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막다른 골목, 이 상황이 꿈 이었으면…. 일체유심조

담마다사 이병욱 2007. 3. 31. 06:55

 

막다른 골목, 이 상황이 꿈 이었으면. 일체유심조

 

 

 

더이상 앞으로 나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갈 수도 없었다. 내가 자초한 현실에서 뻐져 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이것이 꿈이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뿐 이었다. 그런데 신기 하게도 꿈으로 끝난 것이다.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매일 꿈을 꾼다.  어떤 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매일 꿈을 꾸고 있다. 그런 꿈도 꿈을 깨는 순간에 꾸는 꿈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그리고 꿈꾸는 시간은 극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 진다. 의상조사의 법성게에 있는 게송과 같이 일념즉시무량겁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만든다.

 

흔히들 꿈은 예지력이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은 자아가 만들어낸 쓰레기 일뿐 이라고 말 하였지만 융은 꿈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잘 파악 하여야 한다고 주장 한다. 즉 꿈은 우리에게 무언가 가르쳐 주려고 하고  또 무언가 예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꿈이라는 것은 쓸데 없는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무언가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꿈을 꾸다 보면 꿈속에서 이 상황이 제발 꿈 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때가 있다.  꿈속에서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뒤로 갈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외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 하게도 그 상황이 진짜 꿈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것도 아주 간절하게 외쳐야 그 상황이 꿈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그 꿈에서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꿈에서는 꿈속의 나가 있다. 그리고 꿈속의 나와 더불어 현실과 똑같이 객관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그런데 꿈을 깨고 나면 꿈속의 나와 더불어 꿈속의 객관적인 세계도 모두 꿈꾸는 나가 만들었을 깨닫게 된다. 즉 꿈속의 나는 가짜의 나이고 꿈을 꾸는 나는 진짜의 나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의 나가 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객관적인 세계가 존재 한다. 우리는 그 세계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어 간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세계이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간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것도 역시 꿈속에서의 상황과 마찬 가지로 현실의 세계도 꿈의 세계에 불과 하다고 말한다.

 

그 꿈속에서 세계가 진짜 세계인줄 착각하고 업을 지으면서 육도 윤회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래서 꿈에서 하루 바삐 꿈에서 깰것을 주장 한다. 현실세계의 나도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기세간도 모두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 일 뿐이다. 만일 현실세계도 꿈이고 현실의 나도 꿈속의 나라면 꿈꾸는 진짜 나는 누구 일까.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부처님이다. 우리가 느끼는 현실세계의 나와 상대적인 기세간은 부처님의 마음이 만들어낸 한바탕의 꿈인 셈이다. 이것이 일체유심조이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꿈에서 깨어난다면 바로 원래의 나인 부처님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200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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