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외롭지만 차라리 홀로 가거라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0. 25. 11:16

 

외롭지만 차라리 홀로 가거라

 

 

어리석은 자는 결코 그대의 여행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친근한 경전 법구경숫타니파타

 

도올 용옥인도를 말하다동영상 강의가 있다. 어느 사이트에서 다운 받아 블로그에 올렸는데 조회수가 많은 것을 보니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그 강의 중에 아함의 재발견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아함경은 남방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물론 한역도 있지만 놀라운 것은 2300년전의 ‘3차 결집때의 상좌부불교의 내용이 고스란히 보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대승으로 발전 되고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선불교와 같은 중국불교를 우리는 이제 까지 공부 해왔다. 그래서 불교 하면 한자로 된 어려운 것 이라고 인식 해 왔고 또한 읽어 보면 난해 하기 그지 없다. 아마 이런 점이 불교의 대중화의 장애 요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팔리어로 된 상좌부 불교는 원시불교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승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로 북방한역경전에 없는 숫타니파타와 같은 경전을 읽어 보면 매우 서정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팔리어3장의 발견이 불교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까지 말한다. 그 팔리어3장에 나오는 경전 중에 우리와 정서적으로 친근한 경전이 바로 법구경과 숫타니파타이다.

 

법구경과 숫타니파타의 내용은 붓다가 수행자로서의 행적에 대한 소박한 기록이다. 대승에서와 같이 과장되고 신화적인 기록이 아닌 혼자 떠 돌아 다니는 수행자의 진솔한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남방의 스님들은 법구경과 숫타니파타를 우리나라에서 금강경 공부 하듯이 줄줄 왼다고 하지 않던가.

 

부부간의 상구보리 하화중생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말이 있다.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 한다 라는 내용이다. 재미 있는 것은 김성철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부부간에도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있다는 것이다. 부부간에 사이가 좋지 않다면 상구보리 해야 하고 사이가 좋다면 하화중생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러모로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부부간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힘들고 괴롭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생각 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공부도 하고 종교에 귀의하여 참회도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자체가 상구보리라고 보고 싶다. 반면에 부부간에 잘 화합하고 추구 하는 바가 같다면 이웃을 위하여 좀더 신경 쓸 기회는 많을 것이다. 비록 소박하기는 하지만 이것 또한 하화중생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용옥교수는 동영상 강의에서 말한다. 서로 매일 다투는 부부에게 이제는 서로 잘 살아 보라고 말하기도 지�다고 하면서 차라리 그럴 바엔 떨어져 사는게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법구경에 나오는 게송을 인용한다.

 

이 삶의 기나긴 여행길에서 나보다 나은 이나 나와 동등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외롭지만 차라리 홀로 가거라.

저 어리석은 자는 결코 그대의 여행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법구경61)

 

즉 외롭지만 홀로 가라는 이야기이다. 이 법구경의 내용은 여로 모로 많이 인용되는 구절인 모양이다. 홀로 사는 이에게는 어떤 정당성을 주기도 하고 부부간에 서로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타당한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구절은 수행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표현은 다음의 숫타니파타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
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46)

 

동반자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혼자 다니지만 현명하고 지혜있는 동반자가 아니라면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경전의 문구를 악용 하여 독신주의를 주장 하거나 별거나 이혼의 사유로 활용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본다.

 

 

마치 코뿔소가 한쪽 방향으로 묵묵히 가듯이

 

원시불교경전에서 보는 수행자는 혼자 돌아 다닌다.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혼자 돌아 다니는 이유는 자기보다 나은이나 동등한 이를 만나지 못했거나 지혜롭고 현명한 이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리석은 이하고 같이 있는 경우는 괴로움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더 낫다는 표현이다. 마치 코뿔소가 무리 지어 다니지 않고 그 거대한 몸을 가지고 오직 외길을 향해 한쪽 방향으로 묵묵히 가듯이 말이다. 

 

남방불교의 경전에서 보는 아름다운 수행자의 장면은 상구보리의 전형적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하화중생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 보다 어리석고 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상대 하지 않고 내버려 둔채로 자신만 해탈 열반 하여 고통을 벗어 난다면 너무 이기적일 것이다. 그래서 대승에서는 상구보리 하면 반드시 그 수행의 결과를 하화중생하는 전통이 있다.

 

블로그활동도 일종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아닐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처님 법을 목말라 하는 곳이 많이 있다. 도시 같은 경우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곳이 드물다. 더구나 산이 없고 평지에 건설된 도시나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가 더 심하다. 불교가 수행의 종교이기 때문에 사찰이 산중에 있어서 마음먹고 가기 전에는 접근 하기가 불편 하다. 그래서 상구보리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장소가 없다. 이런 현실에서 TV와 라디오 방송이 있고 인터넷이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즉 재가신도는 상구보리 하고 방송매체는 하화중생 하는 것이다.

 

불교TV의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수 많은 케이블TV 방송국이 있지만 5부터 시작 되는 새벽시간의 시청률1위가 불교TV라고 한다. 그만치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대에 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 불교방송의 마음으로 듣는음악같은 경우도 하화중생의 대표적인 하화중생 하는 케이스이다. 더구나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구애 받지 않는다. 언제 까지나 도심에 사찰이 없다고 스님이나 종단 탓을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정보통신시대에 매체를 잘만 활용 하면 얼마든지 상구보리할 수 있고  하화중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 활동도 일종의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범주 안에 들어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 해 본다.

 

 

2007-10-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