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의업(意業)이 화병(火病)으로 발전 하여 정신질환에 걸린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1. 13. 09:37

 

의업(意業)이 화병(火病)으로 발전 하여 정신질환에 걸린다면

 

 

의업과 화병은 집착과 아상(我相)이 강하다는 것

 

 

 

 

 

경전에 나와 있는 말에 대하여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말이 의업(意業)’이 아닐까 생각 한다. 보통 신구의(身口意) 3업이라고 말하는 의업은 생각으로 짖는 업또는 생각으로 짖는 죄에 해당 될 것이다. 생각으로 짖는 것도 업이 되고 죄가 된다는 생각은 여로모로 파격적이다. 업이나 죄는 몸이나 입으로 짖는 것은 명백히 알려져 있으나 마음속에 있는 생각도 업이 되고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하나의 깨달음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병중에 화병((火病)이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병중에 화병((火病)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은 장년의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정신질환 이다.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킨다. 가슴이 답답하며, 불면증, 거식증, 성기능장애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화병은 한국인 만의 독특한 질환이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는 1996년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 하나로 등록했는데, 이 질환을 영어로 'hwa-byung'이라고 부른다.

 

화병은 일종의 정신질환이고 우리나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독특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화병이 다름 아닌 의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 하거나 싫어 하는 마음을 언제나 간직하고 살다 보면 왠지 우울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 보인다. 또한 인생에 대한 회한이나 자괴감 내지는 상대방에 대한 죄책감이 얽히고 설켜서 말로 표현 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생각을 말로 풀어 버리면 구업이 된다. 또 그 생각에 대하여 행동으로 옮기면 신업이 된다. 이렇게 되면 신구의 3업을 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의업으로 그친다면 구업과 신업은 지어 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의업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있으면 화병으로 발전하면 정신질환에 걸릴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래 저래 의업은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 하다.

 

생각으로 짖는 업은 말하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불교에서는 나쁜 업을 짖지 말라고 한다. 특히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짖는 3업은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 그 중에 구업을 가장 경계 하고 있다. 십악참회에서도 무려 4번이나 나온다. 즉 망어중죄금일참회(妄語重罪今日懺悔) , 기어중죄금일참회(綺語重罪今日懺悔), 양설중죄금일참회(兩舌重罪今日懺悔), 악구중죄금일참회(惡口重罪今日懺悔) 이다. 이들 구업은 이세상을 살아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일 짖고 있다. 내가 뱉은 말이 상대방의 귀에 그대로 전달 되어서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악으로 규정 하고 매일 매일 참회 할 것을 권고 하고 하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생각으로 짖는 업은 말하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타심통(他心通)을 가진 초능력자라면 알 수 있을까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의 행동과 말하는 것에 따라 추측 할 뿐이다.

 

스스로 깨우쳐서 집착하지 않는 무아상(無我相)의 경지에 이른다면

 

평소에 생각 하고 있던 것을 말로 표현 하면 구업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구업을 짖지 않기 위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가슴속에 묻어 두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다만 화병으로 발전 되지 않도록 털어 버리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집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 사실 알고 보면 마음속의 응어리도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착은 결국 아상(我相)이 너무 강하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금강경에서 무아상에 대하여 수 없이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불교는 신행의 종교라기 보다 수행의 종교에 더 가깝다. 의업이 구업으로 발전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의업이 화병으로 발전 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 하지 않다. 결국은 스스로 깨우쳐서 집착하지 않는 무아상(無我相)의 경지에 이른다면 모를까.

 

 

200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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