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존재의 근원’을 ‘자기(Self)’로 통일 하면 어떨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8. 3. 6. 10:08

 

존재의 근원자기(Self)’로 통일 하면 어떨까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슬며시 이라는 단어로 대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사람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신앙심이 부족해 복지정책이 실패 했다는 것이다. 발언도 문제 있지만 이를 보도 하는 보수신문의 한 단면을 엿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D일보는 마치 마지 못해 보도 하는 형식으로 짤막하게 팩트 위주로 보도 하였다. 그런데 눈에 확  트이는 내용 중에 하나가 하느님이라고 사용 하였다는 것이다. 분명히 원문에는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는데 슬며시 이라는 단어로 대치 하여 놓은 것이다.

 

하느님은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전국민을 상대로 수백만부를 찍어 내는 영향력이 막강한 보수신문이 하느님이 같은 뜻 이라서 사용 한 것일 까 아니면 불리한 기사이기 때문에 하느님이라는 말을 모독 하는 것 같아 이라는 일반명사를 사용 한 것일까. 어느 경우는 하느님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대히트를 친 하느님’ ‘하나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 하게 된다. 무언가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실재가 있지 않을 까 하고 고민도 해보게 된다. 더구나 큰 위기에 닥쳤을 때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누군가에 의지 하고 구원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빨리 찾는 대상이 바로 하느님이다. 그런데 그 하느님이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그 하느님일까.

 

기독교에서 가장 큰 히트 작품이 바로 하느님또는 하나님이라는 키워드 일 것이다. 원래의 이름을 놓아 두고 우리나라 전래의 하느님을 차용 하고 하나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냄으로서 정서적으로 가까이 다가 섰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히트를 쳤다는 것이다. 마치 드럼 세탁기가 나왔을 때 LG에서 트롬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드럼세탁기 하면 트럼이라는 이미지가 연상 되도록 한 효과와 비슷 하다는 것이다.

 

하느님’ ‘하나님’ ‘주님’ ‘야훼’ ‘여호아’ ‘여러가지 이름이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맞는 이름일까. 분명 하나의 대상일 텐데 부르는 이름이 매우 다양 하다. 구교에서는 하느님이고 신교에서는 하나님’ CCM을 부를 때는 주님신문에서는 안티들은 야훼라고 부르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심층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Self)’

 

인간의 정신을 탐구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발견중의 하나가 무의식이라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에 의한 심층심리학이다. 융은 의식하고 있는 자아(Ego)’와 무의식 속에 있는 자기(Self)’라는 개념을 확립 하였다. 그리고 의식하고 있는 세계가 있는가 하면 사람의 심층에는 개인무의식뿐만 아니라 집단무의식도 있다고 말 하였다. 특히 모든 인간이 공유 하는 집단무의식자기라고 표현 하였다. 자기는 무의식의 핵심 이면서 동시에 의식과 무의식의 전체와도 같다고도 하였다. 자기는 우리가 꿈을 꾸면서 상징적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꿈에서 자기는 노인의 모습으로 또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심지어는 하늘이나 산, 바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꿈에서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상징으로 표현 하기 때문에 꿈을 잘 관찰 하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꿈은 우리에게 예지를 할 수 있고 가르쳐 줄려고 한다는 것이다.

 

융은 의식적인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상도 있다고 주장 한다. 그래서 무의식에서 보내는 메세지에 주의 하라고 한다. 꿈에서 상징으로 말하는 그 메세지를 의식화 하는 작업이야 말로 자기에게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의식적인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두세계를 같이 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완성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자기(Self)’로 통일 하면 어떨까

 

융이 말하는 자기의 개념은 일반종교에서 말하는 존재의 근원내지 궁극적인 실재와도 매우 유사 하다. 유일신교의 경우는 그 무엇이 천지를 창조한 인격신이 되겠고 불교의경우에는 만물이 진리 그 자체를 말함이 되겠다. 마치 어떤 사람에 대하여 집에서는 아버지라 부르고 직장에서는 과장이라 부르고 인터넷에서는 필명으로 부르지만 모두 하나의 대상을 두고 달리 부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나의 산을 두고 앞동네 사람들은 앞산이고 뒷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뒷산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 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어떤이는 하늘님’ ‘하느님’ ‘하나님’ ‘야훼’ ‘’ ‘알라’ ‘상제’ ‘브라만’ ‘바이로차나’ ‘짜라투스트라’... 등등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위하여 편을 가르는가 하면 서로 싸우고 전쟁도 불사 한다.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수 만가지 이름을 붙여 놓는다. 한쪽에서는 이름을 차용 했다고도 말하고 또 한쪽에서는 도용 당했다고도 말한다. 또 같은 신을 밑는 종교내에서도 용어 하나 통일 되어 있지 않다. 그럴 바에야 융이 주장하는 존재의 근원이자 궁극적인 실재인 자기(Self)’로 통일 하는 것이 어떨까. 님자가 들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인격신이 될 수 없고 또 부르기가 편리 할 뿐만 아니라 친근 하지 아니 한가.

 

 

 

200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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