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수행(修行)이 아니라 수습(修習)이라고 불러야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0. 5. 10:32

 

수행(修行)이 아니라 수습(修習)이라고 불러야

 

 

무명행식의 습관으로 시작된 12연기는 윤회의 길이자 고통의 길

이를 극복 하려면 수행을 통해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야

 

 

 

12연기의 출발지인 무명(無明)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12연기중에 무명이 있다. 무명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 보았다.

 

무명(無明)은 범어 avidya, 파리어 avijja.이며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다. 실지견(實知見)과 다르다는 뜻. 사물에 대해 아주 어둡고 깜깜하여, 진리를 꿰뚫어 보지 못하며, 사물과 일, 혹은 도리에서 이해하는 것이 명백하지 못한 정신 상태이다. 또한 통달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완성하지 못하여, 어리석음 그 자체의 모양이다. 보통은 무지(無智), 우매(愚昧)함을 가리키나, 특별하게는 불교 도리(佛敎道理)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속(世俗)의 인식(認識)을 가리킨다.

 

무명은 번뇌이고 어리석음 그 자체라 한다. 12연기의 시발점이 바로 무명에서 시작 된다. 그렇다면 무명의 시발점은 어디에 있을까. 사전을 보면 무명을 ‘과거세의 번뇌위에 자리한 오온으로 본다’는 것이다. 결국 현세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에서부터 시작 되었음을 표현 한 것 이다.

 

12연기를 3자로 줄이면 혹업고(惑業苦)

 

석지명(釋智明)스님은 무명으로부터 시작 되는 12연기를 윤회로 가는 길이라고 말햇다. 그리고 3단어로 줄여서 혹업고(惑業苦)라고 하였다. 미혹의 상태에서 업이 쌓여서 결국은 고통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2연기는 윤회로 가는 길이며 동시에 고통으로 가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지광(智光)스님은 ‘무명이 대죄(大罪)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모르고 지은 죄가 알면서 지은죄 보다 더 크다고 하였다. 알면서 지은 죄는 큰 죄를 짓는 다기 보다 작은 죄로 귀결되지만 몰라서 지은 죄는 모르기 때문에 큰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형수들이 지은 죄를 보면 다들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몰라서 무지 하기 때문에 발생 한 것이다. 만일 알았다면 그렇게 큰 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그래서 무명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으례히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먹고 술도 한잔씩 하게 된다. 부담 없이 모인 자리이기에 과음을 하게 되고 허세도 부리게 된다. 그리고 2차로 이어지는 것은 일상적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신도5계중에 불음주계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잘 지켜 지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음주는 피하기 어렵다. 다만 계을 의식 하면서 마시는 것과 의식 하지 않고 마시는 차이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음에 틀림없다.

 

술마시고 저지르는 실수는 습관에 기인한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라는 것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대담해지고 용기가 생겨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2 3차 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로 바라보는 네온싸인 불빛과 술이 깬 후에 보는 주변환경은 천상과 지옥 차이 만큼이나 크다. 술이 깬 후에 보는 술집과 술집주변환경은 욕망의 배출구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혐오스럽다. 단지 술이 들어감으로 해서 이성이 마비되고 혼미한 상태에서 저지르는 파계는 후회막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값 비싼 대가를 치루고 또 다시 정화작용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도 역시 무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단지 얼마나 알고 행동 하는냐 모르고 행동 하는냐의 차이 일 것이다.

 

술마시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저지르는 실수들과 그에 따르는 결과가 12연기의 무명행식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 한다. 술을 마시고 싶다는 것은 언젠가 마셔 본 경험이 있어서 끌린 것이고 그것이 습관화 된 것이다. 무명 행 식이 차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 발생적임을 알 수 있다. 거의 동시적 사건인 ①무명 ②행 ③식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12연기의 순서와 같이 ④명색 ⑤육입 ⑥촉 ⑦수 ⑧애 ⑨취 ⑩유 ⑪생 ⑫노사로 이어 진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무명행식을 극복 하면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진태 교수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 한다. 단순이 머리로서만 이해 해서는 될 일이 아니고 스스로 체득 하여만 벗어 날 수 있다고 말한다.

 

수행은 나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

 

흔히들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고 한다. 단순히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OK인 유일신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12연기도 습관에 의해서 발생된 사건이라 본다면 이런 습관에 의하여 굴러 가는 시스템을 바꾸려면 역시 습관으로 바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 하다고 한다. 김진태교수는 수행을 수습(修習)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수행은 다름 아닌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12연기의 원인이 되는 가장 중요한 무명행식도 다름아닌 나쁜 습관에 기인한다. 나쁜습관의 결과로 인하여 ⑤육입 ⑥촉 ⑦수 ⑧애 ⑨취 ⑩유 ⑪생 ⑫노사로 이어지는 윤회를 반복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무명행식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지 않기 위해서는 나쁜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 다름아닌 수행이다. 그 수행 방법도 매우 다양하지만 각자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아 습관화 한다면 윤회의 고리를 끊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절수행을 통해서, 염불을 함으로서, 참선을 함으로서 끊어 버린다면 다시는 윤회계를 방황하지 않겠는가. 술 마시고 손쉽게 파계 해 버리면서 얻게 되는 값비싼 대가는 결국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싶다. 좋은 습관은 수행 즉 수습(修習)으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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