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미래에는 어떤 종교가 살아 남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7. 9. 11. 13:42

 

미래에는 어떤 종교가 살아 남을까

 

 

다종교,다문화,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인본주의 종교가 각광을 받을것

 

 

 

()중심 종교와 인간중심의 종교

 

세계 3대 종교를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라고 한다. 현재 신자로 따졌을 때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순이다. 이들 종교를 보통 고등 종교라고 부른다. 지구상에 수많은 종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 하며 사람들의 정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종교는 이들 3종교가 가장 영향력이 있다. 그런데 이들 3종교 중에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유일신교이다.  그것도 뿌리가 같은 종교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형제종교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끊임없이 싸우고 상대방을 인정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유일신교가 가지고 있는 한계인 것이다. 오로지 자신들 만의 신이 구원을 할 수 있다는 구원독점주의를 유지 하는 한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어떤 종교학자는 말하기를 종교도 진화 한다고 한다. 원시시대는 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다는 다신교라는 것이다. 다신교야 말로 모든 종교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무당이 있는 무교의 형태라 보면 된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무속 즉 샤마니즘은 보편적 형태로 존재 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 된 종교가 유일신교라는 것이다. 원시부족국가에서 강력한 통일국가로 진행 됨에 따라 종교도 승자의 종교가 우위를 차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승자의 신이 바로 유일신이 되는 것이다. 유일신 다음 단계가 바로 무신론이다. 즉 신에 의지 함이 없이 인간이 중심이 되는 종교라는 것이다. 불교가 바로 이 단계라 볼 수 있다.

 

역사는 발전 한다고 한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를 거쳐 민주사회로 발전 하여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도 역사의 발전과 함께 발전하고 오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발전의 획기적인 사건이 바로 유신론에서 무신론 즉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전환 일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혁명 보다 도 가장 극적인 변환이라 볼 수 있다. 바로 신에게서 인간을 해방한 종교가 바로 불교인 것이다. 신에게서 해방 되었으므로 모든 의문점에 대하여 사유 하게 되었다. 왜 사는가 왜 존재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함으로서 수 많은 이론과 철학과 수행이 발달 할 수 있었다. 만일 신에게만 얽매여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신에 맡겨 버리고 의지 하여 버리기 때문이다.

 

신본주의 시대가 가장 불행 하였던 시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신중심의 사회가 가장 불행하고 암흑기 이었다. 중세가 바로 그런 케이스 이었다. 반면에 신중심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으로 이동 하였을 때 문화가 꽃피우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시기 이었다. 바로 유럽에 있어서 르네상스시기인 것이다. 신중심과 인간중심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자유의지의 차이라 볼 수 있다. 주종관계가 명확한 신본주의는 사람은 단지 종의 입장에서 생활 해야 한다. 자유롭게 생각 하거나 행동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오로지 주인이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인본주의는 철저 하게 주인의 입장이다. 모든 것을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된다. 불교에서 연기론도 바로 주인된 입장에서 해야 될 행동규범이라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이 굳이 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도덕적으로 잘 유지 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지식정보화사화라고 한다. 과거 수천년간에 축적 되었던 인류의 지식이 불과 20-30년 동안에 그만큼 축적 되었다. 미래에는 점차 가속화 되어서 7년으로 단축되고 향후 20-30년 후에는 7-8일 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한다. 가히 지식의 폭발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늘어나는 지식에 비교하여 지혜는 그만치 따라가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지식과 지혜는 엄연히 다른 말임을 말할 나위가 없다. 바로 그 지혜를 추구 하는 종교가 불교인 것이다. 불교의 가장 핵심경전인 반야심경도 바로 깨달음 즉 지혜로 가는 길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깨달아서 지혜를 얻게 되면 동시에 자비도 생긴다는 것이다. 즉 일체가 공함을 알게 되면 우주 삼라만상이 한몸이고 한마음인 것이다. 따라서 일체가 한몸이라면 자비의 마음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조건 없는 보편적인 사랑인 것이다.

 

현대의 다원화 사회에 적합한 종교

 

현대사회를 다원화 사회라고 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이 오직 내가 가는 길만이 있는 것이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오직 한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 길이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더구나 그 산이라는 것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종교다원주의이다. 마찬가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 어느 특정 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타종교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 하는 것이 또한 종교 다원주의이다. 그런데 오지 내종교만이 진리이고 구원에 이르를 수 있다고 주장 한다면 인류의 보편적인 종교라고 주장하기 힘들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전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진리와 구원독점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교는 진리는 오직 하나이고 구원도 오직 하나라는 사상을 배격한다. 신에 의지 하여 구원을 받는 종교가 아니라 철저하게 깨달아서 일체가 공함을 알고 일체가 똑 같은 몸과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진리도 하나이고 구원도 하나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 타당한 종교는 불교라 볼 수 있다.

 

기독교가 아프간 사태로 인하여 위기감을 맞이 하고 있다고 한다. 성장은 정체되고 국민들 반감은 날로 커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교리에 있다고 생각 한다. 배타적인 구원독점주의를 포기 하지 않는한 점점 더 세상과 담을 쌓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구원독점주의를 포기하고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고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인정 하게 된다면 이 또한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이래 저래 어떻게 할 수 없는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실상인 것이다. 반면에 불교는 모두 에게 열려 있다. 신에 의지 하지 않고 인간이 깨달은 법에 의지 하므로 누구나 부담 이 접근 할 수 있다. 즉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것이다. 이런 점이 미래에 있어서도 불교가 가장 강력한 대안의 종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0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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