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주어진 운명을 바꾸는 길

담마다사 이병욱 2007. 6. 25. 23:49

 

주어진 운명을 바꾸는 길 

 

 

 

국녕사 일일 수련회가 열렸다. 천하절경의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국녕사는 차가 진입 할 수 없어서 걸어서 올라가야만 한다. 앞에는 북한산의 노적봉의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산사에서 김진태 교수의 특강을 들었다. 여러 번 들었지만 언제 들어도 가슴에 와닿는 내용이다.

 

흔히들 사주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 보면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져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설령 사주팔자가 좋아서 5욕락을 즐기면서 산다고 해도 긴장의 해소 정도이지 영원한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다. 5욕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도 전생의 공덕의 영향이 큼을 알 수 있다.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는 생활을 한다면 다음 생에는 부귀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욕계의 천신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리다 보면 수행에 게을러지고 복 지을 기회는 적어진다. 부귀영화만을 목표로 하는 삶이 중생의 삶이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종교들이 욕계천신정도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행의 전통이 있는 불교는 수행을 함으로써 선정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선정수행을 많이 하면 색계나 무색계의 천신으로 태어날 가능성 높다. 그러나 색계와 무색계도 선정만 즐기고 수행을 게을리 하고 새로운 공덕을 쌓지 않는다면 있는 복을 다 까먹기 쉽상이다. 선정수행을 해서 색계와 무색계 천신으로 태어나는 것도 목표는 아니다.  그래서 티벳스님들은 욕계나 무색계에 태어나는 것보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발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행하기 복짓고 수행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의 측면으로 본다면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발원 해야 한다. 도솔천은 욕계4천으로서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인간으로 내려오기전에 보살로서 수행 하였던 곳이고 지금도 미륵보살이 미래에 인간으로 내려 오기 위하여 수행중이라 한다. 

 

궁극적으로는 해탈에 이르려면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한다. 왜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하는가. 부처님의 깨달음도 위빠사나 수행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위빠사나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선정수행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마음을 집중하고(定, 삼마디) 고여함(止,사마타)에 들어가서 있는 그대로 보면(觀, 위빠사나) 지혜(반야)의 문이 열린다. 지혜의 문이 열려야 해탈(니르바나)에 이르게 된다. 반야의 지혜가 완성되면 자비의 실천이 뒤따르게 되어 자리이타 하는 삶과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실천적인 삶으로 귀결된다. 이것을 부처님은 45년 설법으로 보여 주었다. 따라서 중생들은 5욕락을 추구 하는 삶을 지양하고 보시와 지계는 물론 선정과 반야의 지혜를 닦아야 한다. 6바라밀은 부처가 되기 위한 실천적 행동 강령이다. 모든 부처님은 6바라밀이 된 사람 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한 과거 7불이 한결같이 설한 유명한 게송이 있다.

 

諸惡莫作 제악막작

衆善奉行 중선봉행

自靜基意 자정기의

是諸佛敎 시제불교

 

모든악은 절대 짓지 말고

많은 선을 받들어 실천하고

스스로 마음을 청정 하게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위의 짤막한 게송을 보면 모든  선행을 하고 악행을 짖지 말고 청정한 삶을 살아가라는 내용이다. 선행을 많이 하면 행복해지고 악행을 많이 하면 불행해진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말 함을 알 수 있다. 이것만 보아도 불교는 신이 없이도 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성립 가능한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불교의 위대성이라 볼 수 있다. 위의 게송과 같이 생활 한다면 주어진 운명도 얼마든지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200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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