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바로 지금 여기만 있다면 과거도 없고 또한 미래도 없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7. 2. 25. 00:17

바로 지금 여기만 있다면 과거도 없고 또한 미래도 없다

 

 

 

 

한때 전생이야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최면을 걸어 전생을 보고 온 이야기를 TV에서 오락시간에 방영한 것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전생 이야기 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생이야기가 유행 했던 것은 각박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기를 찾고 싶어하는 욕구와 맞물려 인기를 누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생이 있으면 반드시 윤회가 있게 마련이다. 전생과 윤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전생과 윤회를 바탕으로 깔고 이루어진다. 전생과 윤회야 말로 불교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생과 윤회는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믿음이 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믿는지 모르겠다. 몇 해 전에 종교의식조사에서 전생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숫자가 전에 조사 하였을 때 보다 점점 증가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전생과 윤회에 대한 믿음은 대세로 굳어지지 않을까 생각 된다.

 

굳이 최면을 걸어서 전생을 알 필요도 없다.  옛말에 전생을 알려거든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이 진리처럼 들린다. 불교는 모든 것을 연기적으로 생각 하기 때문에 현재의 나의 모습을 보면 전생의 나의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내가 어떻게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현재는 미래의 전생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말하기를 항상 바로 지금 여기에 주목하라고 한다. 즉 있는 그대로를 바라 보라고 하는 것이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 보았을 때 이미 지나 가버린 과거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만 있다면 과거도 없고 또한 미래도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과거에 무수하게 많은 삶을 살아 왔다. 수천 수만생 아니 수억겁생을 살아서 여기까지 와 있다. 지금 현재 이 모습이 바로 나의 전생이다. 조금도 부인 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무서우리 만치 정확한 인과의 법칙의 결과인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에 했던 일을 또 하고 하는 일 만큼 짜증나고 한심한 일은 없다. 미래세에서도 현세에서와 같이 또 똑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인가.

 

2007-02-2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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