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발달 하면 할수록 각광받는 불교의 교리(敎理)
다원주의, 신과학운동, 뉴에이지의 열풍속에
서구문화에 대한 100년만의 역전 현상 발생
사람이 사는 목적이 오욕락에 있다고 흔히들 말하고 있다. 즉 식욕, 성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을 추구 하는 것이 본질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나타났던 모든 종교들도 한꺼풀 벗겨보면 이와 같은 오욕락의 추구에 목표를 두고 있음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상하고 영적인 것처럼 포장 되어 있지만 알고 보면 근저에는 샤머니즘과 같은 미신이 굳건히 또아리를 틀고 있고 오로지 부귀와 영화를 바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욕락의 추구는 바로 부귀와 영화의 또 다른 말이라 볼 수 있다. 재물욕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필요하고 명예욕은 고관대작과 같은 관직을 얻어야 가능 한 것이다. 부귀와 영화를 이루고 나면 자연히 식욕과 성욕과 수면욕에서 해방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노동의 강도가 훨씬 더 심하고 계층이동이 불가능 하였기 때문에 오욕락의 추구가 최고의 가치 이었을 것이다.
정보통신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옛날 사람들과 달리 어느 정도 오욕락중의 일부라도 해소 됨에 따라 정보에 대한 욕구가 강해 졌다. 하루라도 TV를 보지 않고 라디오를 듣지 않고 살 수 없다. 또 아침에 신문을 확인 해 보아야 하고 인터넷을 접속 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단 하루라도 신문과 방송 인터넷이 없는 생활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중에 인터넷의 등장은 정보욕구를 만족 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돌아 보기 마련이다. 왜 사는가부터 시작해서 왜 존재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하게 된다. 삶과 존재에 대하여 고민 하다 보면 죽음과 내세에 대하여도 생각 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런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 보지만 무엇 하나 속 시원한 답은 없다. 그래서 종교에 귀의 하여 고민을 해보지만 믿음만 강조 할 뿐이다. 자신의 종교가 최고이고 오로지 자신의 종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도그마에 빠진 교리로는 양이 차지 않는 것이다.
개화기에 기독교가 들어 오면서 선교를 위하여 기존의 전통과 종교는 모두 불합리한 미신이나 우상숭배로 간주 하였다. 학교을 세워서 개화 시키고 병원을 만들어 기적을 보임으로서 그들의 종교가 문명의 종교이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고 말하고 다녔다. 과거 100년간에 걸쳐서 이와 같은 선교활동은 위력을 발휘 하여 상당히 먹혀 들어 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에 들어와서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 하엿다.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되는 가상 공간에서 터부는 없어 졌다. 원하는 정보는 무한대로 얻을 수 있고 의심되는 사항은 바로 확인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 이다. 기독교외에도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도 검색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우상숭배라고 믿었던 불교가 알고 보면 철저한 우상타파종교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도 불교에서는 원수라고 하는 그 자체도 지워 버리리라고 말함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오죽 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 사람이 죽으면 이왕이면 불교지옥에 보내 달라고. 알다시피 기독교의 지옥은 한번 빠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반면에 불교지옥은 업이 다 소멸 되면 빠져 나올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지장보살 같은 경우는 모든 지옥중생이 성불 할 때 까지 자신은 성불 하지 않겠다고 서원 하지 않았던가. 믿지 않는 사람 그리고 미운사람은 모조리 지옥에 잡아 넣고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는 종교와 지옥중생을 모두 구제 하겠다고 하는 종교의 차이점도 인터넷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인터넷의 확산과 접속을 매우 염려 하는 모양이다. 보아서는 안될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의례히 당연시 되었던 교리가 파헤쳐 지기도 하고 모순과 위선 그리고 거짓을 지적 하기도 한다. 또 반기독교 열풍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보면 기술이 진보되어 과학이 발달되면 될수록 위축되고 있는 종교가 기독교가 아닐까 생각 한다. 19세기에 우리나라에 전래 되었던 당시의 ‘문명의 종교’ 이미지와는 영 맞지 않는 모습이다. 반면에 불교는 과학이 발달 되면 될수록 각광을 받고 있다. 잘 못 알려진 우상숭배의 종교가 아니라 매우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교리를 가진 고등종교로 재인식 되고 있는 것도 과학의 산물인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 인터넷이야말로 불교를 알릴 수 있는 최고의 포교 수단이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불과 100년만에 일어난 상황이다.
기독교가 이땅에 들어온지 100년전에는 학교와 병원을 세워서 문명의 종교로 인식 되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항을 버리지 못하고 막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만일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상식적인 사항을 인정 해 버리면 그야말로 설 땅이 없어진다는 위기감의 발로 일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동양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뉴에이지문화와 신과학운동도 수용하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단지 접촉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인터넷도 자제 하라고 까지 말한다. 과학이 발달한 정보통신시대에 너무나 많은 금기 사항이 많은 것이다. 바로 교리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보지도 말고 들지도 못하게 함으로서 거센 정보화시대를 언제 까지 버텨 나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우리나라가 개화된지 100년만에 동서양의 문화의 역전 현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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