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근간에
한국불교의 미래에 걱정 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아니 예전부터 속으로 걱정 하던 사람들이 의견 표출을 함으로써 외형상
많아 진 것일 것이다. 불교를 사랑하는 불자 라면 누구든지 현재
처해 있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답답해 하고 불교의 발전에 대한 의문을 떠 올릴 것이다. 동네 주변을 돌아 보면 으리으리하고 초현대적인 시설이 잘 갖추어진 교회만
보이고 절이란 눈을 앃고 보아도 찿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종교 인구의 분포를 보면 아직도 불교가 1위인 것이 그저 희안 하기만 할
뿐이다.
해외세력에
의존 하는 종교들
분명코
한국불교는 이 사회의 주류는 아니다.
과거 조선시대 500년간 철저하게 탄압 받았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 진 것이 없다. 기독교는 힘센 미국의 보호와 영향력 아래 힘입어서 견제 세력 없이 급성장
하여 왔고 천주교도 역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황청에 속해 있지만 불교만큼은 어느 국가도 어느 단체도 지원하는 세력이 없다.
이 땅의
젊은이 들은 정계나 관계, 학계, 그리고 군 등의 주류로 진입 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받아 들이는 것이 유리
하다고 판단 되었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는 새로 들어온 문명의 종교이고 동양의 종교는 은연중에 낡고 오래된 비문명의 종교라는 서양중심의
사고방식도 크게 작용 하였으리라. 물론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도 큰 몫을 차지 했을 것 으로 본다.
불교의
관음신앙과 수행의 전통
한국 불교는
이와 같이 과거에 철저하게 탄압 받았고 어느 국가나 어느 단체의 도움 없이 1600년을 면면히 전승 되어 왔고
앞으로도 전승 되어 갈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가 갖은 탄압에도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 해온 것은 민중의 신앙이고 동시에 수행의 종교이기에 가능 했다.
불교의
대표적인 민중신앙은 관음 신앙 이다. 그 뿌리는 삼국시대에 까지 올라 간다. 관음신앙은 민중이 가장 접근 하기
쉬운 타력구원 신앙의 상징 이다. 또한 불교는 자력신앙 만의
종교는 아니다. 자력과 타력을 모두 겸비한 종교이다. 따라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선택해서 믿으면 되는 것이다. 이점이 타 종교와 차별화 되는 장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불교의 또
한가지 특징은 수행의 종교 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타 종교 특히 신본주의 종교에서 볼 수 없는 불교만의 특징이다. 지금도 결제철이 되면 전국의 선방에서 수행정진 하는 수많은 수행자 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이 말로 한국불교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이런
수행의 결과를 중생들에게 회향 하였을 때 한국불교는 회생 할 것이다.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한 한국불교
한국불교는
재정적으로도 매우 열악 하다.
실례로 조계종 1년 예산이 서울의 대형교회의 한달 헌금액 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우리 불자 들이 고작 1년에 한두번 절에 가서 시주 할 때와 그들이 매달
10일조 헌금 할 때의 금액은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재정적으로 어렵다 보니 도시에 포교도량 하니 지으려 해도 여간 어렵지 않는 것이다. 재력 있는 사람들의 쾌척이나 신도의 꾸준한 보시로 의식이 바꾸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불자들의
신행 태도 개선해야
우리 불자
들의 현실과 신행의 다름도 문제이다.
신행생활 따로 사회 생활 따로 노는 행태가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 한다. 입으로는 천수경의 좋은 내용을 매일 암송 하지만 밖에서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 헤어 나지 못 하고 언행 일치가 되지 않은 점도 점검 해 볼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길거리에서 스님을 만났을 때 합장 하며 인사 하는
불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마주친 스님의
수행공덕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불자라면 인사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 일 것이다. 인사를 받은 스님은 자기가 인사를 받을 만한 공덕을 쌓았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돌아 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하여 걱정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 하다. 그 문제를 제기 했다는 것 자체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개선 할 수 잇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관련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수 많은 사람 들이 ‘한국 불교 이래서는 안된다’ 라는 염려와 질타는 분명코
한국불교가 미래에 더 발전 되기를 열망하는 소리 없는 외침 이기 때문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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