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대승기독교’와 ‘보살예수’

담마다사 이병욱 2008. 1. 25. 09:52

 

대승기독교보살예수

 

 

 

 

불교에 입문하여 소정의 교육을 수료하면 대승보살계를 받는다. 단순히 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보살계이다. 그 것도 대승보살계이다. 계를 받으면 보살로서 살아 가야 한다. 보살로 살아 가면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대승보살이라는 어마 어마한 명칭이 붙는 것이다.

 

계를 받으면 누구나 다 보살이 된다. 보살이 무엇인가. 인터넷 사전을 찾아 보았다.

 

 

()bodhisatta.

(산스크리트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확정된 이'라는 뜻)

불교에서 역사상의 부처인 고타마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전의 상태, 또는 현세나 내세에서 부처가 되도록 확정되어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

 

 

내용은 상식적인 사전적인 내용이다. 보살의 개념은 아무래도 소승이라는 말과 대비 되지 않을 수 없다. 소승불교는 아라한이 됨으로써 열반에 들어 가겠다는 개인적인 구원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이것을 비판 하고 나온 것이 바로 대승보살 사상이다. 즉 깨달음을 얻었을 지라도 열반에 드는 것을 연기 하고 모든 중생들이 제도 될 때 까지 함께 하겠다고 서원 하는 것이 대승보살사상이다. 즉 소승이 지혜를 추구 하는 것에 비해서 대승은 자비의 실천을 더 강조 한다는 것이다.

 

대승보살사상은 소승에 대한 비판과 반발에 나온 새로운 사상이었다. 대승경전에 보면 이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법화경의 ‘3승방편 1승진실이라든가 성문연각 은 불보살의 세계를 알 수 없다등의 내용이다. 일부 대승경전은 소승을 성문연각승으로 비하 하면서 여지없이 깔아 뭉게 버리는 장면도 많이 볼 수 있다. 아마 대승의 우수성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 하지 않았나 생각 된다.

 

우리나라는 동서양 제반사상의 충돌현장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팽팽하게 대립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전통문화와 서구에서 들어온 새로운 문화가 공종 하고 있는 장소이다. 마치 종교백화점 같은 양상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고 있으면서 소가 닭 보듯이서로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 간다. 같은 공간에 살고는 있지만 추구 하고 있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한국불교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불교는 과거 3국시대나 고려시대 같이 불교국가 시대인 적도 있었다. 또 조선시대에서와 같이 유교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서양종교인 유일신교의 강력한 도전과 도발로 인하여 생사의 길목에 처해 있다. 이제까지 전혀 경험 하지 못 하였던 새로운 상황이 벌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은 원래 짓밟으면 짓밟을 수록 더 일어 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한쪽에서는 종교패권을 추구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곳이 한국의 종교 현실이다. 이렇게 되기 까지 에는 나라가 힘이 없어서 망하게 되고 외세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에 기인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민족의 공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대승불교를 받아 들이고 있어서 종교간 물리적 충돌은 일어 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다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대승사상과 자비를 실천 하는 보살사상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인류보편적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 하는 사상이 좋아서 그럴까 기독교계의 일부 학자들은 대승기독교보살예수를 주장 하기도 한다. 세월따라 사상도 변하긴 변하는 모양이다.

 

 

 

200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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