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제3의 화살은 맞지 않는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7. 8. 15. 09:50

 

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제3의 화살은 맞지 않는다

 

 

 

 

1화살은 맞을 지언정 제2 3의 화살은 맞지 말라 이 말은 진태 교수의 강의를 통하여 처음 들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었다고 한다.

 

옛날에 어느 절에서 덕 높으신 큰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늘 말씀하시기를 고통은 본래부터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큰스님이 큰 병에 걸려서 않아 눕게 되었다. 늘 고통은 본래부터 없다고 말씀 하신 큰 스님이 않는 소리를 하며 괴로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시중드는 사미승이 혼자 말 하기를 도력이 높은 스님도 아프면 별 수 없구나. 저렇게 끙끙 않는 것을 보니 큰스님이 말씀하신 고통이 원래 없다는 말이 거짓임에 틀림없어! 하며 중얼 거리는 것을 큰 스님이 들었다. 큰 스님이 사미승을 불러 놓고 말하기를 내가 아야 아야 하는 것은 고수(苦受) 이니라 라고 말씀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말한다. 즐거운 일보다 힘들고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 더 많음을 일컫는 말이다. 고통의 바다에서 즐거움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 할 수 있다. 고통도 두가지 종류가 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다. 이런 고통을 받아 들이는 상태를 다른 말로 표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것을 고수(苦受)라고 말한다.

둘째로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것을 우수(憂受)라고 말한다.

 

아까 말한 큰스님이 병에 걸려 느꼈던 고통은 육체적 고통으로서 고수이다. 그렇지만 정신적 고통인 우수는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한 육체적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을 제1의 화살을 맞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은 수행의 결과에 따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래부터 고통은 없기 때문이다. 즉 마음에서 만들어 낸 실체가 없는 허상 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고통 즉 우수를 느낀다면 제2의 화살을 맞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제2화살도 부족해서 제3 4의 화살을 맞는다. 근심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새로운 우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깨달은 중생과 깨닫지 못한 중생의 차이는 바로 제2의 화살을 맞는냐 맞지 않느냐의 차이 이다. 결국 사물과 대상에 대하여 집착하느냐 집착하지 않느냐의 차이라고도 말 할 수 있겠다. 대상에 대하여 집작 함으로서 연이어 새로이 생멸하는 무수한 생각들 즉 번뇌를 놓아야만 새로운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다.

 

 

2007-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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