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진리와 정의를 위한 거룩한 분노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 13. 09:28

 

진리와 정의를 위한 거룩한 분노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개구리는 우물 안에서 보이는 작은 동그란 하늘만이 진짜 하늘처럼 착각 하며 살아 간다. 이런 개구리에게 그 우물 밖을 나오면 상상 할 수 없이 커다란 하늘이 있다고 해도 도무지 믿지를 않는다. 아마도 그 개구리는 우물 밖을 나와 보아야 만 진짜로 큰 하늘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종교도 일종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여겨 질 때가 있다.  우물 안 에서 바라본 하늘이 진짜 하늘이라고 생각 하고 우물 밖의 하늘을 전혀 믿지도 않을 뿐 더러 상상 조차 하기 싫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물 밖의 세계를 이야기 하면 이상하고 허황된 사람으로 취급 하기도 한다. 그 것이 바로 종교적 도그마인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 종교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기독교 이다.  힘없는 시절에 미국 선교사 들에 의하여 들어온 기독교는 지금 우리의 정신세계를 상당히 왜곡 하지 않고 있나 생각 된다. 물론 교육과 의술로서 개화 하는 데 있어서 문명의 종교로 인식 되기도 하지만 반면에 민족의 정체성과 전통을 파괴하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그림자는 왜 생기게 되었는가.  학자들은 말하기를 초기의 선교사들의 무지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원리원칙에 충실한 근본주의자들로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것이 없는 무지한 상태에서 복음을 전파 하였다고 한다.  즉 성황당과 같은 무당집이나 사찰의 불상을 보고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온통 미신이나 우상을 믿는 매우 열등한 민족으로서 반드시 개화 시키고 선교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선교사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불교이다. 사찰에 불상이 있어서 거기에 절을 한다고 우상숭배 종교로 간주 하고 또 칠성각이나 산신각이 있다고 해서 미신으로 간주 해서 반드시 척결해야 될 대상으로 은연중에 신자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이런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 온듯 하다. 그 당시에 그들은 한국의 전통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고 이해도 부족했다. 그래서 불교가 고등종교임을 전혀 모르고 무당집이나 점보는 집 정도로 파악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 된 것이다.

 

만일 그들이 불교의 교리와 상식이 있었더러면 오늘날과 같은 갈등과 긴장관계가 조장 되는 계기를 마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선불교에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라는 말이 있다. 이말은 대자유를 얻기 위하여 마음속의 집착하는 관념을 타파하라는 말이다. 그런 관념을 버리려면 부처와 조사로 위장한 마음속의 우상을 쳐 죽여라는 매우 파격적인 주장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마음속의 우상을 타파 하는 고등종교인 것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고등종교인 불교을 우상의 종교로 간주 하고 미신타파의 운동의 일환으로서 선교한지 100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들 선교사들이 가르쳐 준대로 훈련 받은 기독교인들이 작년에 부산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이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사찰과 불교를 멸절시키자 라는 기도회를 밤새 열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사찰이 미신이나 우상을 숭배 하는 본거지 라는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불교가  마음속의 우상을 타파 하기 위하여 살불살조 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우상을 타파 해온 고등종교인데 반하여 그 고등종교를 앞에 두고 마음속의 우상을 가득 간직한 채로 우상타파를 주장 하니 이만 저만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작년에 기독청년회에서 주관한 불교멸절 기도회는 대한민국 불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더구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 주자도 찬조 연설을 하였다 하니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불신의 눈을 거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불교에서는 성냄을 3독중의 하나라고 해서 경계하고 철저 하게 멀리 한다.  하지만 진리가 왜곡되고 정의가 사라지고 자유가 침해 받을 때는 인류사 적으로 저항해 왔다.  이것이 거룩한 분노이다.  123일 부산에서 5000여 사부대중이 진리와 정의를 수호 하기 위한 거룩한 분노가 표출된다고 한다 

 

2007-01-1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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