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금강경의 ‘긍정 부정 긍정’ 논법을 사회에 적용 한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1. 1. 10:00

 

금강경의 긍정 부정 긍정논법을 사회에 적용 한다면

 

 

집착하면 집착 할 수록 일은 꼬이고 되지 않는다

 

 

 

 

전철을 타다 보면 성경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전철을 타다 보면 성경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표지가 가죽으로 되어 있고 금칠한 흔적이 있는 성경책은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고 매우 또한 매우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듯 하다. 성경에 적혀 있는 내용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대로 기록된 책이라 하여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크리스찬이 대부분이라 한다. 그래서 크리스찬이 쓴 글을 보면 성경 인용문구가 적지 않게 나타나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치 헌법의 조항을 연상 시키기도 한다.

 

거기에 비하면 불경은 딱히 꼬집어 대표로 내세울 수 있는 경전을 무어라고 정의 하기 어렵다. 84천자에 이르는 방대한 경전이기 때문에 작은 소형트럭 한대분정도 되는 분랑이라 하니 이것을 다 읽거나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대표경전을 들라면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 귀에 익숙한 경전 정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런 방대한 경전을 방편으로 보는 것이다. 즉 경전에 매달려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뗏목의 비유가 있지 않은가. 공부를 해서 지혜를 얻었으면 되었지 고맙다고 지고 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신에 의지 하여 구원과 영생을 추구 하는 종교와 깨달음과 지혜를 추구 하는 종교의 차이가 바로 이런 점에서 극명하게 대비 되는 것이다.

 

금강경이라는 경전을 들어 보지도 못했고 있는 줄도 몰랐다

 

불경중에 금강경이 있다. 몇년전 까지만 해도 금강경아라는 경전을 들어 보지도 못했고 있는 줄도 몰랐다. 우연한 기회의 도올 용옥의 금강경강해 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금강경과 접하게 되었다. 불자나 불교학자가 쓴 책이 아닌 딴 분야의 철학자가 쓴 책을 통하여 금강경이 대중화 되었다고 생각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후에 불교교양대학을 다니면서 금강경공부를 하였고 신심이 나서 사경도 여러번 했을 뿐만 아니라 5,249자나 되는 경전을 통째로 암기 하는 욕심까지 부리기도 하였다.

 

금강경공부를 하면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 바로 ‘A A가 아니라 그 이름이 A이다라는 문구 이었다. 이런 문구는 금강경 전편에 걸쳐서 수없이 나온다. 이에 대한 해설서도 다양 하지만 크게 와 닿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석지명 스님이 쓴 허공의 몸을 찾아서라는 책을 보고 어렴풋이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금강경은 어떤대상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莊嚴佛土者卽非莊嚴 是名莊嚴)이 있다. 불국토를 만들겠는 상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진정한 불국토를 만들 수 없다는것이다. 이미 아상(我相)을 가진 상태에서 어떤 이미지가 이미 형성 되어 있어서 현실을 벗어나 이상세계로 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지움이나 비움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공함을  체득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즉비장엄 이라 하면서 부정 하게 된다. 이것은 현실에서 공의 세계로 들어 가는 것을 말한다. 마치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임시 방편으로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라고 말한다. 부정에서 다시 긍정으로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긍정을 처음의 긍정과는 다른 긍정인 것이다. 반야심경에서의 공즉시색과 같이 공에서 현실로 나오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긍정 부정 긍정의 또는 색에서 공으로 다시 색으로 이루어진 어법은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基心)도 동일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금강경전반에 걸쳐서 수없이 반복되는 긍정 부정 긍정 논법은 결국 어떤대상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을 지운 상태에서 행하라고 하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아주 쉬운 예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가 있다. 주었다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주어라티 내지 말고 주어라라는 말로 이해하면 매우 쉬움을 알 수 있다. 이런 논법을 사회생활에서도 적용 하여 본다면 두려움이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영업하는 사람이 가가호호 방문판매 할때 물건을 반드시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상을 가진 다면 이것 저것 생각 하면서 따지고 할 것이다. 그러다 문전박대를 당하면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아서 쉽게 포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겠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품소개를 목적으로 한다면 두려움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는데 있어서 출세를 목적으로 하거나 돈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한다면 이미 그 상에 집착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착하면 할 수록 일은 꼬이고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마치 애인을 만들기 위해 쫓아 가면 갈 수록 상대방은 더 멀리 도망 가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비운 상태에서 대상을 의식하지 않고 일을 한다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2007-11-0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