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산다는 것

담마다사 이병욱 2008. 2. 5. 10:04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산다는 것

 

 

 

 

TV의 자막 서비스를 보면

 

TV를 보면 자막서비스를 해 주고 있다. 청각장애자를 위한 자막 서비스가 아니라 두 귀가 멀쩡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나 외국어로 말하는 경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 일상화 되다 보니 듣는 것보다 읽는 것 위주로 된 듯한 느낌이다. 특히 개그 프로그램 같은 더 심해서 동작이나 표정도 자막 처리 할 정도이다. 이 정도 되면 공해아닌 공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막을 유심히 보면 일반인들을 소개 할때 나이를 표시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시골 촌노들을 소개 할 때 또는 시장 상인들을 소개 할 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같이 이 땅의 갑남을녀들이 보통이다. 한가지 특이 한 것은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유명인들에 대해서는 그런 나이를 보여 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다 알고 있으리라고 해서 그럴까 아니면 그들에게 나이를 공개 하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스스로 판단해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유명인들의 나이는 공개가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나이를 따지는 사회

 

아직도 나이는 권위의 상징이다. 특히 나이가 젊은 층 일 수록 많이 따진다. 여자 같은 경우 자신보다 한살이라도 더 먹었으면 언니가 되고 한살이라도 적으면 동생이 된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더 벌어져서 두 세 살 정도는 차이가 나야 형이나 동생으로 취급한다. 이것은 물론 사적인 영역에서이다. 그런데 이런 나이를 거론 하는 것은 조직으로 넘어가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단체나 조직에 들어 가면 그 사람의 지위가 서열을 결정 하게 된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지위가 높으면 윗사람으로 인정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이와는 전혀 무관 하다. 나이가 젊은 사장이 있을 수 있고 나이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복종 해야 한다. 그것이 싫으면 나가면 그만이다.

 

형편 없이 늙어 버린 모습을 보면

 

명절 때가 되면 오랜만에 일가 친인척을 보게 된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을 보게 되면 세월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라 형편없이 늙어 버린 그 모습을 보면 시간의 무상함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옛날의 어여뻣던 그리고 당당 했던 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과거에 한자리 하면서 세상 부럽지 않게 부귀와 영화와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을 보면 초라 하고 왜소 해 보이기만 한다.

 

사람들은 젊고 싱싱 하고 예뻐지고저 노력 한다. 그래서 TV나 라디오 신문을 보면 이들을 위해서 존재 하는 것처럼 느껴 진다. 광고에도 젊음이라는 단어가 수 없이 나오고 또한 젊고 예쁘고 싱싱한 광고 모델로 채워 진다. 이삼십년전 한 때 잘 나가던 가수들이 나와서 특별히 마련한 코너에서 힛트쳤던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중장년이 된 그들이지만 여전히 예전 그대로 모습처럼 열창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만이 보면 이들은 나이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젊음을 유지 하는 것처럼 느껴 진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고 애처러워 보일 때도 있다. 마치 옛날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나이와 정신적인 연령

 

우리들은 보통 나이를 따질 때 육체적인 나이를 본다. 그러나 육체적인 나이 외에도 여러 가지 나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정신적인 연령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하는 행동과 말이 나이 먹은 사람 못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또 비록 나이는 젊지만 겪을 것 다 겪은 사람도 나이만 먹은 사람보다 더 나이를 높게 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그 자리에 그 위치에 그 경지에 올라 섰다는 것은 육체적인 나이와 무관 한 것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젊어 지기 위해서 노력 한다. 그래서 보약을 먹고 회춘을 시도 한다든가 다이어트를 하고 주름살을 제거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다들 젊어 지고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본능일 것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나이 먹어서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몸에 투자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나이든 여자들은 예쁘게 보이게 하기 보다 우아하게보이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하지 않을 까 생각 해 본다. 우아하게 보이려면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개발 해야 할 것이다. 그 것이 바로 종교 생활이 아닐까.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산다는 것

 

불교에서는 여성신도들을 보살이라고 부른다. 보살 하면 어떤 이는 부정적으로 생각 한다면 점집의 보살 이미지를 떠 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이 이나 지장보살이미지를 떠 올린다면 180도 달라진다. 모든 중생들이 성불 할 때 까지 자신의 성불을 늦추고 지옥중생들이 다 제도 될때 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서원한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이런 자비심 때문일까 여성에게 보살 칭호를 붙여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불교에 많이 귀의 한다고 한다. 지금 청소년이나 젊은층들이 손쉽게 다가 갈 수 있는 곳이 타종교 이지만 나이를 먹어서 인생의 무상함을 체득 하게 되면 돌아 오는 곳이 불교라고 한다. 마치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회귀 하듯이 말이다. 젊고 힘이 넘칠 때 또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마치 그 상태가 영원이 지속 되리라 느껴 진다. 그리고 또 영원히 젊음을 유지 하고 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많은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은 그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무상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형편 없이 늙어 버린 어르신들을 보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늙어도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어 가야 한다. 늙어서 까지 젊음을 되 찾기 위하여 그리고 예뻐지기 위하여 몸에 투자 한다든지 또 돈에 너무 집착 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같이 보살행을 하는 것이 한층 더 품격 있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보살 이나 거사 칭호를 붙여 주는 것 생각만 해도 좋아 보인다.

 

 

 

2008-02-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