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툭 하면 ‘우상숭배’라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1. 23. 10:04

 

툭 하면 우상숭배라는데

 

 

특정교리, 특정 교파, 특정종파,

특정 경전을 절대시하는 것이 우상숭배

 

 

 

 

하루라도 정보를 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

 

우리는 하루라도 정보를 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마치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루라도 먹지 않고 자지 않으면 살 아 갈 수 없듯이 정보를 접하지 않으면 웬지 허전 하고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대표적인 인터넷, 휴대폰등이 있지만 그래도 전통적으로는 TV와 라디오를 빼 놓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라디오는 집에서나 이동중에나 크게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매우 편리한 정보 획득 수단이다.

 

라디오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 보면 종교방송에 접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대체로 많이 잡히는 종교방송은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평화방송, 불교방송, 원음방송 등이라 하겠다. 그런데 가끔 채널을 돌리다가 기독교 계통의 방송에 멈추는 경우가 있다. 멈추는 이유는 한마디의 말에 이끌려 고정 되게 되는 경우이다. 아주 강렬하고 자극적인 내용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우상숭배라는 말일 것이다.

 

불교는 기독교를 풍성하게 해주는 위대한 이웃종교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상숭배의 본질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이 아닌 존재나 사물을 하느님인 거처럼 숭배 하는 것이다. 즉 철저하게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 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다른종교에도 그대로 적용하였을 때 갈등이 일어 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 전통종교는 미신이나 우상숭배로 낙인 찍히는 작업을 해 온 결과 상당히 먹혀 들어가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종교에도 타격을 입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TV나 라디오 심지어 인터넷에서 까지 공공연하게 우상숭배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사용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작년의 부산의 불교말살기도회 사건도 알고 보면 우상타파의 일환으로 추진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타종교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우상숭배가 어느 정도심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한신대 경재교수의 블교는 기독교를 풍성하게 해주는 위대한 이웃종교 http://blog.daum.net/bolee591/10896076 )’라는 글을 보면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글에서 김경재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독자로서 동아시아에서 활짝 피어난 선불교 정신은 임제선사의 사자후라고 알려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극단적 표현 속에서 일체의 우상을 파괴하여 초탈(超脫)초연(超然)하려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의 자유정신을 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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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십계명을 암송하면서 계율로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종교이다.   그런데 열가지 계명중 맨 앞부분의 세가지 계명이 사실은 모두 ‘우상타파’ 정신을 강조하는 계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리석게도 특정교리, 특정 교파, 특정종파, 특정 경전을 절대시하는 우상숭배를 범하고 있는 자기 모순적 종교단체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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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불교가 기독자에게 가르치는 위대한 정신은 한마디로 모든 종교들의 교학적 표현이나 의례적 상징들이 그것자체로서 궁극적인 것이 아니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려는 ‘방편’에 불과하다고 통찰하는 점이다. 소위 교리적 문자들의례적 상징행위들가람건물이나 부처상들도 결국은 달을 보게하려는 방편으로서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이라는 것이다. 우선 기독교는 선불교에서 ‘우상타파’정신을 다시 배우게 된다.

 

 

김경재 교수는 상대방의 종교에 대하여 모르고 범하는 오류를 지적 하고 있다. 상대방의 종교를 제대로 안다면 우상숭배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 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종교의 도그마에 갇혔을 때 바로 그것이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없지 않는냐고 말하고 있다.

 

우상숭배 이야기는 더 이상 먹혀 들어 가지 않는 세상

 

요즈음은 개방화 시대이이다. 그리고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공유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와 같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여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모르고 지냈던 일이나 몰랐던 사실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낱낱이 올려지고 순식간에 퍼져서 서로 공유하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거짓말 한 사건도 어느 누군가는 찾아 내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꼼짝없이 당하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 100년전에 선교사들이 주장하던 우상숭배 이야기는 더 이상 먹혀 들어 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그런 이야기에 대한 모순까지도 낱낱이 지적하는 단계에 이르른 것이다. 이제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 잘 써 먹었던 우상숭배이야기를 가끔 라디오에서 들으면 이제는 소가 웃을 이야기로 들린다.

 

 

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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