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無所有),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쓴다
도시를 보면 기본적으로 인공구조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빌딩을 보면 자본의 위력을 찬탄하기에 앞서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저 빌딩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들어 갔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 자원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을 파괴해서 얻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빌딩을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환경은 나빠 질 수 밖에 없다.
자연파괴가 어디 빌딩 뿐 이겠는가. 자동차도 그에 못지 않은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은 둘째 치고라도 우선은 화석연료의 고갈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가다가는 언젠가는 고갈 될 텐데 사람들은 이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있으니까 쓰고 보자는 매우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 된다.
빌딩이 고층화되고 자동차가 늘어나고 하는 것은 결국 자본의 위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모든 것을 돈 위주로 생각 하고 돈이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배 하고 있는 세상이다. 오로지 돈만 있으면 모든 욕망을 채울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상은 옛날부터 있어온 것은 사실이다.
돈과 욕망을 추구 하는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소유의 개념이다. 재화를 소유 해야만 안심이 되는 것이다. 소유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이 든지 할 수 있는 것이 돈을 위주로 하는 자본주의 이다. 그러니 환경이나 자원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오로지 눈앞의 황금만이 보이기 때문에 미친듯이 달려가는 말과 같다고 할것이다.
이런 황금만능주의의 시대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시 한번 마음의 제동을 걸게 만든다. 제법무아, 제행무상, 열반적정 이라는 3법인은 언제 들어도 진리이다. 이런 진리는 이 세상 그 어느 종교에서도 가르친바 없는 영원불변의 법칙이다. 또 불교는 이 우주가 부처님의 몸 그 자체이고 마음 그 자체라고 가르친다. 이 우주가 부처님의 몸이고 마음인데 함부로 자연을 파괴 하고 환경을 오염 시키다면 말이 되겠는가.
부처님의 분신인 우리들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쓰면 된다. 많이 소유 해 보아야 죽을 때 가져 가지도 못한다. 소유하기 위하여 애쓴 행위 즉 업만 잔뜩 짊어 지고 갈 뿐이다. 미래의 환경문제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 하였을 때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007-02-0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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