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수행이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 4. 11:05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수행이다

 

 

수행한다고 하면 산속에 들어가 가부좌 트는 것 만이 수행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산속에 들어가 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세상 속에서 웃고 울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도 수행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깨우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알고 세상을 살아 간다면 소위 말하는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명(無明)이 대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모르고 사는 것이 더 큰 죄라는 말이다.  무지 해서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 라는 통념을 깨뜨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즉 알면서 짖는 죄보다 모르고 짖는 죄가 더 크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한평생 살아 가면서 고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 간다면 분명 이것은 무지함에서 오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무명을 타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한다. 아마 젊은 시절에 인생과 우주와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고민 하고 공부하였다면 그 사람의 운명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또 훌륭한 스승을 만나서 공부 하였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구도를 위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경험하고 깨우쳤다면 인생의 목표는 확실하게 잡아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좀더 오래 전에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져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간절하다. 즉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같은 삼법인과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법(十 二緣起法)등 주옥 같은 교리는 허전한 마음를 채워주는 양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먹지 않았어도 배부른 것 같은 포만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를뿐더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떠밀려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나무 토막이 강물에 이리저리 떠밀려 내려 가듯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주체가 되지 못하고 마치 짐승들이 본능에 의하여 생존해 가듯이. 그렇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 가면서도 순간순간 깨우치고 살아가기 때문에 인생도 수행이다 라고 말 한다. 단지 자기가 누구인지 좀더 일찍 아느냐 늦게 아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07-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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