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법당의 기단석에 이름를 새기는 행위는 탐욕의 징표

담마다사 이병욱 2007. 8. 11. 11:22

 

법당의 기단석에 이름를 새기는 행위는 탐욕의 징표

 

 

 

 

<전각의 기단석 전체가 시주자의 이름으로 도배 되어 있다. 강남의 모 전통사찰이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사찰이 800여곳이나 된다고 한다. 그 것도 대부분이 천년고찰이다. 아직도 북원되지 못한 폐사지가 수백군데가 넘는 다고 하니 새삼 우리나라가 과거에 불국토 이었음를 느낀다. 불교가 전래 된지 17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불국토 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사찰이 있었고 조상들 또한 불보살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 들이었다. 특히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의 경우는 민중들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도 불교를 적극 옹호 하고 장려하는 불교국가 이었다.

 

불교는 샤마니즘과 다신론, 유일신론과 같은 신관을 극복한 고등종교이다. 그 수준이 너무 높아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수행을 해서 체득해야 하는 수행의 종교이기도 하다. 민중들은 먹고 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수행을 할 여유가 없다. 따라서 신행위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라시대부터 관음신앙이 유행하고 미륵신앙이 유행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고 생각 된다. 대부분의 산사에서 불 수 있는 신신각이나 칠성각등도 전통적인 샤마니즘과 결합된 기복신앙의 잔재 일 것이다.

 

전통사찰을 순례 하면서 많은 사찰과 접하게 된다. 특히나 유명한 산이나 좋은 터에는 사찰이 있게 마련이다. 주변의 경치는 절경인 곳이 많고 도시와 떨어져 있어서 사찰을 찾는 과정 자체가 마음을 매우 청정 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사찰이 산중에 있는 이유는 아마도 수행하기에 좋기 때문이리라. 불교는 신행도 중요 하지만 수행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서 각 사찰마다 불사가 왕성하게 일어 나고 있다. 다시 한번 그 옛날의 불국토가 재현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불사에 적극 참여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기와불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좀더 큰 규모의 불사까지 크고 작은 불사가 계속 되고 있다. 불사에 참여 하는 사람들은 발원을 하게 되고 좀 더 큰 시주자는 그들의 공덕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 할 것이다. 따라서 불사가 회향 되면 공덕비를 세워 주어서 시주자들의 공덕을 돌에 새겨 오랬동안 보전 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공덕비에 이름을 새기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전각 기단석에 확실하게 이름을 새기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법당의 기단석에 새겨진 이름은 그 전각이 닳아 없어지기 전까지는 영원히 모든 사람들에게 노출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너무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처음 방문한 순례객들에게는 이런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공덕주에 대한 경외감보다 불쾌감을 느끼게 쉽상이다. 마치 전각에 낙서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때가 많이 있다. 이들 공덕주는 불사를 하는 공덕은 지었을지 몰라도 그들의 탐욕의 징표는 그대로 돌에 남겨 두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공덕주들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다라는 천박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금강경에서도 진정한 보시는 주었다는 생각 없이 보시하는 것이 최상의 공덕을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티 내고 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공덕주들은 자자손손 대대로 그들의 보시를 알리고 싶어서 또는 그 전각을 찾는 이에게 알아 달라고 하는 듯하게 그들의 이름석자를 확실하게 새겨 놓은 것이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는다. 그 중에는 근기가 수승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불보살의 가피를 입기 바라는 소박한 발원자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내는 시주금이 천원짜리 몇장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불보살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순수 하다. 커다랗고 위용있는 가람을 보면 절로 신심이 나고 자랑스러워 지기도 한다. 그 훌륭한 가람이 완성 되기 까지 원력을 세운 창건주와 시주자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시주자에 대한 공덕을 기리기 위한 표시 방법도 좀더 세련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전각 기단석에 이름을 새기는 행위는 지양 하였으면 한다. 그 기단석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서 공덕은 저렇게 쌓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반면교사를 보는 것 같다. 즉 이와 같은 행위를 따르거나 되풀이 해서는 안 되는 나쁜 본보기 인 것이다.

 

 

2007-08-11

진흙속의연꽃

 

 

 

<강남에 있는 모 전통사찰의 전각에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시주자의 보시에 대하여 송덕 하는 내용이다>

 

 

 

 

 <사방에 걸쳐서 화주와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기단석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시주자의 이름들이다>

 

 

 

 

<북한산의 모사찰의 시주자 이름이 기록된 공덕비.  사찰에서 한참 떨어진 후미진 곳에 위치 해 있다.

전각의 기단석에 새겨진 이름과 대조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