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평의 공간

담마다사 이병욱 2006. 11. 17. 11:19

한평의 공간

 

 

사람이 살아 보아야 한평 이내의 공간에서 보낸다. 한평은 대략 1.8m 곱하기 1.8m이다.  잠자는 공간이나 책상에서 일 하는 공간이나 한평을 벗어 나지 못한다.  물론 죽을 때도 한평의 공간 밖에 차지 하지 못 한다.

 

몇일전에 TV에서 필리핀에 돈 벌로 갔다가 잘못 되어 가족은 서울로 보내고 자신만 혼자 남아서 생활 하는 사람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가진 공간은 2평 남짓한 공간이다. 야전용 침대가 하나 있고 수도 꼭지가 달린 원룸형태이다. 그는 이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그는 말한다.  자신 한몸 누울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 아니냐고.

 

지금도 서울역 지하도에 가면 수많은 노숙자가 기약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편히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단 한 평의 공간마저 없는 최악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희망은 고단한 몸뚱이를 누일 수 있는 단 한평의 공간이 최대의 소원일 것이다. 

 

최근에 아파트값 폭등으로 인하여 집없는 서민들의 한숨과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이제는 아파트 한채 장만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려워져 버렸다. 이세상에 발 붙이고 살지만 자신의 소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운좋게 요지에 아파트 한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앉아서 백만장자가 되는 대단한 행운을 누리고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사태를 즐기는 사람들 도 있을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 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기막힌 사실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분명코 소유 하고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아주 경계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득을 지나치게 많이 취한다면 도둑질에 해당 한다는게 광의의 불교이론이다. 즉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올바른 이치라는 말이다. 부동산을 소유함 으로서 몇배의 이득을 취하였다면 전생의 공덕을 쌓은 결과로서 현생에 받았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하지만 현생에 그 과를 받아 먹어 먹고 새로운 공덕을 쌓지 못 하였다면 그는 은행의 잔고가 줄어 들듯이 공덕의 잔고도 줄어 들어 내세는 기약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부동산 투기나 또는 물건의 가치 상승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면 그 이익을 본 만큼 무언가 보시 하고 베풀지 않고 써 버렸을 때 다음생에 좋은 과보를 기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다음생을 위하여 또 성불의 시기를 앞 당기게 하기 위하여 지금은 풍족한 생활을 유예 하였다고 생각 하자. 실례로 스님들 같은 경우 철저히 무소유의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수 없이 공덕을 쌓고 있지 않은가.  무소유로서 공덕을 쌓는 다면 공덕의 잔고는 점점 올라 가게 되고 성불의 시기는 앞당겨 질 테니까.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누울 수 있는 한평의 공간이면 충분하고 일 할 수 있는 한평의 작업장이면 족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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