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신의 길 인간의 길', 유일사상과 열등 콤플렉스

담마다사 이병욱 2008. 7. 22. 11:39

 

'신의 길 인간의 길', 유일사상과 열등 콤플렉스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보기에도 귀티 나고 공부도 잘하게 생겼다. 그런데 언제나 하는 말은 자신이 최고라고 주장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이 다 옳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런 급우를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어 갈까. 아마 대부분은 마음 속으로 인정 하지 않고 심지어는 반감까지 품을지 모른다.

 

진리도 하나이고 구원도 하나이다. 이렇게 주장 한다면 나머지는 진리가 아닌 것이 분명하고 구원이라고 주장 하는 것도 거짓이 될 것이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유일한 진리이고 자신들 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 한다면 필연적으로 다툼이 일어 날 것은 명약관화한 이치 일 것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에서 보고 있는 분쟁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sbs에서 보여준 '신의 길 인간의 길'프로가 과감 하게 이를 지적 하였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호시탐탐 노출 되기만을 기다리는 그림자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다. 이 것을 '콤플렉스(Complex)' 라고도 한다. 사전적인 의미를 간단하게 말하면 '억압된 관념' 이라 볼 수 있다.

 

우리민족을 한의 민족이라 한다. 그래서 한을 가장 잘 표현 하는 노래가 히트 치기도 한다. 남자가수로는 '조용필'이 여자가수는 '심수봉'이 한민족의 정서를 노래로 가장 잘 표현한다고 음악 평론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판소리 만큼 한민족의 한을 잘 표현 하는 노래가 있을까. 서편제에서 보는 여자 주인공의 한에 맺힌 창은 들어도 들어도 애절 하기만 하다. 조실 부모하고 눈까지 멀어진 상태에서 한이 쌓이고 쌓였는데 이를 노래로 승화 시키는 것이다. 한이 들어간 노래는 듣기만 해도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찌 보면 한과 콤플렉스는 같은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영어의 콤플렉스는 '복잡한' '복합의' '얽히고 설킨' 뜻을 가지고 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어서 풀지 못하고 맺혀 있다는 뜻이다. 마치 그물망이 엉켜서 엉망이 되듯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은 채 미결로 남아 있다는 뜻도 된다. 이렇게 맺힌 마음을 한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표출 하지 못하고 마음속의 응어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밖으로 튀어 나올 것이다. 그런 맺힌 감정을 영어로 콤플렉스라고 하지만 또 다른 말로는 열등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자 붙인다고 성스러워 지는 것일까

 

경전을 '성경'이라고 하고 집합장소를 '성전'이라고 한다. 또 태어난 날을 '성탄절'이라고 말하고 심지어 신도 마저 '성도'라고 말한다. 어느 한 곳 '()'자가 들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신성하고 성스럽다는 성자의 남용은 실제로 전혀 성스럽지 않다는 것을 성스럽다고 언어로써 덮어 씌우는 열등감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경전이 훌륭하다면 굳이 성경이라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모임장소가 크고 화려해야만 성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탄절이라고 불러야 성인이 되는 것일까. 성도라고 이름 붙여야 한 단계 높아 지는 것일까.

 

이름은 이름일 뿐이다. 하나의 구별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떤 대상에 이름 붙여진 순간 그 이미지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가만 있는 데 거기에다 '성스러운' '위대한' 과 같은 접두어를 붙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유일하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유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하고 진리는 하나라고 선언 하는 순간 진리는 여러개 이었다는 것을 인정 하는 꼴이 된다. 구원도 마찬가지이다. 오로지 나의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유일하다고 주장 하는 것은 열등감의 발로

 

'신의 길 인간의 길' 프로가 방영되기전에 기독교에서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있었던 신념체계가 무너져 내림을 우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믿는 진리가 유일 하고 구원도 하나 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이제 까지 지내 왔는데 이를 부정 하니 당황 하고 허둥 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으로 매우 취약한 교리와 구원관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알리는 것임에도 불구 하고 종교자체가 흔들릴 정도 라면 유일신도 아니고 유일한 진리도 아니고 유일한 구원이 될 수 없음을 인정 하는 것이라 여겨 진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최고이고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가 오직 유일한 진리리고 유일한 구원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 그들이 믿는 신 외는 그 어떤 대상도 우상숭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모두가 열등감의 발로라 볼 수 있다. 과거 그 때 당시에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 졌을지 모르나 글로벌화한 시대에 보면 고개를 기웃거리게 만든다. 마치 새로 전학해 온 아이가 자신의 부족한 면을 감추기 위하여 자신이 최고이고 자신이 제일 잘 났다는 식으로 떠 벌리고 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열등감에서 탄생한 유일신과 유일진리, 유일구원 그리고 우상숭배로 몰아 붙이는 태도는 역으로 유일신이 되고픈 열망과 유일한 진리와 유일한 구원과 우상숭배에 대한 바램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종교가 진리이고 유일한 구원이라면 굳이 알리고 거룩한 이름 붙이고 다닐 필요는 없다. 진리 그 자체이고 구원 그 자체라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콤플렉스를 의식화 한다는 것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 이상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키가 작은 사람은 키큰 사람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을 것이고 몸이 뚱뚱한 사람은 마른 사람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어서 부지런히 다이어트를 한다. 의식하는 콤플렉스도 있지만 의식 하고 있지 못한 콤플렉스도 있다. 무의식의 영역안에 남아 있는 숨기고 싶은 그리고 노출하고 싶지 않은 콤플렉스이다. 만일 이런 콤플렉스가 어떤 계기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통하여 발현 되었을 때 투사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서야 자신의 내면의 숨겨져 왔던 콤플렉스를 인식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발견 하였을 때 놀라고 당황스러워 하지만 자신의 또하나의 인격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인정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의식을 의식화 하는 작업이 자기에게 좀 더 다가가게 되는 것이고 깨달음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 것은 어찌 보면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 가는 길이라고 볼 수 도 있다.

 

절대진리와 절대 구원 그리고 유일신을 말하는 것은 내면의 인정 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말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수용 하였을 때 좀 더 성숙한 종교로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거부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그 콤플렉스는 세력을 확장하여 그 콤플렉스에 압도 당할지 모른다. 그 결과 이해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에 지배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종교가 그렇게 된다면 사회의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흉기나 다름 없게 될 것이다.

 

 

 

200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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