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 바다와 하늘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량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1. 6. 09:52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 바다와 하늘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량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함께 훌륭한 주지스님의 법문이 있는 곳

 

 


 

 

금년도 마지막 순례법회를 가게 되었다. 먼저 갔다 온 기수가 추천해서 가게 된 곳은 강릉에 있는 등명낙가사이다. 주지스님의 법문이 워낙 좋다고 추천해서 가게 된 것이다. 주지 스님의 선약이 있었지만 간청해서 법문을 듣을 수 있었다. 오전10에 시작 되는 사시 예불에 맞추어 정확히 3시간 걸려 도착 하였다.

 

주지스님 이름은 청우(淸宇) 스님이다. 70년대 말부터 등명낙가사에서 있었다 하니 이십칠팔년 되는 모양이다. 듣던 대로 한 30분 들은 것 같은데 1시간반이 시간가는줄 모르게 지나 가 버렸다. 솔직하고 박학다식 할뿐만 아니라 유머도 곁들여서 가슴에 쏙쏙 와 닿는 명 법문이었다.

 

우리사찰 우리신도가 있을 수 없다

 

스님은 먼저 말하기를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등명낙가사 신도라 생각 하고 법문을 들으라고 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사찰은 대문이 없다고 한다. 물론 담도 없다.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절 네절 하는 구분이 필요 없는 것이다. 기독교나 천주교 같이 내교회 네교회 따지는 것이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찰은 전부 내 절이 될 수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불자는 모두 내 신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자들은 순례법회를 다니는 것이 커다란 재미 중의 하나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전통사찰을 찾아 다니며 기도도 하고 법우 들간에 우정도 다진다. 어떤 사찰에 가도 불자라면 자유로이 들어 가서 참배 하고 기도도 한다. 알고 보면 내 절 네 절 구분이 없이 자유로이 드나들며 신행생활 하는 것은 불교의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스님은 어느 절 소속이라 말하면서 단체행동 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 다고 말한다.

 

속세는 개미집과 같고 구데기가 사는 곳과 같다

 

산위에서 속세를 내려다 보니 사는 집이 개미집과 같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구데기와 같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같이 걸림 없이 사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것이다. 이 말은 서산대사가 말했다고 한다. 등명낙가사에 올라와 바다를 바라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난다.

 

등명낙가사는 정희대통령이 살아 있을때 호국사찰로 만들기 위하여 불사가 추진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영산전에 있는 500성중 불상은 그 때 당시 호국을 염원 하는 사람들의 보시에 의하여 조성 되었는데 모두 청자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예불을 드릴때 500성중에서 나오는 빛이 장관이라 한다. 박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대찰로 발전 할 수 있는 기회는 지나 가 버렸지만 여전히 호국사찰로서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 하였다.

 

한나라의 대통령이나 재벌이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한다. 전생부터 많은 공덕을 쌓았고 또한 간절히 염원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자기가 행동하고 생각 하기에 따라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그 것이 씨가 되어서 다음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 인 것이다. 마치 조그만 씨앗 하나가 발아 해서 성장 하면 어마 머마 하게 커지듯이 말과 행동과 생각 모두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부부간에는 도반처럼 생활하라

 

죽음에 임박 하였을때 나무아미타불10번 하면 극락에 태어 난 다고 한다. 그러나 실천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평소에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생활을 하라고 한다. 잠을 자기 전에도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잠자리에 들고 잠을 깨어서도 관세음보살을 염한다면 비록 잠자리에 들더라도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부부간에는 도반처럼 생활하라고 한다. 부를 때도 거사님이나 보살님 하고 부르고 동안거나 하안거 할때 서로 번갈아 가며 참석 하고 놓아 주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참회 하며 살아 가라고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것과 행동 한 것은 모두 사진처럼 찍혀서 업으로 저장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생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참회 하라고 한다.

 

동해안에 면해 있는 아름다운 사찰

 

등명낙가사는 동해안에 면해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대웅전에서 앞을 바라보면 마치 커다란 호수처럼 시푸른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좌청룡 우백호 식으로 산이 감싸고 있는 도량은 입구에서 부터 모텔이나 가게등 시설물을 일체 볼 수 없다. 해안에 면해 있는 7번국도가 곧바로 100대가 넘게 주차 할 수 있는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어서 넉넉한 느낌이다. 주변에 숙박시설이 없는 대신에 사찰 내부에 머물러 갈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지 스님도 적극적으로 권유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새벽예불을 보고 뒷산에 올라가 해돋이를 보면서 바다를 바라 보라고 한다. 그리고 밤에는 바다 위로 쏟아지는 총총한 별빛도 한번 보라고 한다.

 

등명낙가사는 풍광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또한 훌륭한 주지스님이 있다는 자체가 큰 자산인 것 같다. 이렇게 바다와 하늘과 산이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도량에서 주지스님의 법문을 들으니 신심이 절로 나는 것 같다.

 

 

 

등명낙가사 일주문과 동해바다.  해안에 면한 7번국도와 곧바로 연결 되어 있다. 주변에는 일체 일반 건물과 상점이 없고 100대 넘게 주차 할 수 있는 널직한 공간도 있다.

 

 

 

 

등명낙가사 관문.  이곳은 머물러 갈 수 있도록 숙박 시설이 되어 있다.

 

 

 

 

영산전.  청자로 조성된 500성중이 모셔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 호국을 염원 하는 오백인의 발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영산전의 석가모니 부처님. 정면을 바라 보고 우측에 미륵보살 좌측에 제화가라보살.

 

 

 

 

영산전에서 법문 하고 있는 청우 주지 스님. 등명낙가사의 원래 이름은 등명사 이었다 함.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 께서 창건 한 사찰이다. 정동에 위치 하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도 해돋이 광경을 보았다고 기록 되어 있다.

 

 

 

 

조선왕조 500년간 등불이 꺼진채 신라 오층석탑만 자리를 지키고 왔으나  수십년전에 영해당선사가 산 명칭을 따 낙가사로 개명 하고 불사를 시작 함. 이때 조성된 5백나한상은 유근형 옹에 으해서 청자로 조성 되었다.  1981년에 영해당선사가 열반에 들자 현주지 스님인 청우스님에 의해 영산전, 산신각 등의 불사가 완성되고 명칭도 옛이름인 등명사와 낙가사를 합쳐서 등명낙가사로 하였다.

 

 

 

 

영산전에 있는 영정 사진.  중앙이 낙가사를 복원한 영해당 선사. 우측이 청우스님의 은사스님. 좌측이 조중훈회장.  조중훈회장의 영정은 월정사와 이곳 등명낙가사 2곳에 모셔져 있어서 절에서 제사 지내다고 한다.

 

 

 

 

영산전안에 있는 천수관음도.

 

 

 

 

영산전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연등

 

 

 

 

극락보전. 

 

 

 

 

범종각

 

 

 

 

삼성각

 

 

 

 

종무소

 

 

 

 

약사전

 

 

 

 

등명사지 오층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37호로서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조선왕조 5백년간 불교 탄압으로 폐사 되었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오며 등명낙가사의 역사를 지켜 보아 왔을 것이다.

 

 

 

 

영산전 앞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

 

 

 

 

감나무에 마치 사과 만한 감들이 달려 있다.

 

 

 

 

등명낙가서의 불타는 단풍

 

 

 

 

 

2007-11-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