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세간 기세간이 모두다 비로자나(毘盧遮那:Vairocana) 부처님의 현현(顯現)

담마다사 이병욱 2007. 6. 13. 15:05

 

세간 기세간이 모두다 비로자나(毘盧遮那:Vairocana) 부처님의 현현(顯現)

 


 

화엄경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현(化現)이라고 한다. 세간과 기세간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현현(顯現)이고 보살행으로 부처님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부처님이 성도 하신후 삼칠일 즉 최초 21일간에 걸쳐서 설하신 내용이 화엄경이라는 것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다. 청정한 진리자체이기 때문에 불수도 없고 음성을 들을 수 없다. 만일 모습을 보았다거나 소리를 들었다면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하면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게송과 같이 사도를 행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보살도를 열심히 닦고 성불하기를 발원 한다면 이에 대한 과보로 나타난 부처님이 보신불이다. 노사나불이라 불리우는 보신불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등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살도도 닦지 않고 삿된 도에 빠져 세상이 혼탁해 졌을 때 비로자나불이 직접인간의 몸을 빌어 나타났을 때 화신불이라 부른다. 2500년전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표적인 화신불이다.

 

화엄경에서는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부처님의 몸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 화엄경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는 꽃으로 장엄된 화장세계(蓮華藏世界)와 같다는 것이다. 그 꽃이란 것이 장미와 백합 또는 온실에서 자란 난초와 같이 예쁘고 고상한 꽃이 아니라 이세상 어디에서난 볼 수 있는 잡화이다. 야생에서 자란 수천 수만가지 꽃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크고 작은 갖가지 꽃으로 나름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들판에 홀로 피는 민들레에서부터 산간의 무덤가에 피는 할미꽃, 그리고 이름없는 들꽃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상을 장엄한다. 이들 꽃들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땅을 기반으로 해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고보면 근원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 사람얼굴 다르듯이 모두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사람중에는 잘난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고 또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은 마치 꽃들이 제각각 꽃을 피우지만 뿌리는 항상 땅에 두고 있듯이 살아가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뿌리는 한마음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확인 할 수 있냐 하면 바로 꿈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꿈을 꿀 때 꿈꾸는 나와 꿈속의 나로 구분된다. 꿈속에서의 나는 꿈속에서의 객관적인 대상이 별개라 생각 되지만 꿈꾸는 내가 꿈을 깨어서 느끼는 것은 꿈속의 나와 꿈속의 객관적인 대상이 모두 꿈꾸는 나의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현대 심층심리학에서도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집단무의식은 인류가 이제까지 축적해온 모든 역사가 담겨져 있어서 개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모든 것을 포함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논리가 불교에서 말하는 제8식 아뢰야식이다. 중생의 모든 행위가 낱낱이 이 아뢰야식에 저장 되어 있어서 언젠가 인연이 되면 발아 해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G.융이 개척한 심층심리학은 이러한 불교의 유식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전해진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세계는 우리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결국 한마음에서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마음은 일심(一心)으로도 표현된다. 대승기신론에 보면 바다와 파도 비유가 나온다. 파도는 바람이 불어야 발생한다. 파도를 머추게 하려면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할 것이다. 파도는 바다라는 인과 바람이라는 연을 만나서 발생하는 것이다. 만일 바람이 그친다면 파도도 일렁이지 않고 바다 그 자체의 큰 물의 일원이 될 것이다. 바다를 한마음(一心)으로 보고 파도를 사람이라고 간주한다면 한마음속에 담겨 있는 인과 업이라는 연이 만나서 마치 파도처럼 수많은 꽃들과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것이다. 근원은 항상 바다와 같은 한마음인것이다. 그렇다면 한마음은 누구의 마음일까. 일찍이 선사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꿈속의 집이라고 하였고 모두가 꿈속의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금강경의 게송에도 나와 있듯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라고 하지 않았던가. 너무나 유명한 게송이다.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한가지가 더 있다. 즉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게송이다.


무릇 있는 바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상이 상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 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 하는 꿈속의 상황이 꿈임을 알고 있듯이 경전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속의 세상임를 말해 주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꿈속의 세상은 누군가 꿈꾸는 한마음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 꿈꾸는 사람은 누구인가. 비로자나 부처님이 바로 한마음의 주인공임을 경전은 말해 주려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현실에서 꿈을 깬다면 현실의 나와 내가 바라보는 객관적인 세계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한마음에서 나온 것 일것이다. 꽃들은 제각각 이지만 땅이라는 기반을 가지고 꽃을 피워 세상을 장엄 한다. 사람들도 제각각 살아 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한마음에서 출현 하였고 그 한마음은 다름아닌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경전은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2007-06-1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