폭류에 휩쓸렸으나
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었네.”(Thag.890)
 
 
예전의 연쇄살인자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만나 안식처를 얻었다. 더 이상 흉적이 아닌 것이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오염원을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마음의 달이 떠 오른 것이다.
 
좌선 중에 마음의 달이 떠오르기를 고대한다. 마음의 달이 떠 올라 세상을 비춘다면 세상이 밝아질 것 같다. 나는 언제나 구름을 벗어난 달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심월, 마음의 달을 볼 수 있을까?
 
 
2024-09-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