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는 제로베이스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만든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7. 9. 30. 09:35

 

불교는 제로베이스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유일신교의 교리에 대하여 시비를 걸지만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시비 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세상에 똑 같은 사람은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똑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일란성 쌍둥이라도 자세히 보면 얼굴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자기세포를 떼어내어 복제인간을 만들었다면 똑같을까 아직까지 인류역사 이래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 얼굴 서로 다르듯이 개성 또한 서로 다르다. 즉 나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인류역사상 단 한 사람도 존재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서 이야기한 자신과 똑 같은 복제인간일지라도 생각만큼은 똑같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왜냐 하면 나와 생각이 똑 같은 사람이 존재 한다면 나라고 부를 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나만이 존재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는 내가 있다라는 사실을 부정 한다. 즉 나라는 존재는 없다고 한다. 바로 무아를 주장 하는 것이다. 분명히 나라는 존재가 바로 여기 있음에도 내가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싱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다. 사실여기까지가 보통사람의 한계일 것이다.

 

충격으로 다가온 반야심경

 

불교경전에 반야심경이 있다. 260여자의 매우 짤막한 문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기에는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담겨있다. 그 뿐 만이 아니다. 인류가 이제까지 고민해 왔던 모든 해법이 다 거기에 있다. 더구나 방법까지 제시 한다. 이 짧은 경전 안에 인류가 고민해 왔던 해결방법이 다 있다면 믿기나 할까.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는 이세계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하여 놓았다. 욕계,색계,무색계이다. 욕계도 6단계가 있고 그 중에 천상의 세계도 또 6종류의 천상세계가 있다. 가장 수승한 무색계 즉 물질은 없고 오로지 정신작용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인 비상비비상처라는 천상도 있다. 이렇게 여러 단계로 구분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그 정신세계의 가장 높은 단계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단계일 것이다.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단계를 표현한 글이 바로 반야심경이 아닐까.

 

반야심경을 접하고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내용보다도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다. 현대인은 잘 교육을 받고 여러가지 지식을 접하고 또한 TV나 라디오, 신문에서 또 책을 통하여 옛날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100년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대부분은 문맹이었다. 글을 모르니 아는 것도 적었을 것이고 생각도 단순했을 것이다. 더구나 2000년전에 사는 사람들은 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반야심경을 읽어 보면 무지 하게 만 생각 되던 옛날 사람들이 �다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반 상식을 뛰어 넘는 도저히 생각 할 수 도 없었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애송 되는지 모르겠다. 그 반야심경의 진수를 이제는 인터넷에서 쉽게 마주치고 있으니 불교로 보았을 때는 날개를 단 것이고 유일신교의 입자에서 보았을때는 큰 위기라 느낄 것이다.

 

반야심경은 기존 사상을 무장 해제 시키고 허물어 버린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은연중에 옛것은 낡고 폐기해야할 시대에 뒤떨어진것으로 생각한다. 유교니 불교니 모두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 하고 거의 처다보지도 않고 살아 왔었던 것이 실상이었다. 특히 근세에 들어 서구의 문화와 종교가 들어 오면서 서구의 것은 새것으로서 문명적이고 우리 것은 낡은 것으로서 미신적인 시각이 이제 까지 지배해온 사고 방식이었다. 따라서 서구문화를 동경하고 서구로 유학가는가 하면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갖는 것이 마치 시대를 앞서 사는 사람인양 취급되는 시대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의 문화와 종교가 최고라고 여기는 풍조에서 반야심경을 접한다면 일시에 무너져 내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낡고 옛것이라서쳐다 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 하였던 동양문화의 진수를 맛보기 때문이다. 사실 반야심경을 접하게 되면 서구의 문화와 종교가 시시해짐을 느낀다. 마치 유치원들에게 말하는 동화정도의 수준이랄까 매우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강조 하는지 모르겠다. 반면에 반야심경을 경험 하고 나면 시야가 탁 트이고 이제까지 고민 하였던 사항이 일시에 해결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불만 투성이이다. 부귀와 영화를 누리면 행복해져야 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고통이 대기 하고 있을 뿐이다. 소위 5욕락을 누리면 누릴수록 점점 더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반야심경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이다. 이제 까지 진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사실이 진리가 아니라고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즉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 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 불교국가에서 수천년간 조석으로 독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반인이나 타종교인이 반야심경을 한번 읽어 본다면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임을 확신한다. 바로 이런 점이 불교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유일신교의 교리에 대하여 시비는 걸고 있지만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시비거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교리 하나 만큼은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정보화사회가 될수록 사람들이 깨이면 깨일수록 불교와 가까워지게 되어 있다.

 

인터넷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종교가 불교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다. 원하는 정보는 키워드만 입력 하면 무한정 얻을 수 있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 같다. 즉 이제까지 인류가 축적 해 놓은 모든 정보가 창고에 쌓여 있듯이 단지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인터넷이 판도라의 상자와 같이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볼 수도 있는 역기능도 있지만 활용 하기에 따라 좋은 연장이 되기도 하지만 흉기가 되기도 함은 부인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다종교사회이다. 10년전부터 인터넷이 활성화 된 이래 종교마다 극명하게 엇갈린다.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은 종교가 유일신교 일 것이다. 익명성을 전제로 한 사용자의 특성상 공개적으로 비판 하는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교리와 성직자 추문이 낱낱이 들추어지고 이를 비판 하는 안티운동이 발생 한 곳도 인터넷이다. 아무래도 영향력 있는 주류에 대한 반감도 많이 작용 했으리라 생각 한다. 과거에는 모르고 지나갔던 일도 인터넷에 다 걸러 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터넷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종교가 불교라 생각 한다. 신문과 방송등 모든 분야에서 열세인 상황에서 인터넷은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 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많이 알면 알수록 비판적으로 변하게 끔 되어 있다. 인터넷은 이런 사람들에게 지식과 정보욕구를 채워주는 장이다. 따라서 교리로 보자면 보통사람의 의식 수준을 훨씬 능가 하는 불교는 매우 흥미롭고 구미가 당기는 종교임에 틀림없다. 이제까지 유치원 수준의 교리만 접하다 수준 높은 교리에 접하니 읽는 맛이 나고 더욱더 흥미를 당기는 것이다. 반야심경과 같은 전혀 뜻밖의 글을 접하면 충격을 받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기대를 갈망 하게 하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불교의 전망은 밝다.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화 되는 시대에 과학이 발달 되면 될수록 열린 사회가 될수록 불교의 교리는 각광을 받게끔 되어 있다. 왜냐하면 불교 교리 자체가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좁고 편협하고 배타적인 신중심에서 보다 넓고 포용적인 인간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을 잘 갖춘 종교가 미래를 주도 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바로 미래를 주도 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종교가 불교인 것이다.

 

 

2007-09-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