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는 ‘참회(懺悔) 의 종교’이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1. 30. 11:11

 

불교는 참회(懺悔) 의 종교이다

 

 

죄를 지었으면 곧바로 참회한다

 

 

 

 

 

참회라는 말은 원래 불교용어이다

 

참회(懺悔)’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이다. 세계사시간에 나와 있었던 내용이라 기억이 오래 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참회록이라 부르지 않고 고백록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대에 따라서 용어도 바뀌는 모양이다.

 

참회라는 말은 원래 불교용어이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조석으로 외우는 천수경에 나오는 참회게가 있다. 여기에 십악참회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빌려 가서 쓴 것이 아니었나 추정 한다. 불교에서 가져간 말은 이말 외에도 장로예배니 하는 많은 말들을 차용해 갔는데 지금은 의례히 기독교용어로 굳혀 진 듯 하다.

 

불교는 참회의 종교이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불교는 참회의 종교라고 말 하였다. 참회와 대비 되는 단어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Repentance)’가 있다.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라는 풀이로서 뜻은 동일 하나 의미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참회는 산스크리트어의 크샤마(Ksama)’를 음역한 과 의역한 ()’로 이루어져 있다. 의미는 포살과 자자의 의식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친다는 뜻이다. 반면에 기독교의 회개는 마음의 변화나 후회,가책을 뜻하는 말로 죄로 부터 벗어나 신에게 되돌아 감을 의미한다.

 

불교의 참회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내용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회에 대한 대표적인 내용은 천수경에 잘 나와 있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내가 저 먼 과거로 부터 지은바 여러가지 악업들은 모두가 다 저 시작도 끝도 없는 과거로 부터의 탐진치로 말미암은 것이다란 뜻이다. 따라서 모든 악업들은 신구의삼업으로 부터 생기는 바이니  일체를 이제 다 참회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업장소멸을 해주는 열두부처님을 명호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항목으로서 십악참회를 염송한다.

 

 

살생중죄금일참회(殺生重罪今日懺悔)

투도중죄금일참회(偸盜重罪今日懺悔)

사음중죄금일참회(邪淫重罪今日懺悔)

망어중죄금일참회(妄語重罪今日懺悔)

기어중죄금일참회(綺語重罪今日懺悔)

양설중죄금일참회(兩舌重罪今日懺悔)

악구중죄금일참회(惡口重罪今日懺悔)

탐애중죄금일참회(貪愛重罪今日懺悔)

진애중죄금일참회(瞋碍重罪今日懺悔)

치암중죄금일참회(癡暗重罪今日懺悔)

 

 

그리고  살바 못자 사다야 사바하하고 진언을 외운다.

 

십악참회만 잘해도 다음생에 천상에 태어 난다고 한다. 반대로 십악참회 하지 않으면 악도에 태어난다고도 볼 수 있다. 비록 열가지에 지나지 않은 게송이지만 지키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1프로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불자들은 천수경의 십악참회는 수 없이 외우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우리들이 아침 저녁으로 짖는 모든 악업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기인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원을 살펴 보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짖는 업에서 생겨 나왔다고 한다. 문제는 몸과 말과 마음에서 짖는 업이라는 것이다. 몸으로 짖는 죄는 명확히 볼 수 있고 증거로도 남을 수 있다. 말로 짖는 죄는 증거는 남지 않으나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으로 짖는 죄는 알아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식 죽여 버려야 겠어라고 생각 했을 때 구체적으로 행동 하기 전에는 알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한 요즈음에는 몸과 마음으로 짖는 죄도 낱낱이 기록되는 카메라 덕택에 알아 내기가 매우 쉬워 졌다. 대선 후보의 과거 사생활이나 문제 발언들이 인터넷시대에 누군가에 의하여 밝혀 져서 타격을 입는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람의 마음을 읽고 기록하는 장치가 발명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현실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자기자신의 마음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마음까지 알 수 있을 까 생각 해본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과 언행을 보면 대충 짐작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과 말이 라는 것이 마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 먹은 일은 어떤 방식으로 든지 표출되게 마련이다. 저 사람을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실제로 제거가 되고 도둑질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 삿된 음행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발길이 그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마치 양자론에서 관찰자의 선택에 따라 결정 되듯이 또 반도체의 스위치 기능이 전류를 흘려 주는냐에 따라 on/OFF 기능을 하듯이 말이다. 결국은 마음의 선택에 달렸다는 말이다.

 

마음은 시시각각 무수히 생멸을 거듭한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무수히 생멸을 거듭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 하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이라고도 말하고 번뇌라고도 말한다. 번뇌 함에 따라 생각 함에 따라 마음속에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 졌다 허물어 지곤 한다. 실제로 행동에 옮겼을 때 선택된 세계에 나는 존재 한다. 선택이 안된 세계는 그 순간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된 세계가 또 존재 할는지 모른다. 즉 그 세계를 선택하면 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즉 우주가 중중무진으로 겹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세계에서 저세계로 건너 갈 수 없다. 이미 선택 되었기 때문이다. 선택된 세계에서 보았을 때 단지 허상으로 존재 할 뿐이다. 이런 사실은 양자론과 그의 응용과학인 반도체의 특성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곧바로 참회한다

 

유력한 대선후보의 행동과 말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독실한 신앙인인 그가 하는 말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 나고 있기 때문이다. 십악참회 개념으로 본다면 그는 무려 4가지에 달하는 중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즉 망어 기어 양설 악구중죄이다. 즉 거짓말과 꾸며서 하는 말, 이간질 하는 말, 헐뜯는 말이다. 거기에다 투도중죄가 더 있다. 즉 도둑질한 죄이다. 땅투기 주식투기등으로 벌어 들인 불로소득을 말함이다. 투도중죄는 탐애중죄에도 해당 된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 더 있다. 그의 잘 못된 믿음은 치암중죄에 해당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10악중에 무려 7가지 중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앙인으로서 비록 죄를 저지렀다고 할지라도 회개 하면 그만일 것이라고 생각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교의 인과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천상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가 왜 참회의 종교인지는 구체적인 실천항목이 있음으로 인하여 명백한 사실이다. 비록 다 실천 하지는 못할 지라도 죄를 지었으면 곧바로 참회 하는 바탕은 마련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화를 내었다 할지라도 그 다음날에 진애중죄금일참회하며 계속 마음속으로 되뇌일 수 있고 어리석은 행동한 다음에 후회가 되면 치암중죄금일참회를 입에 달고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참회하는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진짜 참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 하면 이것도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2007-11-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