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관세음보살정근(觀世音菩薩 精勤)과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

담마다사 이병욱 2007. 6. 16. 12:47

 

관세음보살정근(觀世音菩薩 精勤)과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

 

 

 

불교에 정식 입문하기 전의 일이다. 등산을 하다 보면 산사에 갈 기회가 많이 있다. 종종 염불하는 장면도 목격 하게 되는데 그 염불이라는 것이 듣는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단순하고 어찌 보면 유치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른다든가 아니면 지장보살등 보살의 이름을 끊임없이 한참 부르는 것을 보고 느꼇던 감정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지만 이것이 바로 정근이라는 염불이었던 것이다. 정근은 보살의 이름을 명호 하는 방법으로서 불자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기도이자 수행방법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칭명염불이 타종교에서 말하는 기복형기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기도에는 무척 종류가 많다. 각종 재일부터 시작해서 때에 따라 사건에 따라 열리는 기도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기도는 반드시 발원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선지식들은 강조 한다. 복을 달라는 식의 구걸형기도를 경계 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잠시 효과과 있를지 모르지만  불행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왜 불행의 씨앗인가. 바로 오욕락의 추구가 최종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즉 식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 욕망이다. 따라서 구걸형기도는 5욕락을 추구 하는 기도로 변질되기 쉬운 것이다.

 

구걸형기도는 사실 불교와는 맞지 않는 면이 많이 있다. 무엇을 자꾸 달라고 하는 기도는 끝이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나를 해주면 또 하나 달라고 떼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무엇을 하나 가지면 또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이다. 결국 목표는 5욕락을 추구 하며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기도이다. 이런 구걸형 기도는 신본주의 종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주종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종의 입장에서 주인에게 달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떤이는 이런 구걸형기도를 코흘리개 철부지와 같은 유아형기도라고 폄하 하기도 한다.

 

기도는 발원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스님이나 선지식들은 강조한다. 무엇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발원기도야 말로 불교가 추구 하는 가치관과 맞기 때문이다. 불교는 지혜와 깨달음을 추구 하는 인본주의종교이다. 어떤 창조자나 절대자에게 전적으로 믿고 의지 하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서 지혜와 자비를 추구 하는 철저히 인간적인 종교이다. 따라서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기복성 구걸기도와는 맞지 않고 무엇을 하겠다는 발원형 기도가 맞는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 하는 자력종교임에 분명하나 타력신앙적인 요소도 혼재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신앙이 관음신앙이다. 관음신앙은 민중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신행방법으로서 그 뿌리는 매우 깊다. 관음신앙이 타력적인 요소를 가졌음에도 불구 하고 구걸형 기도로 보지는 않는다. 관음신앙의 경전인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염피관음력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관세음보살을 생각 하는 힘에 따라서 기도가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7난과 삼독 그리고 구남구녀등 중생이 간절히 바라는 사항에 대하여 오직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칭명하면 가피를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심으로 관음을 칭명함에 따라 육근이 청정해지고 신구의 삼업이 소멸되어 삼매에 들었을 때 관음이 응해서 기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걸형기도와 같은 기복기도로 볼 수 없다. 기복이 아닌 구복으로 보아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불교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신행과 수행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 간화선 위빠사나와 같은 참선수행에서부터 염불수행까지 각자 자신에게 맞는 수행방법을 택해서 하면 된다. 또 참선수행과 염불수행을 겸해서 하기도 한다. 신행만 있는 타종교와 달리 불교는 수행의 전통도 가지고 있다.  신행과 수행을 번갈아 가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다. 또 참선과 같은 자력신앙과 염불과 같은 타력신앙도 가지고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교가 구복신앙은 될지언정 기복신앙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도의 경우도 구걸형기도가 아니라 발원형 기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요인을 있게끔 하는 것은 수행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200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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