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박지향교수의 동아일보‘부르주아 죄의식’칼럼을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1. 14. 10:13

 

박지향교수의 동아일보부르주아 죄의식칼럼을 보고

 

 

20프로의 등따습고 배부른자들의 넋두리

 

 

 

 

은행의 잔고가 얼마 없으면

 

은행잔고가 있다. 그런데 그 잔고가 충분 하다면 자유로이 쓸 수 있으나 잔고가 얼마 되지 않으면 쓰고 싶어도 자유로이 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종교에서는 공덕을 은행의 잔고와 비유 하여 말하기도 한다. 즉 공덕의 잔고를 많이 쌓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공덕을 많이 쌓으면 죽어서 천상에 태어 나거나 사람으로 태어나도 부귀하게 태어난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제도 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라 생각 한다.

 

현실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금전적인 사항을 무시 할 수 없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런 사상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종교단체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부자들을 대변한다는 보수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을 보면 매우 노골적이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하게 부르조아입장에서 바라본 세계관

 

1114일자 동아일보에 지향교수의 부르주아 죄의식칼럼(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711140022&main=1 )이 실렸다. 철저하게 부자입장에서 바라본 세계관이다. 부자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은 잘못이라 말한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에 대한 환상은 깨져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러면서 정신적인 삶 운운 하며 훈수를  두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인도나 티베트의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런 위선을 떨쳐 버리고 열심히 일해 열심히 벌고 그 것을 불우한 이웃과 나누자고 말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동의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특히 80프로에 해당 되는 계층에서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말이다.

 

부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과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배부르고 등 따스운 사람들이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입장을 알면 얼마나 알까 생각 해 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다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또한 학맥, 인맥으로 이루어진 사회적인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상층으로 진입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그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득권을 이용하여 최대한 방어 하려 한다. 그 기득권을 방어 해 주는 대표적인 매체가 바로 조선과 동아 같은 보수신문이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보수 신문에 기고한 글에 대하여 색안경을 끼지 않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수 신문은 철저하게 가진자의 시각에서 바라 보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의사표현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또한 친미적이고 친기독교적이라는 것도 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이나 동아의 사설이나 칼럼을 위와 같이 기득권층과 친미 친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정확 하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대 김교수 칼럼도 그런 냄새가 풍긴다는 것이다.

 

인도나 티베트의 사람들의 정신적인 삶 운운이 위선이라 말한다

 

김교수는 말미에 어차피 인생이 불행 할 거라면 버스뒤칸에서 불행 하는니 보다 에쿠스 뒤칸에서 불행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는냐고 노골적으로 물질만능주의에 대하여 이야기 한디. 그러면서 주변의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베풀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생산하고 소유 하자고 말한다. 철저 하게 자본주의 논리가 들어간 말이다. 마지막으로 인도나 티베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정신적인 삶 운운 하는 가난 하지만 행복하게 사는환상을 깨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이 위선이라고 말하는 것이 김교수의 컬럼의 요지이다. 이경우는 여의도 대형교회의 ‘3박자 축복이나 예수믿고 복받으세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상 된다.

  

미국이 이땅에 들어 와서 뿌린 씨앗이 이제 발아 단계를 지나 성장 단계에 이르렀다.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전분야에 걸쳐서 주류세력을 형성 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확고하게 뿌리 내렸다. 기부를 하고 자선사업에 관한 보도를 해도 미국의 빌게이츠 이야기는 하지만 경주 최부자집의 몇대에 걸친 배품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인색하다. 기독교기업을 표방 하는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직 문제와 종교사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문제 그리고 야당 대통령후보의 도덕성 문제 등을 다루는 것 또한 인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김교수의 칼럼을 보면서 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20프로의 등따습고 배부른자들의 넋두리를 보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일까.

 

 

20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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