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선인선과 악인악과 법칙도 모르는 사람들

담마다사 이병욱 2008. 3. 17. 10:04

 

사회가 불교의 가르침 대로 만 산다면

 

 

 

 

납치’ ‘유괴’ ‘살인’ ‘강간’ ‘절도’ ‘사기’.. 사회면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단어이다.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사회코너를 장식 하는 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웃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항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TV에서 보는 인간시대나 인간극장과 같은 소외계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의 현장 또한 나와 무관 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내 문제일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 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원인 없이 결과는 발생 될 수 없다. 추적 해 가보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인선과 악인악과 법칙도 모르는 사람들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 한다. 비록 현실이 불만이 기득하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간다. 만일 그런 희망 마저 없다면 자살이 속출 할 것이다. 무언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감내 하는지 모르겠다. 현실이 힘들긴 하지만 하루밤 자고 나면 새로운 태양이 떠 오르듯이 어제의 고통 스러웠던 일들은 잠시나마 잊어 버린다.

 

아무리 현실이 고통 스러워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는 가능성이 있다. 미래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희미한 기대 같은 것이다. 비록 그 미래가 어떻게 전개 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지금 하기에 따라서 어떻게 되리라 하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곳이고 나뿐행동은 하면 그에 대한 과보는 피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쯤은 본능으로 아는 것이다.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법칙만 알아도 미래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회면을 장식하는 요란한 단어들은 인과의 법칙을 무시 해서 벌어지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자연의 근본법칙조차 모르고 살기 때문에 끔찍한 일이 벌어 지는 것이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설령 발각 되지 않고 용케 피해 갈 수도 있겠지만 마음속에서 까지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상 그 일은 따라 다닐 것이며 심지어 꿈속에서 조차 발현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적처벌은 피해 갈 지 모르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벌을 받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다른 것은 다 속일 수 있어도 마음은 속일 수 없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그가 한 행위가 낱낱이 기록 되어 있어서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의식 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무의식의 저편에 고스란히 보관 되어 있어서 어떤 계기기 되면 떠 올려져서 심적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미래의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안양어린이 실종과 관련한 유괴범 용의자가 검거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항상 그렇듯이 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잘 아는 사이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한 순간에 일어난 마음에 의하여 발생된 사건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자신이 한 행동이 개인적인 일일지라도 그 파급효과는 온 우주를 진동시키고도 남는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잠재적인 범죄자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서 일을 저지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끊임없이 생멸하는 마음중에서 어느 마음이 행동을 하는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 질 수 있는 것이다. 나쁜 마음은 내지 않고 좋은 마음만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통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쁜 마음을 많이 내고 그런 방향으로 생각 하다 보면 그런 행동이 벌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나쁜 마음을 내고 그 방향으로 행동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극히 이기적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자신위주로 생각 하다 보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한 도구로 밖에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세상만 있는 줄 알고 그 다음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 누구에게나 잠재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미래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범죄자의 대부분이 이기적이고 욕망에 눈이 어두워

 

지은바 일체공덕을 널리 회향 하라.  보현행원품 마지막에 나오는 게송이다.

반드시 재물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만 공덕을 많이 쌓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재물이 많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고통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한 재산을 형성 하기 까지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을 수 있고 그 지위에 오르기 까지 남을 밟고 일어 섰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그렇다면 공덕쌓기가 반드시 재산과 지위와 관련되어 있지 않음에 분명하다.

 

금강경에 수없이 나오는 말중에 아상을 버려라라고 한다. 곧 집착을 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 또 갈애하지 말라는 뜻과도 같다. 범죄자의 대부분이 이기적이고 욕망에 눈이 어두운 것을 보면 무아상을 주장 하는 것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상 하나만 버려도 이사회는 지옥과 아수라판에서 천상의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중생들이 짖는 불가사의한 업

 

불교에서의 시공간은 스케일이 매우 크다. 시방삼세제망찰해 라는 말과 같이 시간과 공간이 모두 연결 되어 있는 상상 할 수 없는 커다란 세계를 말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티끌만한 먼지 속에서도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큰 세계가 중중무진으로 펼쳐져 있다고 말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과 그 깊이를 알수 없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생들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 없이 업을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주속에서 사는 중생들이 짖는 업은 불가사의 하다고 한다. 과거에도 지었고 지금도 짖고 있고 미래에도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개인이 지은 업은 이 우주의 그믈망을 다시 짜게 만들 것이다. 만일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 우주는 그에 대한 과보로서 점점 더 탁해 질 것이다. 반면에 선행을 하고 공덕을 쌓았다면 우주는 좀더 정화 될 것이다.

 

모든 부처님을 예경하라. 이말은 과거 부처님뿐만 아니라 미래의 부처님까지 포함한다. 중생들은 미래의 부처님이 될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세계의 교주가 될 것이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발원을 해서 보살행을 하였듯이 누구나 무량겁이 지나면 이 세상에 존재 하는 모든 것은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범죄를 저지지르고 죄값을 받는 사람도 참회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부처가 될 것이다. 다만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웃에사는 사람들은 모두 미래의 부처님이라 볼 수 있다. 그 미래의 부처님께 공경 하고 예배 하라고 말한다. 그것도 허공계가 다 할 때 까지 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 하기 위해서 지은바 모든 공덕을 주위와 이웃에 돌려 주는 것 부터 시작 하라고 불교는 가르치고 있다. 사회가 불교의 가르침 대로 만 산다면 바로 이자리가 불국토가 아닐까.

 

 

 

 

2008-03-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